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빼앗긴 방패, 백기사의 역습

by 연구소장

천하통보를 둘러싼 뱅크런 사태가 강무의 거대한 지하 요새 쇼윈도 전략으로 무마된 지 보름이 지났다.


한단성의 상권은 이제 천하 상회의 손아귀에 완벽하게 들어왔다. 무거운 구리 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백성들과 상인들의 품에는 빳빳한 종이돈이 자리 잡았다.


상회는 매일같이 불어나는 막대한 이익금으로 정국이 설계한 지하 금고를 더욱 깊고 넓게 파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성취 뒤에는 항상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는 법. 폭풍의 눈은 상회의 재력이 아니라, 그 재력을 지키는 무력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명이다! 위나라 공자 위무기는 지체 없이 어명을 받으라!"


천하 상회의 외곽, 위무기의 이천 병사가 주둔하고 있는 병영에 날카로운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나라의 도읍 대량에서 급파된 특사였다. 특사의 등 뒤로는 삼백 명의 중무장한 위나라 정규 기병대가 살기를 내뿜으며 도열해 있었다.


갑옷을 꿰입고 나온 위무기가 특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나 위무기, 대왕 전하의 명을 받들겠소."


특사가 비단 두루마리를 펼치며 낭독했다.


"공자 위무기는 조나라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간 뒤, 수개월이 지나도록 귀환하지 않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공자는 일개 장사치와 결탁하여 사사로운 부를 축적하고 사병을 길러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 하니, 대왕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소."


특사는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에 공자의 장군직을 파직하고 군 통수권을 회수하니, 병사들은 즉각 대량으로 회군하고 위무기는 오라를 받아 압송에 응하라!"


쾅!


위무기의 주먹이 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반역이라니! 당치 않소! 나는 조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의 야욕을 막기 위해 이곳에 남은 것이오. 어찌 내 충정을 장사치와 결탁한 반역으로 매도한단 말이오!"


특사는 코웃음을 쳤다.


"충정인지 반역인지는 대량으로 돌아가 국문장에서 밝히시오. 여봐라! 저 반역자를 포박하고, 이천의 군사들은 지금 당장 무기를 거두어 회군할 채비를 하라!"


위무기의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특사를 호위하고 온 기병들이 칼자루에 손을 얹으며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위무기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 칼을 뽑아 특사의 목을 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진짜 조국에 대한 반역이 되는 길이었다. 그의 친형, 안희왕은 평소에도 동생의 명성을 시기하여 언제든 죽일 구실을 찾고 있던 차였다.


'여불위의 짓이구나. 이간계로 내 팔다리를 자르려는 수작이야.'


위무기가 체념한 듯 두 눈을 질끈 감고 포승줄을 받으려던 찰나였다.


"멈추시오. 남의 영업장 앞에서 남의 귀한 손님을 함부로 결박하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지 않소?"


여유로운 목소리와 함께 병영의 문이 열렸다.


천하 상회의 대행수 강무였다. 그의 뒤로 최고 법무 책임자 한비와 최고 재무 책임자 공손룡, 그리고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는 최고 보안 책임자 형가가 나란히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특사가 불쾌한 표정으로 강무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그 요망한 상인 놈이로구나! 일개 장사치 놈이 감히 대위나라의 어명 집행에 끼어들려 하느냐!"


"어명은 위나라 땅에서나 통하는 것이고, 여기는 조나라 한단성이오. 게다가 나는 어명을 방해하러 온 것이 아니라, 밀린 정산을 하러 온 겁니다."


"정산? 무슨 헛소리냐!"


강무는 공손룡에게 눈짓을 했다. 공손룡이 특유의 궤변가다운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거대한 장부 더미를 특사의 발밑에 툭 던졌다.


"대위나라 특사 나으리. 눈이 있으면 이 장부의 차변과 대변을 좀 읽어보시지요. 지난 반년 동안, 저 위무기 장군 휘하의 이천 병사들이 위나라로부터 단 한 톨의 군량미나 월급을 받은 기록이 있소?"


특사는 당황하여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공손룡이 부채를 쫙 펼치며 일갈했다.


"위나라 조정은 이들에게 단 한 푼의 지원도 하지 않았소! 이 이천 명이 조나라에서 굶어 죽지 않고 진나라 군대와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천하 상회가 식량과 무기, 그리고 급여를 전액 대납했기 때문이오. 그 누적된 채무액이 무려 은화 삼십만 냥에 달하오!"


