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이이잉-
황금색 승강기는 중력을 거스르며 매끄럽게 솟구쳤다.
수천 명의 비명과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하층민 구역의 소음은 두꺼운 특수 합금 문 너머로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승강기 내부를 채우고 있는 것은 은은하게 흐르는 클래식 선율과, 신경을 안정시키는 값비싼 아로마 향뿐이었다.
극단적인 환경의 변화. 지옥에서 천국으로 향하는 이 매끄러운 수직 이동은, 오히려 탑승자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대고 있었다.
"보안 수준이 다릅니다."
서유진이 품에서 마스터 패드를 꺼내 화면을 주시하며 낮게 속삭였다.
"하층민 구역이나 시민 구역은 이사회의 메인 서버에서 뻗어 나온 하위 네트워크를 썼지만, 이 승강기가 도달할 최상층부 VIP 라운지… 이른바 '판테온(Pantheon)'은 완전히 독립된 폐쇄망(Intranet)을 사용하고 있어요. 제가 가진 마스터 권한으로도 외부에서는 함부로 접속할 수 없습니다."
"직접 선을 꽂거나, 그 안에서 터지는 근거리 통신망을 해킹해야 한다는 소리군."
태현은 피와 먼지로 얼룩진 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이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도착하면 내가 시선을 끌 테니, 넌 어떻게든 하우스의 메인 배전반이나 네트워크 허브를 찾아. 마에스트로 영감탱이가 내미는 판돈이 구라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면, 시스템의 장부를 직접 까봐야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귀족 계급은 이 벙커의 룰을 설계한 자들입니다. 요람에서 썼던 얕은 블러핑이나 하층민 구역의 사기 수법 따위는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유진의 경고에 태현은 주머니 속 낡은 카지노 칩을 만지작거렸다.
얇은 블러핑이라. 카지노에서 가장 치명적인 블러핑은 패를 속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판돈의 무게'를 속이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태현이 쥐고 있는 가장 거대한 판돈은, 발밑에서 이 벙커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들끓고 있는 수천 명의 폭도들이었다.
띵-
맑은 알림음과 함께 승강기의 속도가 부드럽게 줄어들었다.
[Sector-1, VIP Lounge 'Pantheon'. 환영합니다.]
육중한 황금색 문이 좌우로 열렸다.
순간, 태현과 유진은 시야를 가득 채우는 압도적인 광경에 잠시 숨을 멈췄다.
수십 미터 높이의 돔형 천장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명화를 연상케 하는 웅장한 프레스코화가 홀로그램으로 유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닥은 티끌 하나 없는 대리석으로 깔려 있었고, 곳곳에 배치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눈이 시리도록 찬란한 빛을 쏟아냈다.
넓은 라운지 곳곳에는 벨벳으로 덮인 고급스러운 테이블들이 놓여 있었고,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를 차려입은 남녀들이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마치 바깥세상의 최고급 사교 파티를 심해 밑바닥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기괴한 풍경이었다.
"이쪽입니다."
승강기 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은발의 사내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며 길을 안내했다.
태현과 유진이 푹신한 카펫을 밟으며 라운지 안으로 들어서자, 파티를 즐기던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해 꽂혔다.
구겨진 코트, 핏자국이 튄 셔츠, 그리고 밑바닥의 흙먼지를 뒤집어쓴 태현의 모습은 이 화려한 천상계에 지독한 오물처럼 이질적이었다.
"어머, 냄새…."
"저게 그 하층민 구역을 들쑤셔 놨다는 들개인가? 어떻게 저런 천박한 몰골로 여길…."
귀족들은 코를 막으며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태현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오직 동물원 철창 너머로 더러운 들짐승을 구경하는 듯한 오만한 호기심뿐이었다. 그들에게 하층민 구역의 폭동은 자신들의 견고한 성벽을 넘을 수 없는, 그저 모니터 너머의 불쾌한 소음에 불과하다는 굳건한 오만함이었다.
태현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경멸 어린 시선들을 무시한 채, 라운지 가장 안쪽에 위치한 거대한 마호가니 양문형 도어 앞으로 향했다. 은발의 사내가 문을 열자, 라운지의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된 거대하고 조용한 프라이빗 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 한가운데에는 짙은 녹색 천이 깔린 거대한 원형 텍사스 홀덤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상석에 위치한 가죽 암체어. 그곳에는 최고급 시가를 피워 물고 있는 '마에스트로'가 옅은 미소를 띠며 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게, 들개 군."
마에스트로가 시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지팡이로 맞은편의 빈 의자를 가리켰다.
