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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캣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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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트린 Jan 12. 2019

묘원결의, 길고양이 삼총사

팔순이 다 되어가는 엄마는 지금도 자꾸만 물으신다. 고양이가 사람 말을 알아듣느냐고, 정말 자기 이름을 부르면 오느냐고.
속상할 땐 자식보다 개가 더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더라 할 정도로 강아지 사랑이 지극한 엄마지만, 고양이에 대해서만은 교감 따위 나눌 줄 모르는, 아니  나눌 의사조차 없는 차가운 동물이라는 편견을 거두지 못하신다.


"시도야 잘 잤니?" 하고 인사를 건네면 대답이라도 하듯 기지개를 쭉 켜고,

"삼순이는 오늘도 예쁘네." 다정하게 말해주면  꼬리를 하늘 끝까지 치켜올며,

"이제 갈게, 이따가 또 보자." 하면 화단 가장자리까지 쫓아와 배웅을 한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라도 들은 듯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신다.

시도야 잘 잤니?


하지만 새로 온 어린 고양이 고돌이를 부탁할 때는 나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얘들아, 저기 있는 아이,  엄마가 두고 갔나 봐, 너희가 동생으로 받아주면 안 될까?"라고 말하면서도

알아듣거나 말거나, 들어주거나 말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었다.


시도와 삼순이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다니던 아이들이니 남매가 아니면서도 남매 이상 가까운 친구로 지내는게 가능했지만 고돌이는 완전히 낯선 아이였다. 길에 사는 동물의 습성상 자기 영역에 낯선 존재를 들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고돌이의 어미는 한때 시도와 삼순이 가까운 곳에서 새끼를 키우느라  사나움을 떨던 이쁜이였다. 그 때문에  둘은 두세 달 가까 화단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불안한 생활을 해야 했다.  일주일 정도는 이쁜이네 가족을 피해 단지 안을 배회하기도 했다. 그러니 멀리서라도 봤다면 고돌이가 달가울   었다.


그런데 며칠 뒤 밥배달을 갔다가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통통거리며 시도 뒤를 따르는 고돌이와 그런 고돌이 뒤에서 삼순이가 똥꼬를 핥아주며 따라오는 것이었다.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주자 시도는 고돌이와 삼순이먼저 먹도록 기다려주기도 했다.
사진을 찍는 데는 실패했지만 동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 가슴이 뭉클했다.


 

삼순아, 쫌!



형아와 누나에게 이쁨을 받아서인지 꾀죄죄하던 고돌이는 며칠새 털도 깨끗하고 얼굴도 환하게 변해 있었다. 자기 앞으로 내밀어진 휴대폰 카메라를 마주하는 눈빛엔 자신감이 엿보였다. 언제나 어린아이 같기만 하던 시도와 삼순이는 또 얼마나 의젓한지...


셋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다.

시도와 삼순이가 먼저 저 가엾은 꼬맹이 우리가 동생 삼을까 했는지, 고돌이가 울면서 자기도 데리고 다녀 달라고 애원했는지.


하지만 어쩌면 내가 한 부탁을 시도와 삼순이가 들어주었을지 모른다고, 밥엄마의 부탁이니 우리가 들어주자고 둘이서 합의를 했을지 모른다고 나 혼자 동화 같은 상상을  해본다.



"자기 이름이나 밥먹자 소리를 알아듣는건 기본이고요, 얼마 전에는 혼자 남은 어린 고양이가 있어서 돌봐달라고 부탁했더니 정말 데리고 다니더라니까요. 고양이가 얼마나 다정하고 똑똑한데요."

이렇게 말하면 늙으신 우리 엄마는 또 어떤 표정을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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