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백마비마(白馬非馬), 창조적 회계의 탄생

by 연구소장

어둠이 짙게 깔린 한단의 밤거리. 피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은 골목을 빠져나오며, 위무기가 거칠게 검의 피를 털어냈다.


"신릉군이 보낸 자객이라니! 나 위무기가 바로 신릉군인데, 내가 나를 암살하라고 보냈단 말이오?"


위무기 장군의 얼굴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강무는 피 묻은 자객의 복면을 발로 툭 건드리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진정하십시오, 장군. 장군이 보낸 것이 아니란 건 제가 가장 잘 압니다. 이 자들은 과거 위나라에 있던 장군의 식객들 중, 여불위의 돈에 매수된 배신자들일 겁니다. 여불위는 장군의 이름을 사칭해 장군과 제 사이를 이간질하고, 동시에 제 목숨을 거두려 한 '다중(多重) 공작'을 편 겁니다."


"여불위 그 늙은 여우 같은 놈이 감히 내 사람들을 돈으로 사다니……!"


"돈의 힘은 주군의 은혜보다 직관적이니까요."


강무는 옆에서 자신의 팔짱을 꼭 끼고 있는 향희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의 살벌한 난전 속에서도 그녀는 강무의 곁에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많이 놀라셨습니까?"


"조금요. 하지만 선생이 제 허리를 안고 구를 때, 심장이 뛴 건 무서워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향희가 요염하게 눈웃음을 치며 강무의 가슴팍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었지만, 그녀의 눈빛 속에는 이 위험천만한 난세를 강무와 함께 온전히 돌파하겠다는 강한 유대감이 서려 있었다.


"자, 이제 돌아갑시다. 집안에 쌓인 '숙제'를 해결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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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상회의 본장(本莊) 지하 창고.


강무 일행이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횃불의 빛을 반사하며 번쩍이는 무언가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동전(銅錢)과 금덩이, 그리고 명도전(칼 모양의 화폐)이 문자 그대로 산처럼 쌓여 있었다. '백설(白雪)' 소금이 한단 귀족 사회를 휩쓸며 불과 한 달 만에 벌어들인 막대한 현금이었다.


"어휴, 냄새. 쇳내 때문에 머리가 다 아프네요."


향희가 코를 쥐며 말했다. 서 집사는 퀭한 눈으로 붓을 들고 동전 더미를 세고 있었다.


"대, 대행수 어른. 밤을 새워 세고 있습니다만, 동전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바닥의 나무 널빤지가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많은 현금을 여기 쌓아두니, 조나라 관아의 세무 관리들이 냄새를 맡고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강무는 산더미 같은 돈을 보며 혀를 찼다.

이것이 고대 경제의 가장 큰 한계였다. 화폐의 부피와 무게가 너무 커서, 돈이 많아질수록 보관과 운송 자체가 거대한 '비용'이자 '리스크'가 되는 현상.


"장군. 장군의 병사 이천 명 중 절반을 이 창고 호위에 투입하십시오. 그리고 서 집사."


"예, 대행수 어른!"


"이 장부, 엉망이군. 들어온 돈과 나간 돈을 그저 일렬로 적어놓기만 하니, 세금으로 얼마가 뜯길지 파악조차 안 되고 있어. 당장 내일 곽개(郭開) 그 탐관오리 놈이 세금을 핑계로 들이닥치면 이 돈의 절반을 합법적으로 강탈당할 거다."


"하오나, 소인 같은 일개 서생이 어찌 그 복잡한 셈을 다 하겠습니까요……."


강무는 미간을 짚었다. 소금과 철기 사업으로 벤처 기업 수준이었던 상회가 순식간에 대기업 규모로 커져 버렸다. 강무 혼자 전략을 짜고 영업을 뛰며 회계까지 볼 수는 없었다.


'자금을 은닉하고, 조나라의 세금 폭탄을 피해 갈 완벽한 방패가 필요하다. 1원의 오차도 없는 천재적인 숫자쟁이, 아니, 숫자로 사기를 칠 수 있는 예술가가.'