"그, 그게 무슨 상관이냐! 이들은 대왕의 군대다!"


"상관이 아주 많지요."


이번에는 한비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말을 심하게 더듬는 대신, 미리 써둔 죽간을 쫙 펼쳐 특사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위, 위나라 군법 제십이조. 국, 국가가 병사에게 석 달 이상 급여와 식량을 지, 지급하지 아니할 시, 해당 부대와의 고용 계약은 자, 자동으로 해지되며 병사들은 자, 자유민의 신분을 얻는다."


한비의 어눌하지만 날카로운 법률 해석에 특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비는 쐐기를 박듯 다음 죽간을 펼쳤다.


"이, 이에 따라 자유민이 된 이천 명의 장정들은, 우리 천하 상회와 새, 새로운 사적 고용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들은 이, 이제 위나라의 군대가 아니라 천하 상회의 사, 사설 경비대다. 내 말이 틀, 틀린가?"


"이, 이런 억지가 어디 있느냐! 궤변이다!"


강무가 특사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억지가 아니라 합법적인 채무 상환과 고용 승계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이천 명을 기어코 데려가겠다면, 지난 육 개월간 우리가 먹여 살린 체재비 은화 삼십만 냥을 당장 현금으로 지불하시오. 지불하지 못하겠다면, 남의 회사 직원을 강제로 끌고 가려는 납치범으로 간주하고 우리 상회의 보안 책임자가 정당방위를 행사할 겁니다."


강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가가 허리춤의 짧은 검을 반쯤 뽑아 올렸다.


챙!


서늘한 금속음이 특사의 목덜미를 스쳤다. 형가의 뒤에 도열한 상회의 경비대원들도 일제히 활시위를 당겼다.


특사와 삼백 명의 기병대는 식은땀을 흘렸다. 남의 나라 한복판에서 명분도 잃고 무력에서도 완전히 밀리는 상황이었다.


그때 강무가 품에서 작은 목함 하나를 꺼내 특사의 품에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목함이 열리자 영롱한 빛을 내는 최고급 진주와 금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채찍을 쳤으니 달콤한 당근을 줄 차례였다.


"특사 대감.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굳이 빈손으로 돌아가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왕께는 이렇게 보고하시지요. 위무기의 군대는 전염병과 기아로 이미 해산되었고, 위무기 본인은 장사꾼의 빚에 쪼들려 조나라의 노비로 전락해 버렸다고 말입니다."


"노, 노비로 전락했다고?"


"그렇습니다. 대왕께서 가장 원하시는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잘나고 명성 높던 동생이 찌질한 노비가 되어 비참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 말입니다. 반역의 무리를 토벌하는 것보다, 조롱거리로 만들어 대왕의 체면을 세워드리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이득이 되는 정치 아니겠습니까?"


특사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강무의 말은 정확했다. 안희왕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위무기의 무력이 아니라 천하에 떨치는 그의 명성이었다. 그 명성을 진흙탕에 처박을 수만 있다면, 굳이 여기서 피를 흘릴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품에 안긴 목함의 묵직한 무게는 그의 얄팍한 충성심을 짓누르고도 남았다.


"...크흠. 장사치 치고는 제법 정치를 아는군. 알겠소. 대왕께는 반역의 무리가 자멸하여 해산되었다고 보고하겠소. 목숨을 건진 줄 아시오, 위무기!"


특사는 황급히 목함을 챙겨 들고 기병대와 함께 도망치듯 병영을 빠져나갔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멀어지는 위나라 군대를 바라보던 위무기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조국에서 버림받았다는 상실감과, 어이없이 목숨을 건졌다는 허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나는... 이제 위나라의 공자가 아니군."


강무가 다가가 위무기의 어깨를 짚었다.


"조국이 당신을 버린 게 아닙니다. 당신이 썩어빠진 조국을 손절한 겁니다. 대주주가 회사를 망치려 든다면, 유능한 경영자는 알짜배기 자산만 들고 독립하는 법이지요."


"장사꾼의 위로치고는 제법 묵직하군. 빚은 갚겠네, 강무 대행수. 하지만 내 밑의 이천 형제들은 어찌할 텐가? 이들은 평생 창칼만 쥐고 살아온 자들이라, 상단의 짐꾼 노릇은 하지 못하네."


