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빗 룸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 무거웠다.
외부의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된 방 안에는 오직 세 사람의 미세한 숨소리와, 정장을 입은 딜러가 새 트럼프 카드의 압축 비닐을 뜯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존재했다.
테이블 정중앙에는 마에스트로가 던져둔 묵직한 '블랙 칩'이 어두운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귀족의 인장이자, 이 거대한 상층부의 권력 그 자체.
그리고 강태현의 앞에는 아무런 칩도 놓여 있지 않았다.
그가 가진 판돈은 물리적인 칩이 아니었다. 그의 판돈은 '목숨'과, 지금 이 순간에도 하층민 구역을 불태우며 올라올 준비를 하는 '수천 명의 폭도들을 멈출 권한'이었다.
"룰은 간단하네."
마에스트로가 은제 지팡이의 손잡이를 매만지며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노 리밋 텍사스 홀덤. 서로 칩을 걸고 싸우는 것이 아니니, 매 판마다 '가상의 칩' 10만 개가 주어졌다고 가정하고 베팅을 진행하지. 블라인드는 1,000/2,000. 어느 한쪽이 가상의 칩 10만 개를 모두 잃어 파산(All-in 패배)하는 순간, 승패는 결정되네."
"가상의 칩이라."
태현이 턱을 괸 채 픽 웃었다. "숫자놀음 하자는 거군. 어차피 진짜 판돈은 저기 굴러다니는 까만 동전 하나랑 내 목숨이니까."
"정확해. 딜러, 시작하게."
마에스트로의 지시가 떨어지자, 기계처럼 무표정한 딜러가 카드를 현란하게 섞기 시작했다. 하층민 구역의 사기꾼 딜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손동작 하나하나에 군더더기가 없었고, 카드가 섞이는 소리조차 일정한 리듬을 타고 있었다. 완벽하게 훈련된 하우스의 전속 딜러.
촤라락, 탁.
태현의 앞으로 두 장의 카드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태현은 카드를 테이블 바닥에 붙인 채, 모서리만 살짝 들어 올려 확인했다.
[하트 K, 다이아 Q]
첫판부터 나쁘지 않은 패였다. 무늬는 다르지만(Off-suit), K와 Q라는 높은 카드의 조합은 프리플랍(공유 카드가 깔리기 전)에서 충분히 공격적으로 나갈 수 있는 무기였다.
"내가 먼저 액션을 취하지. 5,000 레이즈."
마에스트로가 가상의 칩을 베팅했다.
태현은 마에스트로의 주름진 얼굴을 힐끗 살폈다. 그의 표정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시가를 피워 무는 입술의 각도, 지팡이를 쥔 손가락의 텐션. 그 어떤 미세한 떨림이나 텔(Tell, 도박사의 습관적 단서)도 읽어낼 수 없었다. 수십 년을 하우스의 정점에서 군림해 온 늙은 구렁이 그 자체였다.
"콜. 5,000 받지."
태현이 대답했다.
딜러가 바닥에 세 장의 플랍 카드를 깔았다.
[스페이드 K, 클로버 8, 하트 2]
태현의 눈빛이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바닥에 K가 깔리면서, 태현은 **[K 원 페어]**를 맞췄다. 게다가 함께 들고 있는 카드가 Q이므로, 키커(Kicker, 승패를 가르는 남은 카드의 높낮이) 싸움에서도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상대가 A-K를 들고 있지 않은 이상, 이 판은 태현이 먹을 확률이 압도적이었다.
"체크(Check, 베팅을 넘김)."
마에스트로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 번 톡톡 쳤다.
'체크?'
태현의 뇌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프리플랍에서 먼저 5,000을 레이즈했던 상대가, 바닥에 K가 깔리자마자 베팅을 멈추고 체크를 불렀다.
이것은 두 가지 중 하나다. K가 맞지 않아 쫄았거나, 아니면 일부러 덫을 놓고 태현이 베팅하게끔 유도하는 '체크 레이즈' 전략이거나.
태현은 공격을 택했다.
"1만 베팅."
태현의 강한 베팅이 나오자, 마에스트로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카드를 덮어버렸다.
"폴드. 자네가 먹었군."
마에스트로가 가볍게 손을 저었다.
