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송도의 유령, 그리고 진화된 악마

by 연구소장

[인천 송도, 폐쇄된 천명 생명과학 융합 연구소 앞 / 새벽 4시]


서해안에서 밀려온 짙은 해무가 거대한 공단 단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서류상으로는 1년 전 부도 처리되어 전기가 끊긴 폐건물. 하지만 야간 투시경과 열화상 카메라로 무장한 기동대원들의 시야에 비친 이 연구소는, 시뻘건 열기를 뿜어내며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심장이었다.


"회장님, 열화상 스캔 결과입니다. 지하 2층과 3층 부근에서 대규모 전력 사용 흔적과 함께 다수의 생명체 반응이 잡힙니다. 폐건물이라더니, 안에서는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검은색 전술 차량의 보닛 위에 지도를 펼친 백강우가 낮게 보고했다.


전술 방검복을 입은 30명의 1기생 타격대는 소음기가 장착된 마취총과 삼단봉, 그리고 의료용 제세동기를 개조한 스턴건으로 무장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보안 병력은?"


"정문과 후문에 각각 4명씩. 옥상에 저격수로 추정되는 인원 2명입니다. 그런데 놈들의 움직임이... 일반적인 사설 용병이나 경비업체 수준이 아닙니다. 야간 투시경을 끼고 완벽한 전술 대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창백해진 이마를 쓸어내렸다.


욱신거리는 두통이 가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쏘아대는 강제 동기화 신호를 억제제로 짓눌러 놓았지만, 내 간 수치는 이미 정상인의 수십 배를 뛰어넘어 한계에 달해 있었다. 피 맛이 섞인 침을 바닥에 뱉어내고, 권총집에 꽂힌 개조형 마취총을 빼 들었다.


"당연히 일반 용병이 아니겠지. 아버지가 이 중요한 '공장'을 헐값에 산 깡패들한테 맡겼을 리가 없잖아. 아마도 강남역에 푼 실패작들과 달리, 이성을 유지하면서 고통만 삭제시킨 '개량형 감염자'들일 확률이 높다."


나는 뒤에 선 1기생들을 돌아보았다.


"전원 명심해. 놈들은 실탄을 맞아도 아픔을 못 느끼고 반격할 거다. 우리가 파이탄에서 배운 대로, 철저하게 중추 신경을 노려라. 뇌간이나 경동맥에 수면 진정제를 꽂아 넣거나, 스턴건으로 신경 다발을 태워버려. 사살이 목적이 아니다. 영구적인 '마비'가 목적이다."


"라져!"


"강우 형, 옥상 저격수부터 무력화해. 진입은 지하 주차장 환풍구를 통한다."


[연구소 지하 2층, 메인 제조 공정실]


위잉- 치이익!


환풍구 그릴이 소리 없이 뜯겨 나가고, 검은 그림자들이 밧줄을 타고 지하 연구소 복도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복도는 섬뜩하리만치 고요했지만, 공기 중에는 파이탄의 제4구역에서 맡았던 그 역겨운 화학 약품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우리는 벽에 바짝 붙어 수신호로 진형을 유지하며 메인 공정실로 향했다.


[전방 10미터, 경계 병력 2명 접근 중.]


무전기를 통해 옥상을 점거한 백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간다."


박철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코너를 도는 경비병들의 사각지대로 유령처럼 파고들었다.


"컥...!"


신음조차 내지 못할 완벽한 초크. 박철민이 한 놈의 목을 졸라 기절시키는 동시에, 뒤따르던 1기생이 다른 한 놈의 목덜미에 고농도 마취 주사를 꽂아 넣었다. 바닥에 쓰러진 놈들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동공이 풀려 있고 혈관이 팽창되어 있어. '샘플 Z'를 미량 투여해서 공포심과 피로를 지워버린 강화 병사들이군. 아버지가 미치광이 군대를 만들고 있었어."


우리는 기절한 경비병들을 뒤로하고 메인 공정실의 육중한 철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미친..."


민도현이 안경을 고쳐 쓰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축구장 크기의 지하 공장.


그곳에는 수십 개의 거대한 원통형 배양 수조가 붉은빛을 내뿜으며 돌아가고 있었고, 수조 안에는 강남역 테러에 쓰였던 광견병 변이 바이러스, '샘플 Z'의 원액이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경악하게 한 것은 약물의 양이 아니었다.


공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은색의 금속 용기들. 그것은 수류탄이나 알약 형태가 아니라, **'대형 에어로졸(Aerosol) 분사기'**였다.


"회장님! 저거... 가스 살포기 아닙니까?"


박철민이 사색이 되어 물었다.