"이 누추한 노인의 방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군. 발밑에서 벌어지는 소란 때문에 승강기가 흔들리진 않았나?"
"걱정 마쇼. 당신들 금고 박살 내러 올라오는데, 그 정도 흔들림이야 자장가 수준이니까."
태현은 주저 없이 걸어가 마에스트로의 맞은편 의자를 빼고 털썩 주저앉았다. 구겨진 다리를 꼬고 테이블 위로 턱을 괴는 태현의 태도에는, 하우스의 주인을 향한 일말의 예의조차 없었다.
마에스트로의 뒤에 서 있던 덩치 큰 사설 경호원들이 험악한 표정으로 한 발짝 다가섰지만, 마에스트로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혈기가 넘쳐서 좋군. 하지만 자네의 그 무례함은 튜토리얼이나 하층민 구역의 쥐새끼들에게나 통하는 억지라는 걸 알아야지."
마에스트로가 테이블 위에 놓인 크리스털 재떨이에 시가 재를 털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가 하층민 구역에 칩을 살포해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수법. 아주 영리했어. 칩의 신용을 무너뜨려 이사회의 통제력을 잃게 만들겠다는 속셈이겠지. 하지만 자네가 간과한 게 하나 있어."
"간과한 거?"
"여긴 판옵티콘일세. 시장 경제가 무너지면 정부가 개입하는 게 바깥세상의 이치이듯, 이곳의 칩이 휴지 조각이 되면 이사회는 언제든 '리셋(Reset)'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절대 권력을 쥐고 있지."
마에스트로가 손가락을 튕기자, 방 한쪽 벽면의 홀로그램 스크린이 켜졌다.
스크린에는 하층민 구역의 끔찍한 폭동 현장과 함께, 무장한 흑기동대 병력이 방독면을 쓴 채 바리케이드 뒤로 도열하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소총 대신, 묵직한 가스 살포기가 들려 있었다.
"저 가스는 VX 기반의 치명적인 신경 작용제라네. 이사회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하층민 구역의 환기구를 통해 저 가스가 살포될 거고… 폭동을 일으킨 수천 마리의 쥐새끼들은 단 3분 안에 피부가 녹아내리며 몰살당하겠지."
마에스트로의 서늘한 선고에, 뒤에 서 있던 서유진의 어깨가 눈에 띄게 굳어졌다.
체제를 전복시키려던 태현의 선동이, 역으로 수천 명의 학살을 불러오는 명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쥐새끼들을 청소한 뒤, 이사회는 새로운 참가자들을 납치해 요람을 채우고 칩 시스템을 0부터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야. 자네가 일으킨 뱅크런은 그저 하우스의 청소 주기를 조금 앞당긴 해프닝에 불과하단 소리지."
마에스트로는 승자의 여유를 만끽하며 태현의 표정을 살폈다. 절망, 당혹감, 혹은 분노. 그는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타짜가 거대한 시스템의 폭력 앞에서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태현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것은, 낮고 건조한 실소였다.
"큭… 크하하하."
태현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리자 마에스트로의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영감. 내가 이 시궁창에 들어오기 전에, 밖에서 주로 무슨 카지노를 털고 다녔는지 알아?"
태현이 웃음기를 거두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으로 마에스트로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사기도박, 조작, 폭력. 별의별 좆같은 룰로 호구들 피 빨아먹는 불법 사설 하우스들. 내가 그런 곳을 어떻게 박살 냈는지 아나? 놈들이 룰을 어겼다고 경찰에 신고했을 것 같아?"
태현이 테이블 위로 몸을 훅 숙였다.
"아니. 난 그 새끼들이 제일 자신 있어 하는 사기판에 기어 들어가서, 놈들의 전 재산과 하우스의 명줄을 판돈으로 걸게 만들었어. 그리고 그 새끼들이 깐 패를 내 손으로 직접 찢어버렸지. 그래야 다시는 도박판 근처에 얼씬도 못 할 테니까."
태현의 손가락이 턱을 툭툭 쳤다.
"독가스? 학살? 리셋? 맘대로 해. 어차피 저 밑에서 뒈질 놈들은 내 알 바 아니니까. 버튼을 누르든 가스를 살포하든, 영감탱이 꼴리는 대로 하시라고."
태현의 무자비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발언에 마에스트로의 동공이 작게 흔들렸다. 태현은 자신이 선동한 하층민들의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진정한 소시오패스 겜블러의 광기를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영감이 지금 당장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날 이 VIP 룸으로 정중하게 초대한 진짜 이유를 내가 모를 것 같아?"
태현이 마에스트로의 가장 뼈아픈 급소를 찌르기 시작했다.
