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성역(聖域)의 성주(城主), 그리고 인질극

by 연구소장

[서울 강남, 천명 글로벌 의료 재단(CGMF) 본원 / 그날 새벽 2시]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새벽.


일반 환자들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천명 외상센터의 지하 VIP 전용 주차장으로, 번호판이 가려진 검은색 대형 세단과 장갑차 수준으로 개조된 벤츠 스프린터 구급차 수십 대가 꼬리를 물고 미끄러져 들어왔다.


끼이익-!


차량들이 멈춰 서기가 무섭게, 검은 정장에 이어폰을 낀 경호원들이 개미떼처럼 쏟아져 나와 주변을 에워쌌다.


"전방 이상 무! VIP 하차하십니다!"


경호원들의 삼엄한 호위 속에 차에서 내린 이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권력의 축소판이었다.


집권 여당의 당대표, 야당 총재, 대법원장, 검찰총장, 그리고 재계 서열 10위권 내의 총수들까지. 며칠 전 청와대 비밀 만찬에 참석했던 상위 0.01%의 최고위층 인사들 40여 명이, 하나같이 사색이 된 얼굴로 주차장에 발을 디뎠다.


"이게 도대체 무슨 해괴한 짓거리요! 청와대 비서실장이 당장 천명 병원으로 대피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해서 오긴 왔소만!"


여당 당대표가 불룩 나온 배를 출렁이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맞습니다! 국방부 장관이 쓰러진 게 전염병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우리를 이런 병원 지하에 몰아넣다니! 감염이라도 되면 어쩌려고!"


재벌 총수 하나도 거들며 손수건으로 코를 막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속에 이미 시한폭탄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특권 의식에 찌들어 불평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때, 주차장 안쪽에서부터 차갑고 규칙적인 구둣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뚜벅. 뚜벅.


"불만이 많으시군요. 새벽잠을 깨워 모셔 온 건 죄송합니다만, 목숨값이 걸린 일이라 조금 서둘렀습니다."


어둠 속에서 내가 걸어 나왔다.


맞춤형 다크 네이비 수트 위에 하얀 의사 가운. 그리고 내 뒤로는 전술 기동복에 가스총과 삼단봉으로 무장한 1기생 50명이 거대한 벽처럼 도열해 있었다.


"천이환 회장...!"


검찰총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섰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신이 정부와 모종의 합의를 하고 이 병원을 치외법권으로 만들었다는 건 들었지만, 우리를 상대로 납치극이라도 벌이려는 겁니까? 당장 설명하시죠!"


"납치극이라뇨. 저는 분명 비서실장님을 통해 '살고 싶으면 오시라'고 정중히 초대를 부탁드렸는데요."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그 오만한 권력자들을 서늘한 눈으로 훑어보았다.


"설명해 드리죠. 지금 여러분의 혈관 속에는, 며칠 전 만찬에서 드셨던 최고급 와인과 함께 '마이크로 나노 머신'이라는 아주 앙증맞은 암살 병기들이 수백만 마리씩 헤엄치고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선배님들은 이미 그 기계 벌레들한테 혈관이 다 파먹혀서, 지금 우리 병원 중환자실에서 피를 걸러내고 계시고요."


"뭐, 뭐라고? 나노 머신? 암살?"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느 안전이라고 청와대 만찬장에 독을 푼단 말이오!"


당대표가 펄쩍 뛰었지만, 그의 이마에는 이미 굵은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들일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는 더 예민한 법이다.


"믿기 싫으시면 지금 당장 차를 타고 이 병원 밖으로 나가셔도 좋습니다."


나는 출구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병원 문턱을 넘는 순간, 그 암살 병기를 조종하는 리모컨을 쥔 '제 아버지'가 스위치를 누르시겠죠. 그러면 여러분은 5분 안에 온몸의 구멍으로 피를 쏟으며 아주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겁니다. 선택하시죠. 이 요새 안에서 제 통제를 받으며 목숨을 부지할지, 아니면 밖으로 나가서 자유롭게 피를 토하며 죽을지."