민도현이 재빨리 근처의 통제 단말기에 노트북을 연결해 해킹을 시도했다.


"맞습니다! 액체 상태의 바이러스를 기화시켜서 공기 중으로 퍼뜨리는 장치입니다! 환풍구나 지하철 배기구에 저걸 하나만 터뜨려도, 반경 1km 이내의 사람들이 호흡기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감염됩니다! 잠복기도 혈액 감염보다 훨씬 빠를 거예요!"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는 강남역에서의 테러를 통해 바이러스의 위력을 테스트했고, 이제 이 에어로졸 폭탄을 서울 전역의 지하철역과 인구 밀집 지역에 동시다발적으로 터뜨릴 계획이었던 것이다. 국가의 수뇌부는 병원에 가둬두고, 길거리의 서민들은 짐승으로 만들어버리는 완벽한 종말(Apocalypse)의 시나리오.


"도현아, 당장 저 분사기들 타이머 해제하고 배양 수조 밸브 다 잠가. 그리고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원본 데이터랑 원료 배합 비율 전부 다운로드해!"


나는 메스를 꺼내 들며 공정실 주변을 경계했다.


"우리가 조금만 늦었어도 내일 아침 출근길에 서울 시민 절반이 좀비가 될 뻔했어. 당장 이 끔찍한 공장을 정지시켜."


[삐- 삐- 삐-!]


[경고: 비인가 접속이 감지되었습니다. 시설 방어 프로토콜을 가동합니다.]


그 순간, 공장 전체의 조명이 붉은색 비상등으로 바뀌며 요란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단말기를 해킹하던 민도현이 키보드를 부서져라 두드렸다.


"젠장! 물리적 방화벽입니다! 외부에서 메인 서버를 강제로 차단하고 시설을 잠가버렸어요!"


지이잉- 쾅!


우리가 들어왔던 메인 공정실의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혀버렸다. 완벽한 독안의 쥐가 된 것이다.


[크흐흐흐... 역시 여기까지 찾아올 줄 알았다. 내 자랑스러운 아들아.]


공장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늙은 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버지, 천무성이었다.


"아버지. 환영 인사가 너무 요란하군요. 직접 마중 나오시지 않고 숨어서 스피커로 떠드시는 걸 보니, 어지간히 겁이 나셨나 봅니다."


나는 천장에 달린 CCTV를 노려보며 차갑게 응수했다.


[겁? 내가 왜 겁을 내겠느냐. 네가 그 썩어가는 간을 부여잡고 이곳까지 기어들어 온 순간, 나는 축배를 들고 있었다. 네가 그 병원 요새에 틀어박혀 있었다면 빼내기 귀찮았을 텐데,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와 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무덤이 될지, 당신의 마지막 장기 말이 박살 나는 처형장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죠. 이 에어로졸 폭탄들, 세상의 빛을 볼 일은 영원히 없을 겁니다."


[그래. 그깟 가스통 몇 개는 부숴도 좋다. 어차피 그것들은 너를 이 공장으로 유인하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으니까.]


천무성의 웃음소리가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파이탄에서 001번, '실패한 신'을 네가 제압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담아. 아비가 수십 년을 바친 프로젝트가 고작 그 정도 수준일 거라 생각했느냐? 너의 그 완벽한 육체를 완성하기 위해, 그전에 거쳐 갔던 수많은 프로토타입들이 있다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쿠궁-!


천무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장 안쪽의 거대한 화물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전원 전투 준비! 방패 올려!"


무전기 너머로 합류한 백강우와 1기생들이 원형 방어 진형을 구축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걸어 나온 것은, 강남역에서 보았던 짐승 같은 감염자들이 아니었다.


신장 2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체구. 온몸은 강화 슈트와 군용 방탄복으로 감싸여 있었고, 얼굴에는 기괴한 형태의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그들의 팔이었다.


양팔의 전완근 부분에 뼈와 살을 뚫고 기계 장치가 이식되어 있었고, 그 끝에는 날이 선 티타늄 합금 블레이드와 소형 유탄 발사기가 달려 있었다.


인간과 기계, 그리고 바이러스가 결합된 끔찍한 혼종(Chimera).


생체 병기 프로토타입. 일명 '헬하운드(Hellhound)' 두 마리였다.


"이... 이런 미친! 사이보그입니까?!"


박철민이 방패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저 아이들의 뇌에는 너와 같은 나노 머신 코어가 이식되어 있지. 비록 너처럼 자아를 유지하는 완벽한 융합은 실패했지만, 철저하게 내 명령에만 복종하는 완벽한 살육 기계로 다시 태어났다. 아픔도, 공포도, 죽음도 모르는 진정한 괴물들이지.]