태현은 첫판을 이겼지만, 어딘가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너무 깔끔했다. 1만의 베팅을 받자마자, 마치 태현이 K를 맞췄다는 것을 확신하기라도 한 것처럼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카드를 던져버린 것이다.
"다음 판."
두 번째 핸드.
태현의 카드: [클로버 5, 하트 6] (연결된 낮은 숫자)
바닥에 깔린 카드(플랍): [다이아 A, 스페이드 J, 하트 2]
태현은 아무것도 맞지 않았다. 마에스트로가 3,000을 베팅했다.
"콜."
태현은 일부러 콜을 받았다. 상대의 패턴을 읽기 위한 탐색전이었다.
턴(네 번째 카드): [클로버 9]
마에스트로가 또다시 5,000을 베팅했다.
태현은 이번에는 강한 '블러핑'을 시도했다. 마치 자신이 A를 들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여 판을 키우는 것이다.
"2만 레이즈."
태현이 판돈을 단숨에 4배로 뻥튀기했다. 보통의 겜블러라면 이 강력한 레이즈에 흔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에스트로는 시가 연기를 후우, 내뿜더니 조용히 웃었다.
"리레이즈(Re-raise). 4만."
"……!"
태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마에스트로는 태현의 블러핑에 전혀 쫄지 않고, 오히려 4만이라는 엄청난 판돈으로 태현의 목을 옥죄어 들어온 것이다.
아무것도 쥐지 않은 태현으로서는 4만의 베팅을 감당할 수 없었다.
"폴드."
태현이 카드를 던졌다.
세 번째 판, 네 번째 판, 그리고 일곱 번째 판까지.
게임이 진행될수록 프라이빗 룸의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태현의 목을 옥죄어왔다.
태현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이상했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태현이 진짜 강한 패를 들고 덫을 놓으려 베팅을 줄이면, 마에스트로는 귀신같이 폴드하고 도망쳤다.
반대로 태현이 쓰레기 패를 들고 완벽한 타이밍에 블러핑을 치면, 마에스트로는 태현의 패가 쓰레기라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기라도 한 듯 코웃음을 치며 판돈을 올려 태현을 찍어 눌렀다.
마치 벌거벗겨진 채로 유리방 안에서 도박을 하는 기분이었다.
'읽히고 있어. 내 텔(Tell)을 읽는 수준이 아니야. 저 영감탱이는 내 손에 들린 카드가 정확히 무슨 숫자인지 알고 있다.'
태현은 곁눈질로 테이블을 살폈다.
딜러의 손놀림? 완벽했다. 하층민 구역처럼 카드 뒷면에 표시(마킹)를 하거나, 패턴을 돌려놓는 조잡한 수작은 없었다. 카드는 매 판마다 기계식 셔플러를 통해 완벽하게 섞여 나왔다.
테이블 바닥의 거울 반사? 투시 렌즈?
태현은 자신의 칩과 셔츠, 심지어 딜러의 단추까지 스캔했지만, 그 어떤 물리적인 속임수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태현의 시선이 아주 찰나의 순간, 마에스트로의 '눈'에 머물렀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에스트로가 쓰고 있는 얇은 금테 안경의 렌즈였다.
마에스트로는 게임 내내 태현의 얼굴이나 카드를 뚫어지게 보지 않았다. 그는 아주 가끔,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의 불빛이 안경알에 반사될 때마다 미세하게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 뿐이었다.
'설마….'
태현은 심호흡을 하며 시야를 넓혔다.
그는 눈동자만 굴려 프라이빗 룸 전체를 조망했다. 이 방의 구조. 벽면을 장식한 수많은 고전 그림들, 천장의 샹들리에, 테이블 모서리의 금속 장식.
그리고 깨달았다.
이 방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눈(Eye)'이라는 사실을.
이곳은 하층민 구역의 사설 도박장이 아니었다. 최첨단 시스템으로 떡칠 된 벙커의 최상층부 VIP 라운지였다.
저 수많은 장식물과 그림의 눈동자, 샹들리에의 크리스털 조각 하나하나에 현미경 수준의 초정밀 마이크로 카메라가 수백 대 매립되어 있다면?
태현이 카드의 모서리를 단 1밀리미터만 들어 올려도, 천장과 사방에 설치된 카메라들이 그 이미지를 스캔한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메인 서버의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마에스트로가 끼고 있는 금테 안경의 스마트 렌즈(AR)로 텍스트를 띄워 보내주는 것이다.