정적이 흘렀다.


그 누구도 선뜻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국방부 장관이 원인 불명으로 쓰러졌다는 첩보를 이미 접했던 그들이기에, 내 말이 단순한 협박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다.


"크, 크헉...!"


그때였다.


무리 한가운데 서 있던 대법원장이 갑자기 목을 부여잡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의 눈, 코, 입에서 검붉은 피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권태형 국방부 장관이 보였던 증상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대, 대법원장님! 헉, 피, 피가...!"


주변에 있던 인사들이 기겁하며 모세의 기적처럼 양옆으로 갈라졌다. 방금 전까지 큰소리치던 경호원들조차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어붙었다.


"아버지가 참을성도 없으시지. 그새를 못 참고 본보기로 스위치를 하나 누르셨군."


나는 혀를 차며 쓰러진 대법원장에게 다가갔다.


[시스템: 신의 손(Lv.1) / 약점 포착 발동]


내 눈앞에 대법원장의 혈관계가 3D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심장판막과 뇌혈관 쪽으로 미세한 금속 찌꺼기들이 미친 듯이 모여들며 세포를 파괴하고 있었다. 당장 조치하지 않으면 3분 안에 뇌사다.


"수진아! EMP-쉴드(전자기 차폐) 이동식 카트 가져와! 철민이는 환자 환복 생략하고 바로 침대에 눕혀!"


"라져!"


나의 불호령에 1기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미리 대기시켜 두었던 특수 납 차폐 필름이 씌워진 이동식 카트가 굴러왔다. 외부의 전파 신호를 완벽하게 차단하여 원격 조종을 끊어버리는 임시 '패러데이 새장(Faraday Cage)'이었다.


대법원장을 카트 위로 들어 올리고 차폐 필름을 덮자마자, 폭주하던 혈압과 심박수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전파 차단 확인. 폭주 멈췄습니다! 하지만 이미 손상된 혈관에서 내출혈이 심합니다!"


박철민이 지혈대를 채우며 외쳤다.


"바로 혈액 정화 들어간다. 여기 주차장 바닥에서."


나는 가운 주머니에서 메스를 꺼내 들었다.


"천, 천 회장! 미쳤소! 먼지 구덩이인 주차장에서 배를 가르겠다니!"


검찰총장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입 다물어. 수술실까지 올라갈 시간 없어. 감염 관리보다 당장 피 빼서 기계 걸러내는 게 먼저야."


나는 망설임 없이 대법원장의 정장 바지를 찢어내고, 서혜부 동맥을 향해 메스를 꽂아 넣었다. 검붉은 피가 아스팔트 바닥으로 튀었다. 대한민국 법의 최고 권위자가, 지하 주차장 한복판에서 20대 젊은 의사의 손에 의해 무자비하게 해체되고 다시 조립되고 있었다.


"에크모 펌프 온(On)! 마그네틱 필터 가동해!"


위잉-!


기계음과 함께 대법원장의 피가 튜브를 타고 빠져나와, 전자기 필터를 거치며 검은 나노 머신 찌꺼기들을 걸러내기 시작했다.


단 5분.


응급 처치를 마친 대법원장의 호흡이 안정을 되찾고, 산소포화도가 정상 궤도로 올라왔다.


나는 피 묻은 장갑을 훌렁 벗어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넋이 나가 있는 대한민국 권력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방금 보셨습니까."


나의 목소리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저 문밖에서 당신들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건 제 아버지지만, 이 문 안에서 당신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건 접니다. 당신들이 밖에선 헌법을 주무르고 경제를 굴리는 귀족들일지 몰라도, 내 병원에 들어온 이상 그저 피 흘리면 죽는 나약한 '환자'일 뿐입니다."


나는 그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못을 박았다.


