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 이 글은 『일의 복리』시리즈의 PART 2입니다.
40년 직장생활에서 배운 지치지 않고 오래가는 기술을 나눕니다.
시작은 모닝커피였다. 같은 팀 후배가 있었다. 호기심 많고, 사람들에게 관심 많은 후배였다. 출근하면 매일 아침 "선배님, 커피 한잔 하실래요?" 하며 자리로 온다. 처음엔 좋았다. 편안한 대화, 웃음, 하루의 시작이 즐거웠다. 점심 먹고 나면 또 왔다. "오후 커피타임이요!" 매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저 두 사람, 맨날 수다 떠네.' 업무 시간에 너무 자주 자리를 비우는 것 같았다. 후배와의 대화 주제도 점점 깊어졌다. 다른 동료들 이야기, 회사 불만, 사적인 고민.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매일 온 지 몇 달이 지났다. 습관이 되어버렸다.
어느 날, 눈을 질끈 감았다. "미안해요, 커피 아까 마셨어요." 후배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 웃으며 말했다. "아, 그래요? 그럼 다음에요!" 다음 날, 후배는 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눈치를 챈 것이다. 걱정했다. '관계가 나빠진 건 아닐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만나면 여전히 밝게 인사했다. 업무 협조도 잘 됐다. 가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선배님, 오늘 커피 한잔 어때요?" 하고 물었다. 그때는 기꺼이 함께했다. 거리가 조절되었다. 매일에서 가끔으로. 습관에서 선택으로. 관계는 유지되면서, 부담은 사라졌다.
30대 초반, 새로 들어온 동료가 있었다. 다른 팀이었다. 차갑고, 말이 없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도 거리를 뒀다. 인사만 하고, 업무적으로만 대했다.
몇 년이 지났다. 어느 날, 큰 프로젝트가 생겼다. 그 동료의 협조가 꼭 필요했다.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하지만 어색했다. 몇 년 동안 대화를 거의 안 했다. "저... 이번 프로젝트 관련해서 도움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동료는 도와줬다. 업무니까. 하지만 그게 다였다. 최소한만 했다. 적극적인 협력은 없었다. 아이디어 공유도 없었다. 그냥 시키는 것만 했다. 프로젝트는 성공했지만, 아쉬웠다. '평소에 조금만 더 가까이 지낼걸...'
올해 정년인 직원들을 위한 소모임 오찬이 있었다. 나와 같은 입사 동기 2명, 그리고 6명의 후배. 자리가 편안했다. 웃고, 떠들고, 추억을 나눴다. 그동안 두루두루 잘 지낸 사람들이었다. 문득 생각했다. '만약 이 중 누군가와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었다면?' 너무 가까웠다면, 오늘 이 자리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사적인 비밀을 너무 많이 나눴을 수도 있고, 깊은 갈등이 있었을 수도 있었으니까. 너무 멀었다면, 오늘 이 자리가 어색했을 것이다. 적정 거리. 그것이 40년을 함께 일할 수 있게 해 준 비결이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연구가 있다. 직장 내 친밀도와 업무 효율성의 관계를 분석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친밀도가 너무 낮으면 협력이 어렵다. 친밀도가 너무 높으면 객관성을 잃는다. 가장 효율적인 관계는 "적당한 친밀도"였다. [1] 연구자들은 이를 "최적 거리(optimal distance)"라고 불렀다. 서로를 알되, 얽히지 않는 거리. 도움을 주되, 의존하지 않는 거리.
심리학자 로빈 던바의 연구도 있다. 인간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수는 약 150명이다. [2] 그중에서도 층위가 있다. 가장 가까운 5명. 좋은 친구 15명. 친한 사람 50명. 아는 사람 150명.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과 가까울 수는 없다. 모든 사람과 멀 수도 없다. 적절한 층위를 만들어야 한다.
40년을 돌아보며 깨달았다. 너무 가까우면 얽히고, 너무 멀면 협력이 어렵다. 적정한 거리가 40년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었다. 나는 단기 친밀감을 포기하고, 장기 신뢰를 선택했다. 그것이 복리로 쌓였다.
