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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트린 Mar 08. 2020

힘들 땐 고양이

엄마 뭐 해?


늦은 저녁, 딸이 안부 인사인가 싶은 톡을 보내왔다.


이제 자려고... 요즘 출근시간이 빨라져서 그런가 벌써 졸리네. 넌 뭐 해?


그냥 이것저것....


그래,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밥은 잘 먹고 다니지?


으응.... 고양이 사진 좀...



독립을 한다며 집을 나간 딸은 가끔 용건 생략하고 고양이 사진을 청한다.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다섯 마리나 있지만 딸이 원하는 것은 대체로, 첫째인 냠냠이와 둘째인 우유의 사진이다.


냠냠이와 우유는 집을 나가기 전 딸이 데려온 고양이들이다.

아이가 한창 집을 나가고 싶어 이런저런 구실을 갖다 붙일 때,

이제 막 대학생인 여자애를 집 밖에 내놓을 자신이 없었던 나는

고양이를 키우게 해주겠다며 딸아이를 붙잡았다.

딸은 못 이기는 척, 냠냠이와 우유를 데려오곤 집에 눌러앉았다.

방들이 활짝 열리고 두 녀석 덕에 가족간에 대화가 많아졌다.

내 작전이 성공했다고 남몰래 흐뭇해할 즈음 딸아이는 또다시 독립인지 가출인지 집 나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집 밖의 생활이 생각처럼 신나기만 했을까.

부모 품을 벗어나 자유를 누리니 해방감과 함께 자신감도 솟았을 것이다.

학비 외에는 부모 신세  안 지겠다는 각오로 학교를 다니며 알바를 하고 열심히 살았겠지.

하지만 월세 내고 남은 돈으로 용돈 쓰고 배우고 싶은 걸 위해 학원까지 다니느라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리라.


이제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과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며 나름 자신의 삶을 꾸리고 있다.

엄마인 나는 걱정과 아쉬움이 커서 자꾸만 잔소리를 하게 된다.

분명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 딸과, 그런 딸이 아직도 못 미더운 엄마는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서로의 언저리에서 토닥거리기 일쑤다.


그러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릴 때, 몸이 아플 때, 나와 화해하고 싶을 때

딸은 "엄마, 고양이 사진 좀..."이라며 넌지시 말을 건넨다.

나는 어쩐지 이 말이 '엄마, 나 요즘 힘들고 외로워'라는 말로 들려서

냠냠이와 우유 위주로 정성껏 사진을 찍어 보낸다.

그래 봐야 솜씨는 여전히 형편없지만.


다행히도 딸아이의 반응은 언제나 기대 이상이다.

---꺅!! 꺅!!!! 노무노이쁘당!!





무슨 이유로든 지쳐 있을 딸에게

이 두 녀석의 사진이 또 며칠의 에너지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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