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콰콰콰쾅-!!!!
은빛 비상 잠수정 '방주(Ark)'의 외부를 때리는 굉음은 마치 수천 개의 벼락이 동시에 내리치는 듯했다.
판옵티콘의 심장부였던 중앙 타워가 완전히 으스러지며 발생한 엄청난 수압의 충격파가 잠수정의 선체를 강타했다. 조종석 시트에 결박된 태현과 유진의 몸이 미친 듯이 요동쳤고, 티타늄 합금으로 이루어진 잠수정의 골조가 비명을 지르며 삐걱거렸다.
"큭…! 고도계 확인해!!"
태현이 중력 가속도에 짓눌려 피가 쏠린 얼굴로 소리쳤다.
"상승 중입니다! 워터젯 엔진 출력 100%! 하지만…!"
유진이 마스터 패드와 잠수정의 콘솔을 번갈아 확인하며 사색이 된 목소리로 외쳤다.
"발사관(Launch Tube)이 무너지고 있어요! 이사회가 설계한 수직 탈출 경로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 중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발사관 안에 낀 채로 압사당해요!"
유진의 경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잠수정의 전면 관측창 너머로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원통형의 콘크리트 발사관 벽면이 쩍쩍 갈라지며 시커먼 바닷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그 균열 사이로 거대한 철근과 외벽 잔해들이 잠수정의 상승 경로를 가로막으며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씨발, 딜러 새끼들. 도망갈 구멍 하나 제대로 안 파놨네."
태현은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조종간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서유진. 수직 상승 포기해. 오토파일럿(자동 조종) 끄고 수동 조작으로 전환해라."
"네?! 수동이요? 하지만 잠수정 조종 경험이…!"
"카지노 칩 굴리는 거나, 이 깡통 굴리는 거나 똑같아. 타이밍과 깡이지. 당장 락 풀어!"
유진은 입술을 꽉 깨물며 패드의 엔터 키를 내리쳤다.
삐리릭- [Manual Control Engaged]
수동 조작 모드로 전환됨과 동시에 조종간에 묵직한 저항감이 실렸다.
"꽉 잡아."
태현이 조종간을 왼쪽으로 거칠게 꺾으며 스로틀을 최대로 당겼다.
쿠아아아앙-!!
잠수정의 측면 스러스터가 폭발적인 섬광을 내뿜었다. 상승하던 잠수정이 급격하게 궤도를 틀며, 무너져 내리는 수직 발사관의 얇아진 콘크리트 외벽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강태현 씨!! 충돌합니다!!"
유진이 비명을 지르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콰가가강-!!!!
은빛 잠수정의 티타늄 앞코가 발사관의 균열된 외벽을 무자비하게 들이받았다.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선체 내부에 붉은 비상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하지만 태현의 무모한 베팅은 적중했다. 수압으로 인해 이미 걸레짝이 되어 있던 발사관 외벽은 잠수정의 질량을 이기지 못하고 거대한 구멍을 내며 뚫려버렸다.
발사관을 뚫고 튕겨 나간 잠수정은, 칠흑 같은 심해가 아니라 기괴한 불빛들이 명멸하는 거대한 해저 동굴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하아… 하아… 뚫었…."
태현이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관측창 너머를 본 순간, 그의 두 눈이 미세하게 커졌다.
"이게… 판옵티콘의 진짜 모습인가."
유진 역시 멍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튕겨 나온 곳은 발사관 밖의 바다가 아니었다. 판옵티콘 벙커를 통째로 감싸고 있던, 직경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메인 돔(Main Dome)'의 내부 수역이었다.
수압을 이기지 못한 돔의 상단부 유리가 박살 나면서 수만 톤의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고, 그로 인해 벙커의 모든 구역(요람, 하층민 구역, 시민 구역, VIP 라운지)이 층층이 무너져 내리며 하나의 거대한 해저 폐허를 형성하고 있었다.
비상 전력으로 인해 드문드문 켜져 있는 카지노의 네온사인들이, 시커먼 물속에서 마치 심해어의 발광기처럼 기괴하게 번쩍였다.