어느 날, 한 후배가 자주 도움을 요청했다. 처음 몇 번은 도와줬다. 기꺼이. 하지만 계속되었다. 일주일에 세 번, 네 번. 나의 업무에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말해야 했다. "OOO님, 저도 제 일이 있어서 매번 도와드리기는 어려워요. 대신 이 부분은 이렇게 하시면 스스로 해결하실 수 있을 거예요." 후배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 이해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의존한 것 같네요. 스스로 해볼게요." 관계는 나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건강해졌다. 후배는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배웠고, 나는 내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또 어느 날, 동료가 사적인 고민을 털어놨다. "선배님, 요즘 너무 힘들어요. 남편이..." 처음엔 들어줬다. 공감해 줬다. 하지만 계속되었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내가 상담사가 된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많이 힘드시겠어요. 저도 응원하는데, 이런 깊은 고민은 전문가와 상담하시는 게 어떨까요? 제가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제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동료는 조금 서운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이해했다. "그래요, 제가 너무 의지한 것 같네요. 고마워요." 경계를 그었지만, 관계는 유지되었다.
가벼운 대화는 관계를 만든다. 하지만 깊은 비밀은 부담을 만든다. "주말 잘 보내셨어요?" 이런 소소한 대화는 좋다. "어제 남편이랑 싸웠는데..." 이런 깊은 고민은 조심해야 한다. 커피는 함께 마셔도 좋다. 하지만 매일은 아니다. 도움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동료가 요청하면 돕는다. 기꺼이. 하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 번의 도움은 신뢰를 만든다. 반복된 도움은 의존을 만든다. "이건 선배님이 해주시는 거죠?" 이렇게 되기 전에 선을 그어야 한다.
거절도 필요하다. "오늘은 좀 바빠서요." 명확하게 말한다. 하지만 "다음엔 제가 커피 살게요." 관계는 유지한다. No는 명확히. 하지만 따뜻하게.
레이 달리오는 『원칙』에서 말했다. "의미 있는 관계와 의미 있는 일, 이 둘은 서로를 강화한다."[3] 하지만 그는 또 말했다. "관계가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일이 관계를 해쳐서도 안 된다." 직장에서의 관계는 목적이 아니다. 수단이다. 함께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관계. 그 거리를 잃으면, 둘 다 잃는다.
정년을 맞은 지금, 가장 감사한 것이 있다. 40년 동안 적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과 깊은 친구가 되려 하지도 않았다는 것. 적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 거리가 40년을 지속 가능하게 했다.
당장 오늘부터 실천할 수 있는 것
첫째, 주 1-2회의 가벼운 대화. 매일 커피는 부담이다. 가끔의 커피는 즐거움이다. 빈도를 조절하라.
둘째, 도움 요청에 "아니요"를 연습하라. "오늘은 어려워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다음엔 제가 도와드릴게요"를 덧붙여라.
셋째, 사적인 고민의 깊이를 조절하라. "힘드시겠어요"는 좋다. 하지만 매일 1시간씩 들어주는 것은 경계를 넘는다. 공감은 하되, 한계는 명확히 하라.
이 세 가지를 한 달만 해보라.
당신의 직장 관계는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편안해질 것이다.
⏺️ 생각해 보기:
"나는 지금 누구와 너무 가까운가?"
"나는 지금 누구와 너무 먼가?"
적정 거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조금씩, 복리로 조절해 가세요.
직장 내 인간관계, 궁금한 것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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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관계의 황금률: 절묘한 거리 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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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dmondson, A. C. (2008, July-August). The competitive imperative of learning. Harvard Business Review, 86(7), 60–67.
[2] Dunbar, R. I. M. (1992). Neocortex size as a constraint on group size in primates. Journal of Human Evolution, 22(6), 469-493.
[3] Dalio, R. (2017). Principles: Life and Work. Simon & Schu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