"이사회? 하우스? 웃기지 마. 당신은 이사회가 아니야. 그저 이사회가 깔아놓은 판에서 떡고물이나 주워 먹는 '호구 1번' 귀족 새끼일 뿐이지."
"말조심해라, 애송이!"
마에스트로가 지팡이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치며 언성을 높였다. 평정심이 금이 가기 시작한 증거였다.
"칩이 리셋되면, 이사회가 잃는 건 그저 장부상의 숫자일 뿐이겠지. 하지만 귀족 계급인 당신들은? 당신들이 지금까지 밑바닥 새끼들 쥐어짜며 평생 모아둔 수십, 수백만 개의 칩. 그게 하루아침에 0으로 돌아가는 꼴을 얌전히 지켜볼 수 있나?"
태현의 팩트 폭력이 프라이빗 룸 안을 날카롭게 베어냈다.
마에스트로는 이사회가 아니었다. 귀족 계급은 이사회의 시스템을 돕는 대가로 특권을 누리며 막대한 칩을 축적한 '기득권'일 뿐, 시스템 자체를 통제하는 창조주가 아니었다.
만약 태현이 촉발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이사회가 칩을 전면 초기화(리셋)해버린다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은 하층민이 아니라 막대한 자본을 쌓아둔 마에스트로 같은 귀족들이었다.
"당신은 이사회가 가스를 살포하고 판을 엎는 걸 원치 않아. 어떻게든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고 칩의 가치를 보존해야지. 그러려면 하층민 구역에 풀린 막대한 칩을 다시 회수해야 하고… 그 방법은 칩을 푼 원흉인 나, 강태현을 이 도박판에서 꺾고 내 입으로 군중을 통제하게 만드는 것뿐이겠지."
태현이 의자 등받이에 나른하게 몸을 기대며, 양팔을 벌렸다.
"자, 이제 누가 목줄을 쥐고 있는지 계산이 좀 되나? 영감?"
완벽한 형세 역전.
태현은 인질이나 무력 따위 없이, 판옵티콘의 지배 구조가 가진 계급 간의 모순(이사회 vs 귀족)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마에스트로의 심리적 우위를 완전히 짓뭉개버렸다.
마에스트로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주름진 얼굴에 핏대가 섰다.
그가 얕보았던 밑바닥의 쥐새끼는, 하우스의 구조적 맹점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무시무시한 포식자였다.
"…좋다. 자네 말이 맞네."
마에스트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분노를 억눌렀다.
"이사회는 이미 리셋 프로토콜을 준비 중이야. 내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두 시간. 그 안에 자네를 꺾고 폭동을 잠재우지 못하면, 내가 쌓아 올린 이 판테온의 부(富)도 물거품이 되겠지."
마에스트로가 손짓하자, 딜러가 테이블 중앙으로 다가와 카드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특수 제작된 티타늄 케이스에서 은빛 테두리가 둘러진 최고급 트럼프 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게임은 노 리밋 텍사스 홀덤(No-Limit Texas Hold'em). 블라인드 같은 시시한 제약은 두지 않겠네."
마에스트로가 자신의 품에서 묵직하게 빛나는 검은색 칩 하나를 꺼내 테이블 중앙에 툭, 던졌다. 일반적인 정화 칩과는 다르게, 표면에 복잡한 회로가 각인된 특수 칩이었다.
"이건 내 전 재산이 담긴 계좌의 마스터 키이자, 이 VIP 라운지를 통제하는 '귀족의 인장'이네. 자네가 이긴다면, 내 모든 부와 이 상층부의 권력을 넘겨주지. 폭동을 멈추든, 이사회와 맞짱을 뜨든 자네 마음대로 하란 소리야."
마에스트로의 눈빛이 살기로 번뜩였다.
"대신, 자네가 진다면."
마에스트로가 태현의 손목을 가리켰다.
"자네가 선동한 하층민들에게 방송을 걸어. 모든 폭동을 중단하고 칩을 반납하라고. 그리고 자네의 두 눈깔과 혀를 이 테이블 위에 뽑아두고 나가야 할 거다."
자본과 권력, 그리고 육체와 목숨.
모든 것이 판돈으로 쏟아져 내린 극한의 하이롤러 데스매치.
"아주 마음에 드는 판돈이야."
태현이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딜러가 밀어주는 첫 번째 카드를 스윽 감싸 쥐었다.
"그럼 시작하지. 영감의 제삿날을."
판옵티콘의 심장부를 도려낼, 그리고 하우스의 룰을 영원히 파괴할 타짜들의 가장 지독한 심리전이 지금 막 닻을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