강무의 머릿속에 번뜩, 어떤 인물이 스쳐 지나갔다. 얼마 전 어전 회의에서 자신에게 영혼까지 털리고 나락으로 떨어진 사내.


"내일 아침 일찍, 평원군의 저택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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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평원군 조승의 저택 뒷마당.


한때 수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호령하던 수석 책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공손룡(公孫龍)은 때에 절은 옷을 입고 마당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왕흘에게 지도를 팔려던 매국 행위가 들통난 이후, 평원군은 그를 내치려 했으나 그가 알고 있는 비밀이 많아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식객의 가장 말석으로 강등시켜버렸다.


그때, 하인 하나가 몽둥이를 들고 공손룡을 다그치고 있었다.


"이봐, 공손 영감! 어제 외상으로 먹은 술값 석 냥, 언제 갚을 거야! 돈 안 내면 쫓아낸다고 했지!"


공손룡은 맞으면서도 꼿꼿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이 무식한 놈아! 내가 빌린 것은 '둥근 구리(銅)'이지, '돈(錢)'이 아니다! 구리라는 속성과 돈이라는 개념은 엄연히 다른 것! 고로 나는 네놈에게 돈을 갚을 의무가 없다!"


그의 전매특허인 '백마비마(白馬非馬)'의 응용판이었다. 하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이 늙은이가 끝까지 말장난을……!"


"그만."


강무가 나서며 하인의 손에 은화 한 닢을 쥐여주었다.


"이 자의 빚은 내가 대신 갚지. 그리고 평원군께 전해라. 이 쓸모없는 식충이의 남은 계약 기간을 내가 인수하겠다고."


하인은 은화를 보더니 굽신거리며 물러났다. 공손룡은 강무를 보자 눈에 독기를 품고 일어섰다.


"강무! 네놈이 나를 비웃으러 왔구나! 네놈이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비웃으러 온 게 아닙니다. 스카우트(Scout)하러 왔소. 당신의 그 잘난 혀를, 내 상회의 장부(帳簿)에 달아주려고."


강무는 공손룡의 멱살을 움켜쥐고 자신의 마차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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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상회의 집무실.


강무는 팔짱을 낀 채 꼿꼿하게 서 있는 공손룡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장사꾼 밑에서 일하라고? 내가 아무리 몰락했어도 고결한 명가(名家)의 사상가다. 돈을 세는 천한 짓은 하지 않겠소."


탁!

강무는 서 집사가 엉망으로 써놓은 장부 더미를 공손룡 앞의 탁자에 내던졌다.


"당신 철학의 본질은 '개념의 분리'요. A와 B가 섞여 있을 때, 그것을 교묘하게 쪼개어 전혀 다른 C로 포장하는 기술. 맞소?"


공손룡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의 철학을 단번에 꿰뚫어 본 자는 처음이었다.


강무가 장부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지금 우리 상회는 소금 10만 근을 팔아 금 1만 냥을 벌었소. 조나라 세법에 따르면 상업 이문의 3할을 세금으로 내야 하지. 자, 당신의 그 잘난 혀로 이 금 3천 냥의 세금을 안 내게 만들어 보시오."


"흥, 그깟 일. 조나라에서 번 돈이니 조나라 세금을 내는 것. 안 내면 도둑놈이지."


"틀렸소."


강무는 붓을 들어 장부의 빈 공간에 선을 그어 양쪽으로 나눴다.


"이쪽은 '차변(자산의 증가)', 이쪽은 '대변(부채와 자본의 증가)'이오. 자산과 자본의 흐름을 이중으로 기록하는 '복식부기(Double-entry bookkeeping)'지."


공손룡은 난생처음 보는 기하학적인 회계 방식에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가 소금을 팔아 창고에 쌓은 금 1만 냥은 '이익'이 아니오. 우리는 위무기 장군과 귀족들에게 상회의 지분(주식)을 담보로 채권을 팔았소. 즉, 우리 상회에 들어온 금은 전액 귀족들에게 갚아야 할 '부채(빚)'로 회계 처리되는 거요."


"무슨 소리요? 소금을 팔아서 번 돈인데 어찌 그게 빚이란 말이오?"