[상대의 패: 스페이드 4, 하트 7. 승률 12%]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건 도박이 아니다. 신(System)이 내려다보는 세계에서, 신탁을 받는 제사장과 싸우는 꼴이었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왜 그러나, 들개 군? 벌써 가상의 칩이 3만 개밖에 남지 않았어. 튜토리얼을 씹어 먹었다던 그 패기는 어디 가고, 도망만 쳐대는 똥개 새끼가 되었나."
마에스트로가 시가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태현을 조롱했다. 그의 눈빛에는 완벽한 승리에 대한 확신이 차 있었다.
"뭐, 노인네 상대로 너무 윽박지르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태현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등받이에서 허리를 뗐다.
그리고 양손을 테이블 위로 깍지 끼며, 자신의 등 뒤에 조각상처럼 서 있는 서유진을 향해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것은 이 지옥 같은 요람에서부터 맞춰온 두 사람만의 무언의 신호였다.
[사기다. 시스템을 장악해.]
유진은 태현의 미세한 고갯짓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 프라이빗 룸의 이질적인 전자파 흐름을 감지하고 있었다.
유진은 두 손을 등 뒤로 돌린 채, 소매 틈새로 마스터 패드를 꺼내 전원을 켰다.
그녀의 머릿속에 이 VIP 라운지의 네트워크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폐쇄망(Intranet). 외부 접속 불가. 그렇다면 물리적인 신호 탈취밖에 답이 없어.'
유진의 안경 너머로 초점이 날카롭게 모였다.
그녀는 마에스트로의 안경, 그리고 천장의 샹들리에 사이를 오가는 비가시성 블루투스 및 적외선(IR) 데이터 링크를 탐색했다.
'찾았다. 초고주파 암호화 통신. AI가 렌즈로 보내는 결과값 데이터 스트림.'
유진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등 뒤에서 미친 듯이 패드의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군사 보안 수준의 ICE(침입 탐지 방어 시스템)가 그녀의 접근을 막아섰다.
[접근 거부. 비인가 장치입니다.]
[경고: 보안 시스템 해킹 시도 감지. 30초 내 추적 시작.]
유진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들키는 순간 방 밖에서 흑기동대가 들이닥칠 것이다. 그녀는 시스템을 파괴하거나 침투하는 대신, 흐르는 강물(데이터) 중간에 '거울'을 들이미는 방식인 스푸핑(Spoofing, 기만 공격)을 택했다.
AI가 분석한 결과가 마에스트로의 안경으로 송신되는 0.1초의 찰나. 그 데이터 패킷을 가로채어, 숫자만 살짝 바꿔치기한 뒤 다시 안경으로 쏘아 보내는 고도의 해킹 기술이었다.
'15초… 10초… 제발…!'
유진의 손가락이 춤을 췄다. 보안 코드가 하나둘씩 뚫리고, 마침내 그녀의 마스터 패드 화면에 마에스트로가 보고 있는 AR 렌즈의 시야가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나타났다.
[해킹 성공. 데이터 조작 권한 획득.]
유진이 짧은 숨을 내뱉으며, 태현의 등 뒤에서 그의 의자를 발끝으로 아주 약하게 한 번 툭, 쳤다.
[세팅 완료. 준비됐음.]
태현의 입가에 맹수의 송곳니 같은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지금까지는 마에스트로가 이 방의 눈(Eye)을 지배했다면, 이제 그 눈의 시신경은 서유진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다.
"영감."
태현이 깍지 낀 손을 풀며 테이블 위로 몸을 숙였다.
"내가 카지노에서 딜러 짓 할 때, 사기 치다 걸린 영감탱이들 손모가지를 어떻게 부러뜨렸는지 알아?"
"크큭, 허세는. 패배가 코앞에 닥치니 주둥이만 살아나는군."
마에스트로가 비웃었다.
"자, 열한 번째 판. 딜러, 카드 돌려."
딜러가 미끄러지듯 카드를 배분했다.
태현은 평소처럼 테이블 바닥에 카드를 딱 붙인 채, 모서리만 아주 살짝 들어 올려 패를 확인했다.
[하트 A, 다이아 K]
텍사스 홀덤에서 프리플랍 승률 최상위권을 달리는 강력한 프리미엄 패, '빅 슬릭(Big Slick)'이었다.
