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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캣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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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트린 Jan 10. 2019

어쩌다 보니 캣맘이 되었다

                                                                                                                


                            

몇 해 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따라왔다. 흰 바탕에 회색 점무늬가 있는  고양이였다. 어라, 겁도 없는 녀석이네, 하며 멈춰 바라보니  같이 멈춰 서는데 그  모습에 움찔하는 기색 하나 없었다. 오히려 곱고 당당한 자태로  "이봐, 댁한테 고양이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뭐 좀 있으면 내놔 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고양이한테 빠진 6개월차 집사란 건 어떻게 알았을까.

홀린 듯 집으로 들어와 사료 한 봉지를 들고 나갔지만 회색 무늬 고양이는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고양이가 다닐 만할 풀숲에 사료를 부어 놓고 한참 후 나가 보았다. 사료엔 개미들만 바글바글했다.


그날 이후 인터넷에서 검색한 대로 봉지에 사료를 담아 던져주고 다시 빈 봉지를 수거하는 것으로 캣맘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5년차, 동네 고양이들 사이에서는 이제 얼굴 좀 알려진 캣맘 행세를 하고 있다. 단지 안을 돌아다니면 어디선가 고양이가 아는 척 야옹거리고, 처음 보는 고양이에게도 "고양이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면 가던 길 멈추고  느긋하게  뒤를 돌아본다. 이름을 지어 주고 아침 저녁으로 돌보는 아이들도 여럿이다.



그중에서도 시도와 삼순이는 특히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이다.      

까만 몸에 가슴과 발만 하얀 시도는, 턱시도를 입은 지휘자를 연상시킨다. 처음엔 올블랙의 어미와 함께였다가 어느 날부턴가 혼자 남았다. 작고 귀여운 모습에 반해 사진을 찍어 보여주니 누군가 눈이 시트린 같다고 했다.

삼순이의 처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봄이 오기 전 삼색이 소녀들이 자주 눈에 띄던 시기가 있었는데 아마도 그때 살아남은 아이인 듯하다. 시도가 어미와 다닐 때부터 어울려 놀다가 혼자 남으면서 단짝이 되었다.


우리를 책임져라!


둘은 중성화 동기이기도 하다. 봄이 되어 TNR(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이 재개됐을 때 성묘인 이쁜이와 깜순이를 위해 신청한 포획틀에 (순진하게도 참치캔 냄새에 이끌려) 들어 조금은 이른 나이에 중성화를 했다. 물론 체중이 기준에 적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성화를 마치고 돌아온 녀석들은 꼭 붙어다니며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를 의지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죽을 때까지 책임져라 시위라도 하듯, 퇴근시간에 맞추어 주차장으로 마중을 나오는 날도 많았다. 특히 애교가 많은 시도는 발라당 바닥에 누워 배를 보여주곤 했다.


경계심 많은 성묘와 달리 붙임성 있순진한 어린 녀석들에게 나도 유독 마음이 갔다.  농구장 화단 주변에 밥자리를 따로 마련하고 덩치 큰 이들이 넘어오려고 하면 그러지 말라며 막아주었다. 밥 주는 사람이 보호하는 아이들로 소문이 났는지 시도와 삼순이는 큰 어려움 없이 영역을 마련할수  었다.


그리고 늦가을, 이 아이들 주변에 강제 독립당한 어린 고양이가 혼자 남았다. 나를 캣맘이 되게 한 회색 점무늬 이쁜이의 새끼로 집사나 캣맘들 사이에선 고등어 태비라고 불리는 회색 줄무늬 옷을 입은 아이였다.

나만 보면 놀라서 숨기 바쁜 그 아이를 시도와 삼순이에게 부탁했다.

"얘들아, 저기 있는 아이,  엄마가 두고 갔나 봐,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너희가 동생으로 받아들여주면 안 될까?

쟤 이름은 고돌이라고 해."

내 마음대로 붙인 이 이름이 고돌이의 마음에도 들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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