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조작된 룰렛

by 연구소장

[통제실 수몰까지 남은 시간: 14분 30초]


쿠구구궁-! 쩌저적!


통제실의 바닥 전체가 기분 나쁜 진동과 함께 요동쳤다.


수만 톤의 시커먼 심해 바닷물이 시민 구역을 완벽하게 집어삼키고, 이제 벙커의 가장 꼭대기인 중앙 타워의 외벽마저 무자비하게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통제실의 거대한 전면 방탄유리 너머로는 칠흑 같은 심연만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고, 유리를 지탱하는 티타늄 프레임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방 한가운데 놓인 타원형 회의 테이블의 공기는, 바깥의 재난이 무색할 만큼 기괴할 정도로 고요하고 차가웠다.


"룰은 이해했겠지?"


이사회의 수장이 양옆에 널브러진 임원들의 시체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테이블 중앙에 놓인 은빛 리볼버의 실린더를 스르륵 돌렸다.


"한 벌의 트럼프 덱에서 각자 카드 한 장을 뽑는다. 숫자가 더 높은 자가 승자. 승자는 이 리볼버를 들고 패자의 이마에 방아쇠를 당길 권리를 갖는다. 빈 총알이면 다음 라운드로. 실탄이 발사되면… 당연히 게임 오버."


철컥.


수장이 약실을 닫으며 리볼버를 테이블 정중앙에 내려놓았다. 서늘한 금속음이 통제실의 정적을 갈랐다.


"내 심장에 연결된 이 데드맨 스위치는, 내 심박수가 멈추는 순간 폭발하여 저 잠수정의 기동 콘솔을 완벽하게 녹여버리지. 네가 살고 싶다면, 내 머리통을 날려버리기 전에 저 해커 아가씨가 이 콘솔의 잠금을 먼저 해제해야 할 거다."


수장의 시선이 태현의 등 뒤에 서 있는 유진을 향했다.


유진은 이미 바닥에 주저앉아, 수장의 앞에 놓인 기동 콘솔 가방에 마스터 패드를 무선으로 동기화시키려 미친 듯이 코드를 짜고 있었다. 그녀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안경알을 적셨지만 닦아낼 여유조차 없었다.


"서유진. 저 영감탱이 심장 멎기 전에 락 풀 수 있겠어?"


태현이 시선은 수장에게 고정한 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사회 최고 등급의 양자 암호화가 걸려 있어요! 벙커 메인 서버의 남은 연산력을 총동원해야 간신히 뚫릴까 말까 한 수준입니다! 물리적으로 콘솔을 부수면 그대로 자폭 로직이 작동해요. 제가 암호를 완벽하게 해독할 때까지… 절대, 절대 저 자를 죽여선 안 됩니다!"


"들었지?"


수장이 낄낄거리며 여유롭게 새 트럼프 덱의 비닐을 뜯었다.


"넌 이 게임에서 이겨도 내게 함부로 총을 쏠 수 없어. 반면, 나는 이기면 망설임 없이 네 이마에 바람 구멍을 내주지. 애초에 불공평한 게임이야. 네놈은 무조건 나보다 낮은 카드를 뽑으면서 저 해커가 락을 풀 때까지 기도나 하며 시간을 벌어야 해."


게임의 구조는 악랄의 극치였다.


수장은 태현이 자신을 쏘지 못한다는 것을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다. 즉, 수장에게 이 게임은 100% 안전한 여흥이자 일방적인 사냥에 불과했다. 반면 태현은 자신이 이기면(높은 카드를 뽑으면) 수장을 쏠 수 있는 권리가 생기지만 쏠 수 없고, 수장이 이기면 태현은 꼼짝없이 리볼버의 총구를 이마에 받아내야만 한다.


선택권이 없는 사형수. 그것이 지금 강태현의 위치였다.


"불공평하다라. 글쎄."


하지만 태현은 피투성이가 된 코트를 툭 털어내며, 천천히 의자를 빼고 수장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박판에서 제일 불공평한 건 룰이 아니야. 한 놈은 살고 싶어서 피똥 싸게 발악하는데, 맞은편에 앉은 놈은 죽을 각오로 덤빌 때지."


태현의 핏발 선 눈동자가 수장을 매섭게 꿰뚫어 보았다. 살기와 광기가 뒤섞인, 도저히 코너에 몰린 자의 눈빛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압도적인 안광이었다.


"패 돌려. 영감."


촤르르륵-


수장의 손에서 카드가 화려한 마찰음을 내며 섞이기 시작했다. 수압에 의해 타워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빳빳한 종이 카드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통제실의 팽팽한 공기를 채웠다.