천무성의 목소리에 살기가 뚝뚝 묻어났다.


[잡아라. 사지는 잘라내도 좋다. 뇌와 몸통만 살려서 데려와라!]


"크아아아아!!"


헬하운드 두 마리가 짐승의 포효를 내지르며 바닥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산개해! 정면으로 받지 마!!"


내가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쾅-!!


헬하운드 한 마리가 우리 진형 한가운데로 떨어지며 방패를 내리찍었다. 티타늄 블레이드가 방검 방패를 두부 썰듯 쪼개버렸고, 방패를 들고 있던 1기생 두 명이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이 새끼가!"


백강우가 스턴건을 최대 출력으로 맞추고 놈의 목덜미를 찔렀다.


파지직! 5만 볼트의 전류가 흘렀지만, 헬하운드는 고개만 까딱할 뿐 오히려 백강우의 팔을 잡아채 허공으로 집어 던졌다.


"강우 형!"


"제길, 가죽 밑에 전도성 차폐 필름이 이식되어 있습니다! 전기 충격이 안 통합니다!"


민도현이 스캐너를 보며 절규했다.


"전기가 안 통하면, 관절을 썰어버리면 돼!"


나는 양손에 메스를 쥐고 다른 한 마리의 헬하운드를 향해 돌진했다.


[시스템: 신의 손(Lv.1) 강제 활성화]


[시스템: 약점 포착 강제 활성화]


시야가 느려지고 놈의 인체 구조가 떠올랐다. 강화 슈트의 빈틈. 겨드랑이 아래를 지나는 액와동맥(Axillary artery)과 상완신경총. 아무리 기계를 달아놓았어도 인간의 뼈대를 쓰고 있는 이상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은 존재한다.


서걱-!


나는 놈의 공격을 간발의 차로 피하며, 슈트의 이음새 사이로 메스를 깊숙이 꽂아 넣었다.


"크어억...!"


티타늄 블레이드를 휘두르려던 놈의 오른팔이 툭 떨어지며 멈췄다.


"철민아! 다리!"


"라져!"


박철민이 바닥을 구르며 놈의 무릎 뒤쪽, 오금의 맨살이 드러난 부위에 마취 주사를 3연발로 박아 넣었다. 신경이 끊어지고 마취액이 퍼지자, 헬하운드 한 마리가 중심을 잃고 무릎을 꿇었다.


"머리에 바람 구멍을 내주마."


내가 놈의 방독면 사이로 메스를 찔러 넣으려던 바로 그 순간.


[경고: 마스터(천무성)가 근거리 네트워크를 통해 강력한 펄스 신호를 전송합니다.]


[체내 동기화율 폭주: 50%... 65%... 80%!]


"크아아아악!!"


내 입에서 짐승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머리통이 깨질 듯한, 아니 뇌세포 하나하나가 불타오르는 듯한 극강의 고통. 시야가 붉은색 노이즈로 뒤덮이며 픽셀처럼 깨지기 시작했다.


내 몸의 관절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기괴하게 꺾이더니, 들고 있던 메스가 내 자신의 목을 향해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회, 회장님!!"


"오, 오지 마...!"


나는 왼손으로 메스를 쥔 오른손의 손목을 필사적으로 부여잡았다. 내 몸 안에서 두 개의 자아가 처절하게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하하하! 어리석은 놈. 네가 이 지하 연구소에 들어온 순간, 이곳에 설치된 나노 머신 증폭기가 네 몸의 방화벽을 강제로 뚫어버렸다! 억제제 따위로는 막을 수 없는 출력이지. 이제 네 육체는 온전히 나의 것이다!]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천무성의 환희에 찬 목소리.


"크르륵..."


내가 쓰러져 발작하는 사이, 마취제를 맞고 무릎을 꿇었던 헬하운드가 다시 일어섰다. 놈은 나의 멱살을 움켜쥐고 한 손으로 나를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이사장님 놔, 이 깡통 새끼야!"


백강우와 1기생들이 달려들었지만, 다른 한 마리의 헬하운드가 유탄을 발사하며 그들의 접근을 막았다.


콰앙-! 폭발음과 함께 연구소의 파편들이 쏟아져 내렸다.


"회장님! 숨을 쉬십시오! 억제제 투여하겠습니다!"


파편을 뚫고 달려온 민도현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내 허벅지에 주사기를 꽂으려 했다.


"안... 돼..."


나는 피를 토하며 민도현의 손을 쳐냈다.


"이 이상... 억제제를 맞으면... 간이 완전히 녹아서... 내일 죽어... 수술도... 못 해..."