거대한 카지노 룰렛 휠이 해류를 타고 유령선처럼 굴러다녔고, 하층민 구역의 철조망과 슬롯머신 잔해들이 뒤엉켜 거대한 쓰레기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칩 하나에 목숨을 걸고 폭동을 일으켰던 수천 명의 인간들과 귀족들의 시신이 구별할 수 없는 고깃덩어리가 되어 부유하고 있었다.
"결국… 다 똑같아졌네요."
유진이 창창 너머로 떠오르는 한 귀족의 시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목에는 상위 1%를 상징하는 금목걸이가 걸려 있었지만, 수압에 짓눌려 흉측하게 부풀어 오른 몰골은 하층민 구역의 쥐새끼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원래 데스매치의 끝은 판돈을 쥔 한 놈 빼고 다 빈털터리가 되는 거니까."
태현은 그 지옥도를 지켜보며 일말의 동정심도 내비치지 않았다. 도박판에 제 발로 기어들어 온 자들의 말로.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욕망의 청구서일 뿐이었다.
"감상에 젖을 시간 없어. 이 메인 돔이 완전히 붕괴하기 전에, 저 뚫린 천장 구멍으로 빠져나가야 해."
태현이 조종간을 당겨 잠수정의 기수를 돔의 꼭대기, 시커먼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거대한 구멍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판옵티콘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을 순순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
쿠구구구궁-!!!!
잠수정이 폐허의 중앙을 통과하려는 찰나, 벙커 전체를 지탱하고 있던 거대한 철골 구조물 하나가 굉음을 내며 부러졌다.
"강태현 씨!! 우측 상단!! 중앙 타워의 잔해입니다!!"
유진의 다급한 외침.
조금 전까지 태현과 수장이 데스매치를 벌였던 중앙 타워의 상층부 수백 톤짜리 잔해가, 수류에 휩쓸려 잠수정을 향해 거대한 운석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잔해의 궤도와 잠수정의 상승 궤도가 완벽하게 겹쳤다. 이대로라면 정면충돌, 잠수정은 산산조각이 날 터였다.
"피할 수 없습니다! 회피 기동 범위를 벗어났어요!"
유진이 패드의 계산 결괏값을 보며 절망했다.
"누가 피한대?"
태현의 핏발 선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는 조종간을 꺾어 피하는 대신, 오히려 잔해를 향해 잠수정의 기수를 똑바로 정렬시켰다.
"강태현 씨?! 뭐 하는 거예요!!"
"서유진. 아까 저 딜러 영감탱이 콘솔 뚫을 때 썼던 해킹 툴 패킷. 그거 이 잠수정 전면의 '소나(Sonar) 펄스 발생기'로 전송할 수 있어?"
"네? 소나 펄스요? 전송은 가능하지만 그건 그냥 음파 탐지기…."
"거기에 남은 벙커 메인 서버의 과부하 코드를 몽땅 때려 박아서 출력해! 1000% 과부하로!"
태현의 미친 지시에 유진은 0.1초 고민했지만, 이내 입술을 깨물며 패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미친 짓이에요! 소나 발생기가 터지면서 우리 전면 장갑까지 날아갈 수 있어요!"
"잔해에 깔려 빈대떡이 되느니, 장갑판 뜯겨 나가는 게 싸게 먹히지! 코앞까지 올 때까지 기다려!"
수백 톤의 쇳덩어리가 시커먼 물살을 가르며 잠수정의 관측창을 덮칠 듯이 쏟아져 내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태현과 유진의 얼굴을 차갑게 덮었다. 충돌 3초 전. 2초 전.
"지금 쏴!!!!"
타닥!
유진이 엔터 키를 내리침과 동시에, 잠수정 전면의 소나 발생기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초고주파 압축 음파가 발사되었다.
파아아아아앙-!!!!!
물속에서 발생한 엄청난 음파의 충격파가, 떨어져 내리던 타워 잔해의 정중앙을 강타했다.
이미 수압과 폭발로 너덜너덜해져 있던 타워의 잔해는, 그 압도적인 음파의 공진(Resonance) 현상을 이기지 못하고 거미줄처럼 균열이 가더니.
콰가가가강-!!
잠수정 충돌 10미터 전방에서, 수만 개의 파편으로 완벽하게 산산조각 나버렸다.