[1라운드]


수장이 덱을 테이블 한가운데 부채꼴로 유려하게 펼쳤다.


"뽑아라."


태현은 망설임 없이 가운데 있는 카드 한 장을 스윽 빼냈다. 수장 역시 맨 끝에 위치한 카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오픈."


착-


두 장의 카드가 동시에 대리석 테이블 위로 뒤집혔다.


태현의 카드: [클로버 8]


수장의 카드: [스페이드 J]


"크큭. 첫판부터 내가 승자군."


수장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테이블 중앙의 리볼버를 집어 들었다.


은빛 총신이 비상등의 붉은 조명을 받아 섬뜩하게 번뜩였다. 수장은 천천히 팔을 뻗어, 리볼버의 차가운 총구를 태현의 미간 한가운데에 정확히 가져다 댔다.


"어떤가. 밑바닥에서 군림하던 왕이, 내 손가락 하나에 목숨을 구걸하게 된 기분이."


총구가 살갗에 닿았지만, 태현의 눈동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총구를 이마로 살짝 밀어붙이기까지 했다.


"혓바닥이 기네. 당겨."


태현의 도발에 수장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극한의 공포에 질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꼴을 기대했건만, 눈앞의 타짜는 죽음에 대한 어떠한 짐승적인 본능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그 건방진 태도에 수장의 심기 한구석이 불쾌하게 뒤틀렸다.


"지옥에서 보자, 애송이."


철컥-


수장의 검지가 자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해머가 뒤로 젖혀졌다가 공이를 때리는 둔탁한 금속음.


하지만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화약의 불꽃이 아닌, 허무한 기계음뿐이었다.


빈 약실이었다.


"하아…."


뒤에서 숨을 멈추고 지켜보던 유진이 그제야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1/6 확률 통과.]


"아쉽군. 다음 라운드로 가지."


수장이 혀를 차며 리볼버를 다시 테이블 중앙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통제실 수몰까지 남은 시간: 11분 20초]


수장이 다시 카드를 회수하여 섞기 시작했다.


태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테이블 위를 응시했다. 수장의 손놀림, 카드가 섞이는 소리, 테이블에 닿는 손가락의 각도, 그리고 방금 전 방아쇠를 당기던 수장의 미세한 안면 근육의 움직임.


태현의 머릿속에 있는 거대한 룰렛 판이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며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다.


"영감. 아까 이사회의 임원 새끼들이 쫄아서 자살했다고 했지?"


태현이 침묵을 깨고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지. 나약한 놈들. 심해의 수압에 짓눌려 폐가 터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상상하다, 그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더군."


"근데 당신은 안 죽었어. 왜일까?"


태현이 턱을 괸 채 수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난 저들과 다르니까. 난 이 완벽한 통제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해 온 창조주다. 죽음 따위에 굴복할 나약한 정신력이 아니지."


"창조주? 지랄하네."


태현이 실소를 터뜨렸다. 비웃음이 가득 찬 그 소리에 수장의 섞던 손이 아주 미세하게 멈칫했다.


"자살을 안 한 게 아니야. '못' 한 거지. 당신, 진짜 뒤지는 게 무서워서 혼자 벌벌 떨고 있잖아."


"…뭐라?"


"진짜 죽음이 두렵지 않은 놈이면, 애초에 가슴팍에 그딴 조잡한 '데드맨 스위치'를 달고 협박할 이유가 없어. 내가 타워 문 열고 들어왔을 때, 진짜 통제자라면 깔끔하게 내 대가리에 총을 쏘거나, 자폭 스위치를 눌러서 벙커랑 같이 장렬하게 산화했어야지."


태현의 팩트 폭력이 수장의 견고한 자존심을 날카롭게 후벼 팠다.


"당신이 이 미친 도박을 제안한 진짜 이유는, 내가 이기면 나한테 당신을 쏘라고 강요하기 위해서지. 내가 당신을 쏘면 콘솔이 터지고, 나도 죽는다. 즉, 당신은 내 생존 본능을 교묘하게 인질로 잡고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거야."


"주둥이 닥쳐라, 버러지 같은 놈이!"


수장이 평정심을 잃고 카드를 테이블 위에 거칠게 패대기쳤다.


"혓바닥 굴릴 시간에 패나 뽑아!"


[2라운드]


태현이 여유롭게 카드를 집어 들었다. 수장 역시 씩씩거리며 카드를 뽑았다.


오픈.