"그럼 어떡합니까! 이대로면 뇌를 먹혀서 오늘 당장 천무성의 꼭두각시가 될 텐데!"


나는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민도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오른쪽 눈은 붉게 충혈되어 짐승처럼 번뜩이고 있었지만, 왼쪽 눈만은 처절하게 인간의 이성을 붙잡고 있었다.


"도현아... 노트북 켜."


"네?"


"이 연구소에... 아버지의 나노 머신 신호를 증폭시키는 송신기가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반대로... 그 송신기를 해킹해서... 역으로 '간섭 주파수(Jamming)'를 쏠 수도 있다는 뜻이잖아..."


나의 말에 민도현의 동공이 커졌다.


"하지만 회장님! 간섭 주파수를 회장님 몸에 쏘면... 회장님의 뇌신경과 나노 머신이 충돌해서 그 자리에서 쇼크사하실 수도 있습니다! 심정지가 올 거라고요!"


"상관없어... 어차피... 9일 뒤에... 심장 멈추는 수술 할 거였잖아... 일정이 조금... 당겨진 것뿐이야..."


나는 나를 들고 있는 헬하운드의 방독면을 박치기로 강하게 들이받았다.


깡-!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멈칫한 사이, 나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놈의 겨드랑이 틈새에 쑤셔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크어억!"


놈이 나를 놓치고 뒷걸음질 쳤다. 나는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당장 해, 민도현!! 이 끔찍한 기생충 새끼들, 내 머릿속에서 다 태워버리라고!!"


나는 절규했다.


"미치겠네 진짜!!"


민도현이 욕설을 내뱉으며 노트북을 펼치고 메인 서버 단말기에 접속했다. 그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날아다니듯 미친 속도로 코딩을 시작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발악하지 마라! 그 몸은 내 것이다!!]


당황한 천무성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터져 나왔다.


"강우 형! 철민이! 도현이 해킹 끝날 때까지 1분! 1분만 저 괴물 새끼들 막아!"


내가 바닥을 기며 소리쳤다.


"전원, 목숨 걸고 바리케이드 쳐라!! 저 깡통들 다리통에 매달려서라도 회장님 지켜!!"


백강우가 부러진 팔을 부여잡고 방패를 치켜들며 포효했다.


30명의 의대생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두 마리의 헬하운드 앞을 육탄으로 막아섰다. 뼈가 부러지고 피가 튀는 처절한 방어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45초 뒤.


"뚫었습니다!! 메인 증폭기 해킹 완료! 간섭 펄스, 최대 출력으로 쏩니다!!"


민도현이 엔터키를 강하게 내리쳤다.


위이이잉-!!


연구소 전체의 전등이 깜빡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초음파와 전자기 펄스가 공간을 찢어발겼다.


"크아아아아아아악!!!"


나의 입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뇌혈관을 파고들던 수천만 개의 나노 머신들이, 간섭 주파수에 의해 합선을 일으키며 내 머릿속에서 말 그대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고, 온몸의 근육이 끊어질 듯 경련했다.


동시에, 헬하운드 두 마리 역시 머리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발작하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놈들의 뇌에 심어져 있던 코어 역시 펄스에 의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안 돼!! 내 아담이!! 내 작품이!! 멈춰라! 당장 멈춰!!]


스피커 너머 천무성의 비명이 단말마처럼 끊어졌다.


[시스템 심각한 오류 발생.]


[나노 머신 코어 네트워크... 70% 파괴... 80% 파괴...]


[숙주의 심박수가 극단적으로 저하됩니다. 30... 20... 10...]


[심정지(Cardiac Arrest) 발생.]


삐---------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멈추고, 완벽한 정적이 찾아왔다.


나의 시야는 암흑으로 물들었고, 심장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회장님!! 이사장님!!"


"심정지입니다! 맥박이 안 잡혀요!!"


"수진아, 제세동기 가져와! CPR(심폐소생술) 시작해! 빨리!!"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나의 귓가에, 1기생들의 피맺힌 절규와 분주한 발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져갔다.


죽음.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채워놓은 노예의 목줄을 끊어내고, 온전한 나의 육체와 자유 의지를 되찾기 위해 치러야만 하는, 지독하게 비싼 통행료일 뿐이었다.


'살려내라, 내 새끼들. 내 심장을 멈추게 한 것도 너희들이니, 다시 뛰게 만드는 것도 너희들의 몫이다.'


송도의 지하 연구소 바닥, 피와 파편이 나뒹구는 그 처절한 수술대 위에서.


신을 속이는 극한의 수술이, 예정보다 9일이나 앞당겨져 강제로 막을 올리고 있었다.


제2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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