"백마가 말이 아니듯, 수익도 회계 기준에 따라 수익이 아닐 수 있소. 우리는 '자산'을 늘린 게 아니라 '부채'를 안고 있는 거요! 부채에는 세금을 매길 수 없지. 이것이 당신의 철학이 비즈니스와 만났을 때 벌어지는 마법이오."


공손룡의 입이 떡 벌어졌다.

늘 세상을 향해 궤변을 늘어놓으며 지적 우월감에 빠져 있던 그였다. 그러나 강무가 보여준 '자본주의의 궤변' 앞에서는 자신의 철학이 한낱 어린아이의 말장난처럼 느껴졌다.


공손룡의 눈에 핏발이 섰다. 천재의 지적 탐구심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자, 잠깐! 그렇다면…… 그 부채를 이자를 쳐서 갚는다는 명목으로 제나라에 설립한 유령 상단으로 송금한다면? 조나라의 장부상에는 우리 상회가 막대한 '적자'를 본 파산 직전의 기업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단 말이오?!"


"정확하오."

강무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바로 그것이 '조세 회피(Tax Avoidance)'와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의 원리요. 어떠소? 평원군 밑에서 술값이나 떼먹으며 흰 말이니 검은 말이니 떠드는 것보다, 내 밑에서 이 거대한 천하의 돈줄을 가지고 놀아보는 것이."


털썩.

공손룡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강무의 복식부기 장부를 쓸어만졌다. 마치 무림 고수가 절세의 비급을 얻은 듯한 희열이 그의 얼굴을 덮었다.


"대행수…… 아니, 주군. 제게 붓을 주십시오. 단 1원 한 푼도 조나라 관아에 빼앗기지 않는, 예술 같은 장부를 그려 보이겠습니다."


천하 상회의 첫 번째 핵심 참모, 최고 재무 책임자(CFO) 공손룡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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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뒤.


"비켜라! 관부의 명이다!"


천하 상회의 앞마당에 병사들을 대동하고 들이닥친 자는 조나라의 왕실 총신, 탐관오리의 대명사 곽개(郭開)였다. 살이 뒤룩뒤룩 찐 곽개는 오만한 표정으로 강무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강무냐? 감히 나라의 허락도 없이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고 폭리를 취한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


곽개는 콧김을 뿜으며 소리쳤다.

"소금은 예로부터 국가의 전매(專賣) 품목이다! 사사로운 장사치가 건드릴 영역이 아니야. 이것은 국가의 기틀을 흔드는 중죄. 여봐라! 당장 저 공장의 소금 가마솥을 부수고, 창고의 돈을 모조리 국고로 환수하라!"


이것은 명백한 '국유화(Nationalization)'의 폭력이었다. 권력을 이용해 알짜배기 민간 기업을 통째로 털어먹으려는 수작이었다.


병사들이 무기를 빼 들자, 위무기의 호위병들이 일제히 창을 겨누며 팽팽한 대치가 벌어졌다.


그때, 집무실 문이 열리며 새로 산 비단옷을 쫙 빼입은 공손룡이 튀어나왔다. 그는 과거의 남루한 식객이 아니었다. 천하 상회의 돈줄을 쥔 막강한 CFO의 오만함이 뚝뚝 묻어났다.


"멈추시오! 조나라 세법 제4조 2항! '산과 바다에서 채취한 염(鹽)은 국가에 속한다.' 맞소?"


공손룡의 일갈에 곽개가 움찔했다.

"그, 그래! 그러니 불법이란 뜻이다!"


"쯧쯧, 법을 읽을 줄만 알고 뜻은 모르는구려. 대감, 우리가 파는 것은 염(鹽)이 아니라 백설(白雪), 즉 '하얀 눈'이오."


"무슨 개소리냐! 저게 어찌 눈이란 말이냐! 먹어보면 짜디짠 소금인데!"


공손룡이 부채를 쫙 펼치며 특유의 궤변 랩(Rap)을 쏟아냈다.