"뚫어어어어!!!"
태현이 스로틀을 최대로 밀어 올리며 포효했다.
은빛 잠수정은 산산조각 난 잔해의 파편 폭풍을 뚫고, 문자 그대로 박살 난 타워의 파편들 사이를 유유히 통과하며 솟구쳐 올랐다.
파파파팍-!
자잘한 파편들이 잠수정의 장갑을 긁으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지만, 티타늄 선체는 그 정도의 생채기는 거뜬히 견뎌냈다.
"하아… 하아아… 미친…."
유진이 등받이에 몸을 파묻은 채, 헛웃음을 흘리며 안경을 고쳐 썼다. 확률 0%의 상황을 억지로 비틀어 100%로 만들어내는, 눈앞의 도박사가 가진 광기에 이제는 경외감마저 들 지경이었다.
타워의 잔해를 돌파한 잠수정은, 마침내 메인 돔의 꼭대기에 뚫린 거대한 구멍을 향해 쏘아지듯 빠져나갔다.
슈우우욱-
판옵티콘의 붕괴가 만들어낸 거대한 해저 소용돌이의 인력을 벗어나, 마침내 완전한 심해의 어둠 속으로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조종석의 요동치던 진동이 마법처럼 잦아들고, 고도계의 숫자가 무서운 속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경고. 외부 수압 감소 중. 상승 궤도 안정화.]
조용하고 기계적인 알림음이 잠수정 내부에 울려 퍼졌다.
"벗어… 났습니다."
유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메인 돔을 빠져나왔어요. 이제 곧 해수면입니다. 우리가… 우리가 살아서 저 지옥을 빠져나왔어요."
태현은 대답 없이 조종간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
긴장이 풀리자, 그가 입고 있던 찢어진 코트와 셔츠에서 배어 나온 피가 시트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는 것이 보였다. 어깨의 관통상, 등에 박힌 파편들, 그리고 지독한 피로.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이미 쇼크로 사망했을 상처들이었지만, 그는 미련한 타짜처럼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태현은 뒷좌석의 비상 구급함에서 압박 붕대를 대충 꺼내어 유진에게 던졌다.
"이거라도 대충 감아. 넌 해킹하느라 손가락 다 까졌잖아."
"강태현 씨 상처가 훨씬 심각하잖아요."
유진이 붕대를 집어 들고 다가와, 태현의 어깨에 감긴 젖은 천을 풀어내고 능숙하게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피비린내와 바닷물 냄새가 좁은 조종석을 채웠다.
붕대를 감는 유진의 손길 너머로, 태현은 고개를 돌려 후면 관측창을 내려다보았다.
칠흑 같은 심해의 바닥.
한때 세상의 모든 탐욕을 집어삼킬 듯 찬란하게 빛났던 판옵티콘은, 이제 그 어떤 불빛도 새어 나오지 않는 완벽한 무덤이 되어 가라앉고 있었다. 게임의 룰을 만들던 자들도, 룰에 순응하던 자들도, 룰을 부수려 발악하던 자들도 모두 저 어둠 속에 잠들었다.
'딜러는 파산했고, 카지노는 문을 닫았다.'
태현의 입가에 씁쓸하면서도 후련한 호선이 그려졌다.
밑바닥 쥐새끼로 요람에 떨어져, 수천 명을 선동하고, 기득권의 금고를 털어, 마침내 벙커를 붕괴시키기까지의 지독했던 시간들.
쏴아아아-
그때, 잠수정의 외부를 때리던 물소리가 기묘하게 부드러워지며, 전면 관측창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새까만 어둠이 점차 푸른빛으로 옅어지기 시작했다.
"강태현 씨."
유진이 붕대를 묶어주다 말고, 창밖을 가리키며 벅찬 목소리로 말했다.
관측창 너머로, 심해의 끝을 알리는 아스라한 빛기둥들이 일렁이며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빛이에요. 수면이 보입니다."
태현은 피 묻은 손으로 조종석의 계기판을 툭 쳤다.
"올라가자."
은빛 방주가 마지막 궤적을 그리며, 심연의 바다를 뚫고 수면 위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새로운 판이 기다리고 있는 세상 밖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