"이 시간부로, 천명 외상센터 VVIP 병동 전체를 전파 차단 구역으로 설정하고 여러분을 격리합니다. 외부와의 통신, 면회, 외출 일절 금지. 제 통제에 따르지 않으시겠다면, 당장 짐 싸서 나가십시오. 붙잡지 않겠습니다."


침묵.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눈앞에서 죽어가던 대법원장을 단 5분 만에 살려낸 압도적인 무력(의술)과, 정부마저 승인한 치외법권의 성역.


그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진정한 권력의 중심이 청와대도, 국회도 아닌, 이 핏비린내 나는 지하 주차장의 젊은 의사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좋습니다. 다들 입원 수속하시죠."


나는 백강우에게 손짓했다.


최고 권력자들이 1기생들의 지시에 따라, 고개를 푹 숙인 채 환자용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기이하고도 통쾌한 행렬이 시작되었다.


[같은 시각, 천성전 지하 벙커]


"이런 젠장할...!! 연결 끊김? 또 연결 끊김이라고?!"


천무성 회장이 모니터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포효했다.


그의 눈앞에 띄워진 수십 개의 타겟(VIP) 생체 신호 중 절반 이상이 일제히 'Signal Lost(신호 유실)' 상태로 변해버린 것이다.


"교주님! 천명 병원의 VVIP 병동 전체에 강력한 군사용 전파 차폐장치가 가동된 것 같습니다. 인공위성 신호조차 뚫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대사제가 사색이 되어 보고했다.


"그 녀석 짓이구나. 이환이 놈이 병원을 통째로 '패러데이 새장'으로 만들어버렸어!"


천무성은 휠체어 손걸이를 부서져라 꽉 쥐었다.


자신의 가장 강력한 카드였던 'VIP 인질극'을, 아들이 고스란히 가로채어 '자신의 방패'로 역이용해 버린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뇌부가 천이환의 병원에 갇혀 있는 이상, 천무성은 정부를 협박할 명분도, 아들을 무력으로 칠 수도 없게 되었다. 군대를 동원해 병원을 폭격했다간 그 안에 있는 국가 요인들이 떼죽음을 당할 테니까.


"크흐흐... 하하하핫!!"


분노로 일그러졌던 천무성의 얼굴이, 이내 기괴한 광소로 변했다.


"정말로 내 아들이 맞구나! 이 늙은 아비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체스판을 가지고 노는 꼴이라니! 그래, 왕관을 쓸 자격이 충분해! 당장 내 뇌를 저 젊고 싱싱한 몸뚱어리에 쑤셔 넣고 싶어 미치겠구나!"


천무성은 눈을 번뜩이며 자신의 태블릿 PC를 꺼내 들었다.


그의 화면에는, 전파 차폐장치 너머에 있는 단 하나의 특별한 신호가 여전히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


[Target: 천이환 / 현재 동기화율: 20% (억제제 투여로 일시 정지)]


"외부 병동은 차단했어도, 내 아들의 몸속에 심어둔 메인 코어의 양자 통신망까지는 완벽히 막지 못했지. 녀석도 살기 위해선 병원 안팎을 돌아다녀야 할 테니."


천무성이 화면 속의 붉은 점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아담아. 네가 쌓아 올린 그 철옹성 안에서, 서서히 내 숨결에 갉아 먹히는 기분을 만끽해 보거라. 억제제가 네 간을 다 녹여버리기 전에, 스스로 벙커 문을 열고 내 발밑으로 기어오게 만들어주마."


[천명 외상센터, 이사장실 / 그날 아침]


"크윽...!"


세면대를 짚은 나의 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거울 속 내 얼굴은 핏기가 가셔 창백했고, 코피가 멈추지 않아 하얀 세면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통신망이 차단된 VIP들 대신, 나를 향한 동기화 신호의 출력을 미친 듯이 높이고 있는 탓이었다.


"회장님, 안 됩니다. 오늘 벌써 두 번째 코피입니다. 간 수치(AST/ALT)가 1000을 넘겼어요. 이대로 억제제를 계속 맞으면 황달이 오고, 급성 간부전으로 혼수상태에 빠질 겁니다!"