그 순간, 천장과 사방의 마이크로 카메라들이 태현의 패를 스캔하여 메인 서버의 AI로 전송했다.
[데이터 전송: Player 1 / Heart A, Diamond K]
서버의 AI가 분석을 마치고 마에스트로의 렌즈로 결과값을 쏘아 보내는 찰나.
등 뒤의 서유진이 마스터 패드의 백스페이스(Backspace) 키를 연타하고, 새로운 숫자를 입력했다.
타닥.
마에스트로의 안경 렌즈에 초록색 텍스트가 떠올랐다.
[상대의 패: 클로버 2, 스페이드 7. 쓰레기 패. 승률 5% 미만.]
마에스트로의 입가에 옅은 조소가 번졌다.
'2, 7이라. 홀덤 최악의 쓰레기 카드를 들었군. 이 판에서 저 녀석의 남은 3만 칩을 모조리 빨아먹고 끝내주마.'
마에스트로는 자신의 패 [스페이드 Q, 클로버 Q] (포켓 퀸)를 확인하고는 호기롭게 선언했다.
"자, 애송이. 지루한 탐색전은 이쯤에서 끝내지. 자네의 남은 스택 3만 칩. 내가 전부 받아주마. 프리플랍 3만, 올인(All-in)."
단숨에 끝을 보려는 마에스트로의 거친 승부수.
프라이빗 룸의 공기가 터질 듯이 팽팽해졌다. 딜러조차 마른침을 삼키며 태현의 입술을 주시했다.
태현은 속으로 환희의 쾌재를 불렀다.
자신은 A-K라는 최상급 패를 들고 있는데, 상대는 자신이 2-7이라는 쓰레기 패를 들고 있다고 확신하여 올인을 박았다. 서유진의 해킹이 완벽하게 먹혀든 것이다.
사기꾼이 자신의 사기 기술에 완벽하게 속아 넘어가는 순간.
그것은 타짜가 느낄 수 있는 가장 극상의 오르가슴이었다.
하지만 태현은 당장 콜을 외치지 않았다. 그는 극한의 연기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는 척하며 시선을 피했고, 애꿎은 아랫입술을 짓이기며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인 연기를 펼쳤다.
"영감… 갑자기 왜 이래. 첫 장부터 올인이라니."
태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완벽한 '겁먹은 호구'의 명연기였다.
그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마에스트로는 확신했다.
자신의 AR 렌즈가 보여준 [2-7]이라는 정보가 100% 맞다는 것을. 저 녀석은 지금 최악의 패를 들고 올인의 압박에 오줌을 지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왜 그러나? 튜토리얼을 박살 낸 타짜 치고는 꼬리가 너무 내려갔군. 쫄리면 뒈지시든가."
마에스트로가 영화의 한 대사처럼 태현을 짓밟았다.
"하아…."
태현이 마른세수를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어차피 남은 칩도 얼마 없는데, 여기서 꼬리 말고 죽을 바엔…."
태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불안에 떨던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야차처럼 붉게 달아오른 포식자의 두 눈이 마에스트로를 정면으로 꿰뚫었다.
"나도 올인. 콜."
"……!"
예상치 못한 태현의 콜에 마에스트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2-7을 들고 올인을 받아? 미쳤나? 아니면 블러핑으로 날 죽이려는 건가? 멍청한 놈. 내 패는 포켓 퀸이야. 플랍이 어떻게 깔리든 2-7 따위가 날 이길 확률은 기적에 가깝지.'
마에스트로는 콧방귀를 뀌며 딜러에게 손짓했다.
"플랍 깔게."
딜러가 바닥에 세 장의 카드를 깔았다.
[다이아 A, 스페이드 10, 하트 4]
바닥에 A가 떨어졌다!
태현의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A-K를 쥐고 있던 태현에게 완벽한 A 원 페어가 맞춰진 것이다. 마에스트로의 포켓 Q를 완벽하게 짓밟는 압도적인 우위였다.
하지만 마에스트로의 AR 렌즈는 여전히 태현의 패를 [2-7]로 가리키고 있었다.
바닥에 A가 깔리든 말든, 마에스트로의 계산에 따르면 태현은 아무것도 맞지 않은 꽝이었다. 반면 자신은 Q-Q 페어. 완벽한 승리였다.