강무는 병영에 도열한 이천 명의 베테랑 병사들을 쭉 둘러보았다. 진나라와의 장평대전이라는 지옥에서도 살아남은, 실전 경험으로 똘똘 뭉친 최고의 인간 병기들이었다. 여불위가 이들을 가장 먼저 제거하려 한 이유도 바로 그 무력의 가치를 정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장군. 우리 천하 상회의 덩치가 커질수록, 이권을 노리고 달려드는 승냥이 떼는 더욱 많아질 겁니다. 여불위 같은 거상부터 각국의 제후들까지, 돈 냄새를 맡고 칼을 들이밀 겁니다. 우리에게는 남의 나라 정규군에 기대지 않는, 오직 상회만을 위해 움직이는 독립적인 무력이 필요합니다."


강무는 위무기를 향해 힘차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부로 이 이천 명의 군대는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최초의 사설 용병단, 즉 프라이빗 밀리터리 컴퍼니로 재탄생할 겁니다. 그리고 위무기 장군, 당신이 바로 이 군사 기업의 총괄 사장이자 우리 천하 상회의 최고 보안 사령관입니다. 저와 함께 천하를 상대로 진짜 전쟁을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위무기의 눈에 다시금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을 시기하는 썩어빠진 형의 밑에서 반역자로 몰려 허무하게 개죽음을 당하느니, 압도적인 자본의 힘을 업고 천하의 판도를 뒤집는 칼날이 되는 것이 사내다운 길이었다.


위무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무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좋소! 나 위무기, 오늘부터 천하 상회의 검이 되겠소!"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향희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대행수야. 적대적 기업 사냥꾼이 쳐들어와서 회사를 쪼개려니까, 아예 자기 회사의 알짜 부서를 돈으로 통째로 사버려서 방어해냈네. 이것이 백기사의 위력인가."


공손룡이 부채를 부치며 혀를 찼다.


"돈으로 법을 사고 군대까지 샀으니, 이제 조나라 왕실도 우리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거요. 여불위 그 늙은이가 자기가 보낸 특사가 뇌물을 먹고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피를 토하겠군."


강무는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불위의 정치적 압박이라는 거대한 위기를, 막대한 자본력과 치밀한 법적 우회로를 통해 완벽하게 방어해냈다. 적의 공격이 오히려 천하 상회 내부에 독자적인 무장 세력을 합법적으로 구축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여불위. 실물 경제로도 안 되고, 정치력으로도 나를 막지 못했다. 다음엔 무엇으로 덤빌 텐가. 사상인가, 아니면 정보인가.'


화폐와 무력을 모두 손에 쥔 강무의 시선은 이제 눈에 보이는 실물이 아닌, 보이지 않는 무형의 전쟁터를 향하고 있었다.


16화 끝


용어 설명


손절 Loss Cut

투자한 자산의 가치가 계속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매각하는 행위. 위무기가 자신을 옭아매는 썩은 위나라 왕실과의 관계를 미련 없이 끊어내는 것을 비유한다.


적대적 인수합병 Hostile M&A

경영진의 의사와 상관없이 외부 세력이 강제로 기업의 지분이나 핵심 자산을 빼앗으려 하는 행위. 여불위가 위나라 왕을 조종해 강무의 핵심 전력인 위무기의 군대를 강제로 회수하려 한 전략이다.


백기사 White Knight

적대적 위기에 처한 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나는 우호적인 자본가나 세력. 안희왕의 압박으로 군사 지휘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위무기를 강무가 자본과 법률로 구출해 낸 역할을 말한다.


사설 용병단 PMC Private Military Company

국가에 소속된 정규군이 아니라, 민간 기업의 형태를 띠고 돈을 받으며 전투, 경비, 군사 훈련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장 집단. 강무는 위무기의 이천 병사를 합법적으로 흡수하여 상회를 지키는 완벽한 무장 방패로 삼았다.


이적 Transfer

주로 스포츠에서 선수가 소속 팀을 다른 팀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하지만, 기업 경영에서는 특정 부서나 인력이 소속을 변경하는 것을 뜻한다. 한비의 법률적 기지로 위나라 병사들의 소속이 위나라 군대에서 천하 상회로 완벽하게 변경되었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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