뒤따라 들어온 민도현이 수건을 건네며 울부짖었다.


"닥쳐...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


나는 피를 뱉어내고 찬물로 세수를 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아직 쓰러질 수는 없었다.


"EMP 도착까지 며칠 남았지."


"9일입니다... 헌터 요원 말로는 미 공군 수송기가 알래스카 기지를 경유해서 들어온다고, 어떻게든 일정을 당겨보려 했지만 그게 최선이랍니다."


"9일..."


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거칠게 닦으며 이사장실 책상으로 걸어갔다.


"9일 동안 침대에 누워 억제제만 맞고 있다간 뇌가 타버리기 전에 아버지가 다른 수작을 부리겠지. 방어만 해서는 이길 수 없어. 공격해야 해."


"공격이요? 하지만 천성전은 사이비 신도 수만 명이 지키고 있는 요새입니다. 경찰 병력도 뚫지 못하는데 저희 기동대 100명으로 거길 치겠다고요?"


"아니. 뱀의 대가리를 치기 전에, 놈의 꼬리부터 잘라야지."


나는 책상 위에 펼쳐진 서류들을 넘겼다. 파이탄에서 닥터 장을 고문(?)해서 얻어낸 천명 바이오의 비자금 및 비밀 연구소 리스트였다.


"강남역 테러에 쓰인 '샘플 Z'. 그 막대한 양의 약물을 가평의 종교 시설 지하실에서 뚝딱 만들어낼 수는 없어. 분명 아버지가 빼돌린 국내 비밀 제조 공장이 어딘가에 가동되고 있을 거다."


나는 리스트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천명 생명과학 융합 연구소 - 인천 송도 지부]."


"이곳은... 공식적으로는 폐쇄된 곳 아닙니까? 작년에 부도 처리되어서 압류 딱지가 붙어있을 텐데요."


"서류상으로만 폐쇄됐겠지. 송도 항구랑 가까워서 해외로 물건을 빼돌리거나 원료를 밀반입하기 가장 좋은 위치야. 강남역 테러에 쓰인 괴물들도 여기서 약물 세팅을 마치고 풀려났을 확률이 높아."


나는 가운을 벗고 전술 기동복 재킷을 챙겨 입었다.


"강우 형이랑 1기생 타격대 30명 즉각 출동 대기시켜."


"회장님! 직접 가시겠다고요? 지금 간 수치로는 움직이시는 것조차 무리입니다!"


민도현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절규했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리고, 이건 단순한 공장 철거 작업이 아니야."


나는 권총집을 허리춤에 차며 서늘하게 눈을 빛냈다.


"아버지가 강남에 푼 건 실패작들뿐이었어. 만약 진짜로 완성된 '아담 프로젝트'의 후속 모델... 즉, 나를 대체할 또 다른 괴물이 그 공장 안에 만들어지고 있다면? 경찰 특공대 수백 명이 가도 전멸이다. 나 아니면 그 기계충들을 제압할 수 없어."


민도현은 내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깨닫고, 억제제 앰플과 초고농도 에피네프린이 담긴 구급 키트를 챙겨 들었다.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현장에서 쓰러지시면 제 손으로 심장에 주사를 꽂아서라도 깨우겠습니다."


"맘대로 해."


나는 이사장실 문을 박차고 나섰다.


9일.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째깍거리고 있었고, 나의 육체는 붕괴의 초읽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나노 머신이 아니라 극한의 분노와 의지였다.


신이 된 줄 착각하는 늙은 괴물에게,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똑똑히 보여줄 시간이다.


"가자, 사냥하러."


천명 외상센터의 지하 주차장에서, 검은색 전술 차량 세 대가 인천 송도를 향해 굉음을 내며 질주를 시작했다.


진정한 피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제28화 끝.

이전 27화제27화. 대한민국의 심장을 인질로 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