"턴, 리버 연속으로 까."
마에스트로가 여유롭게 지시했다.
턴: [클로버 8]
리버: [다이아 2]
최종 바닥 카드: [A, 10, 4, 8, 2]
보드가 모두 오픈되었다.
마에스트로는 승리를 확신하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의 패기 하나만큼은 인정해 주지. 하지만 겜블은 기세가 아니라 '정보'로 하는 거라네."
마에스트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의 카드를 쾅! 내리쳤다.
[스페이드 Q, 클로버 Q]
"내 패는 포켓 퀸. 바닥의 A가 거슬리긴 하지만, 자네의 그 비루한 '쓰레기 패'로는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철벽이지. 자, 까보게나. 자네의 그 하찮은 2, 7을."
마에스트로의 오만한 선고가 프라이빗 룸에 울려 퍼졌다.
딜러는 마에스트로의 승리 선언에 따라 테이블 중앙의 가상 칩(판돈)을 마에스트로 쪽으로 밀어주려 준비했다.
"정보라."
태현이 의자 등받이에 푹 기대어, 양팔을 넓게 벌렸다.
그의 입가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비릿하고 잔혹한 조소가 길게 찢어져 있었다.
"영감. 그 정보라는 거, 혹시 당신 눈에 낀 그 '싸구려 안경'이 가르쳐 주던가?"
"…뭐, 뭣?"
마에스트로의 심장이 순간 덜컥 내려앉았다.
태현이 천천히, 아주 느릿한 동작으로 자신의 엎어진 카드 두 장에 손을 얹었다.
"카지노 짬밥 헛먹었네. 도박판에서 제일 믿으면 안 되는 게 바로 기계야."
착-!
태현이 카드를 뒤집어 테이블 한가운데로 집어 던졌다.
[하트 A, 다이아 K]
프라이빗 룸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
"……어?"
마에스트로의 안경 너머 동공이 찢어질 듯 팽창했다.
그의 시선은 태현이 던진 A, K와, 자신의 안경 렌즈에 여전히 떠 있는 [2, 7]이라는 초록색 글씨를 번갈아 향하며 미친 듯이 진동했다.
"A… A-K…? 이, 이럴 리가… 시스템이…!"
"바닥에 A가 깔렸으니, 내 패는 A 원 페어. 영감의 Q 페어는 휴지 조각이 됐네."
태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에스트로의 얼굴 앞까지 다가가 으르렁거리듯 속삭였다.
"파산 축하해. 마에스트로. 당신의 그 잘난 권력과 재산. 이 블랙 칩은 이제 내 거다."
태현이 테이블 정중앙에 놓여 있던 '귀족의 인장(블랙 칩)'을 낚아채듯 거머쥐었다.
"이, 이 사기꾼 새끼가!! 네놈이 감히 이사회의 시스템을 해킹해?!"
마에스트로가 이성을 잃고 발악하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태현은 가볍게 지팡이를 쳐내고, 그대로 마에스트로의 멱살을 쥐어 테이블 위로 처박아버렸다.
우당탕! 쨍그랑!
크리스털 재떨이와 카드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뒤에 있던 사설 경호원들이 무기를 뽑아 들려 했지만, 태현의 살기 어린 눈빛에 압도되어 감히 덤벼들지 못했다. 이미 승패는 났다. 하우스의 룰에 따라, 블랙 칩의 소유권은 완벽하게 강태현에게 넘어간 것이다.
"사기? 사기는 패를 훔쳐보던 당신이 친 거지. 난 그저 당신이 보고 싶어 하던 '환상'을 잠깐 보여준 것뿐이야."
태현이 블랙 칩을 쥔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기득권의 상징, 상위 1% 귀족의 절대 권력이 심해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쥐새끼의 손에 완벽하게 강탈당하는 순간이었다.
태현은 피투성이가 된 마에스트로를 발밑에 짓밟은 채, 서유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유진아. 방금 빼앗은 이 블랙 칩의 마스터 권한으로… 벙커 전체에 방송 연결해."
태현의 두 눈이 야차처럼 번들거렸다.
"저 밑에서 목줄 풀린 채 기다리고 있는 내 '사냥개'들한테, 위로 올라올 문을 열어줄 시간이 다 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