"기존 소금의 본질은 '짠맛'과 '흙의 누런색'이오. 헌데 우리 상회의 백설은 간수를 완벽히 제거하여 색이 눈처럼 희고, 쓴맛이 없으며 오히려 단맛이 돌지. 형태는 바닷물에서 왔으나, 그 속성은 이미 기존의 소금 범주를 벗어나 새로운 화합물이 되었소! 고로 백설은 소금이 아니오(白雪非鹽). 하늘이 내린 기이한 하얀 가루를 가공해 파는 것에, 어찌 국가가 소금 전매법을 들이대며 환수를 운운한단 말이오!"


"이, 이 미친……!"


곽개는 눈을 뒤집고 뒷목을 잡았다. 전형적인 말장난이었지만, 법 조항의 명칭과 화학적 속성의 맹점을 교묘하게 파고든 논리 폭력 앞에서 무식한 곽개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곽개의 멘탈이 붕괴된 바로 그 타이밍.

강무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채찍으로 때렸으니, 이제 당근을 물려줄 차례였다.


"대감. 저희 상회의 재무 담당관이 법리에 밝아 말이 좀 지나쳤습니다. 노여움을 푸시지요."


강무는 병사들을 물리고 곽개를 은밀히 집무실 안으로 모셨다. 향희가 옥쟁반에 붉은 고깃덩어리들을 담아 내왔다.


"이게 무엇이냐? 내게 지금 뇌물로 고기를 주려는 게냐?"


"그냥 고기가 아닙니다. 저희 백설로 절여 만든 '염장육(鹽藏肉)'입니다. 1년을 상온에 두어도 절대 썩지 않지요."


곽개의 눈이 번쩍 뜨였다. 고대 사회에서 식량 보존은 생존 그 자체였다.


"대감. 지금 북방의 이목 장군과 남방의 조나라 정규군이 군량미가 썩어나가 골머리를 앓고 있지 않습니까? 쌀은 운송 중 상하기 십상이지만, 이 염장육은 가볍고 썩지 않으며 병사들의 근력을 폭발적으로 올려줍니다."


강무는 곽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제가 이 고기의 군납 독점권을 대감의 이름으로 넘겨 드리겠습니다. 저희 상회는 대감께 원가로 이 고기를 넘기겠습니다. 대감께서는 군부에 세 배의 가격으로 납품하시고, 그 중간 마진(Margin)을 챙기십시오. '전쟁터의 병사들에게 고기를 먹인 위대한 재상'이라는 명예는 덤입니다."


곽개의 입이 귀에 걸렸다. 소금 공장을 뺏으려다 실패했지만, 오히려 합법적으로 더 큰 국방 예산을 빼먹을 수 있는 '군납 비리'의 기회가 제 발로 굴러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완벽한 '모럴 해저드(Moral Hazard)'였다.


"허허…… 강 대행수. 자네 제법 말이 통하는 사람이구만. 백설은 소금이 아니라 눈이라는 그 신박한 논리, 내 전하께 잘 말씀드려 특별법으로 보호해 주겠네."


"대신, 관아의 불필요한 세무 조사는 앞으로 대감께서 다 막아주셔야 합니다."


곽개는 크게 웃으며 강무의 손을 맞잡았다.

이로써 강무는 적국의 위협보다 무서운 자국 관료의 규제를 타파하고, 가장 탐욕스러운 권력자를 상회의 방패막이(사외 이사)로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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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개가 호탕하게 웃으며 돌아간 후, 텅 빈 집무실.


"정말 염장육 마진을 다 넘겨주실 겁니까? 저런 도둑놈한테?"

위무기가 불만스럽게 묻자, 강무가 차를 마시며 대답했다.


"뇌물이 아닙니다. '로비 및 규제 회피 비용'이죠. 곽개라는 쓰레기를 먹여서, 조나라 왕실이라는 거대한 세금 괴물을 막아내는 방파제로 쓰는 겁니다."


그때, 저잣거리에 나갔던 향희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선생! 큰일 났습니다! 함양(진나라) 쪽에서 여불위가 움직였습니다!"


"자객을 또 보냈습니까?"


"아닙니다! 돈을 풀었습니다. 어젯밤부터 조나라 전역의 시장에 진나라 상인들이 나타나, 쌀이란 쌀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세의 세 배, 네 배를 주고 모조리 매점매석(買占賣惜)하고 있습니다!"


공손룡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쌀을 싹쓸이한다고? 그렇게 되면 한단성의 쌀값이 폭등해서 민란이 일어날 텐데! 이건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제 공격이오!"


"여불위…… 역시 스케일이 다르군."

강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암살은 개인을 향한 경고에 불과했다. 진짜 공격은 '곡물 투기를 통한 국가 경제 붕괴'였다. 식량의 가격이 오르면, 조나라 백성들이 가진 동전은 순식간에 쇳조각으로 전락한다.


"선생, 어쩌죠? 우리 창고에 있는 저 동전과 금을 풀어 우리도 쌀을 사들여야 하나요?"

향희가 다급히 물었다.


"아뇨. 여불위의 압도적인 현금 동원력을 정면으로 상대하면 우리 금고가 먼저 바닥납니다. 저들은 쌀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고, 우리가 비싸게 살 때 물량을 던져버려 우리를 파산시킬 겁니다."


"그럼 백성들이 굶어 죽는 걸 보고만 있단 말이오!" 공손룡이 부채를 쥐고 외쳤다.


강무는 지하 창고 쪽을 내려다보았다. 무겁고 불편한 실물 화폐들.

"실물 화폐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무겁고 한계가 명확하니까요. 우리는 이제 구리와 철을 버립니다. 내일부터 천하 상회는 '종이돈(지폐)'을 찍어낼 겁니다."


"종이돈이라니요? 종이 쪼가리를 누가 돈으로 인정합니까?"


"우리 상회의 막대한 소금과 철기 독점권이 그 종이의 신용(Credit)을 보증할 겁니다. 무한정 찍어내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면, 여불위가 가진 실물 화폐의 가치를 역으로 폭락시킬 수 있죠."


강무는 장부를 덮으며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국가의 화폐 발행권을 민간 기업이 침범하는 순간, 조나라 왕실과 제후들은 우리를 반역죄로 다스리려 들 겁니다. 공손룡의 회계 논리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진짜 법(法)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죠."


강무가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한단성 지하 감옥에 빚을 지고 갇혀 있다는 그 혀 짧은 천재, 한비(韓非)를 당장 빼내 와야 할 때가 왔습니다. 어떤 법망도 피해가는 악마의 계약서가 필요하니까요."


천하 상회의 두 번째 퍼즐, 최고 법무 책임자(CLO) 한비를 향한 시선이었다. 여불위와의 진짜 '화폐 전쟁'이 막을 올리고 있었다.


(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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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설명]


복식부기 (Double-entry Bookkeeping): 기업의 자산, 부채, 자본의 변동을 차변(왼쪽)과 대변(오른쪽)으로 나누어 이중으로 기록하는 회계 원리. 강무는 이 방식을 도입해 상회의 막대한 현금을 '수익'이 아닌 주주에게 갚아야 할 '부채'로 둔갑시켜 세금을 회피했다.


조세 회피 (Tax Avoidance):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인 수단을 이용해 납세액을 줄이는 행위. (불법인 탈세와 구분됨). 공손룡의 '백마비마(형태와 속성의 분리)' 철학이 회계학과 결합하여 극단적인 조세 회피처를 만들어낸다.


국유화 (Nationalization): 민간 자본으로 운영되던 기업이나 자산의 소유권을 국가가 강제로 이전받는 것. 탐관오리 곽개는 소금을 핑계로 천하 상회의 자산을 국가의 이름으로 강탈하려 했다.


모럴 해저드 (Moral Hazard): 도덕적 해이.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현상. 국가의 안위보다 자신의 뇌물(염장육 마진)을 챙기기에 급급한 곽개의 태도를 말한다.


초인플레이션 (Hyperinflation): 물가가 단기간에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급격히 오르고 화폐의 가치가 휴지 조각처럼 폭락하는 경제 현상. 여불위는 진나라의 막대한 자본으로 조나라의 쌀을 싹쓸이하여 경제 붕괴를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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