태현의 카드: [다이아 A]


수장의 카드: [클로버 5]


이번에는 태현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


수장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지만, 이내 비릿한 여유를 되찾았다.


태현이 이겼다. 즉, 태현이 리볼버를 들고 수장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겨야 할 차례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태현은 쏠 수 없다. 쏘면 콘솔이 파괴되어 다 같이 죽는다.


"자, 어쩔 텐가? 승자."


수장이 양팔을 넓게 벌리며 태현을 도발했다.


"네 권리다. 내 머리통을 날려버려. 아, 쏘면 잠수정도 같이 날아가고 네 옆의 예쁜 해커도 수압에 쥐어짜여 고깃덩어리가 되겠군. 해커 아가씨가 암호를 풀기 전까지 넌 절대 내게 총을 쏠 수 없어. 쏴봐! 당겨보라고!"


"안 돼요!! 쏘면 안 됩니다!"


뒤에서 유진이 다급하게 외쳤다. "아직 30%밖에 못 풀었어요! 제발 참으세요!!"


하지만 태현은 천천히 테이블 중앙의 리볼버를 집어 들었다.


묵직한 금속의 질감. 태현은 총을 들어 수장의 미간을 향해 정확히 겨누었다.


수장은 태현이 절대 방아쇠를 당기지 못할 것이라 100% 확신하고,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손이 떨리는군! 쏘지 못하겠지! 그게 바로 룰에 묶인 자의 한…!"


철컥-! 탕-!!!


수장의 조롱이 채 끝나기도 전.


태현의 검지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


수장의 웃음소리가 기괴하게 끊겼다. 그의 동공이 바늘구멍처럼 수축하며, 전신의 근육이 공포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입이 떡 벌어진 채 숨조차 쉬지 못했다. 뒤에 있던 유진조차 너무 놀라 비명을 삼켰다.


하지만, 총구에서 나간 것은 이번에도 허무한 금속음뿐이었다.


빈 약실.


"……헉, 커헉…."


수장이 그제야 막혔던 숨을 토해내며 의자 등받이에 털썩 쓰러졌다. 그의 이마에는 굵은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양복바지를 움켜쥔 손끝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태현이 진짜로 방아쇠를 당길 줄은 꿈에도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이다.


[2/6 확률 통과.]


"거 봐."


태현이 리볼버를 손가락으로 빙글 돌리며 차갑게 웃었다.


"당신은 방금 진짜로 쫄았어.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 원초적인 공포.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고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그 표정. 그게 바로 당신 같은 기득권 새끼들의 제일 역겨운 민낯이지."


태현의 상식을 벗어난 미친 짓에 수장은 완전히 페이스를 잃었다.


태현은 이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조차 판돈으로 던져버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진짜 광기였다. 그는 수장이 설계한 '절대 안전장치(데드맨 스위치)'라는 심리적 방어벽을 단 한 번의 방아쇠로 박살 내버린 것이다.


[통제실 수몰까지 남은 시간: 07:45]


"미친… 미친 정신병자 새끼… 네놈도 죽을 텐데 어떻게 방아쇠를 당겨…!"


수장이 이를 갈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모으기 시작했다.


"어차피 실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당겼지."


태현이 심드렁하게, 마치 날씨 이야기하듯 대답했다.


"…뭐?"


수장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무슨 개소리야. 실린더는 무작위로 돌아갔어. 네놈이 투시 능력자라도 되지 않는 이상 누가 실탄 위치를 안단 말이냐!"


"무작위?"


태현이 상체를 훅 숙이며 수장의 멱살을 잡을 듯이 다가갔다. 그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도박판에서 제일 사기 치기 좋은 단어가 바로 '무작위'지."


태현의 서늘한 목소리가 통제실을 울렸다.


"영감. 아까 당신이 첫 번째 라운드에서 이겼을 때. 내 이마에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당신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오른쪽 대각선 아래를 향하더군. 당신이 앉아있는 의자의 팔걸이 쪽으로."


"……!"


"방아쇠를 당길 때 보통 사람은 총구나 상대방의 눈을 보지, 허공이나 엉뚱한 곳을 쳐다보지 않아. 무언가 다른 곳에 신경이 분산되어 있었다는 뜻이지."


수장의 턱 근육이 굳어졌다.


"그리고 두 번째 라운드. 카드를 섞고 부채꼴로 펼치기 전, 당신의 검지와 중지가 카드의 뒷면 질감을 아주 미세하게 훑어 내리는 걸 봤어. 엣지 소팅(Edge Sorting)보다 더 정교한, 특수 형광 용액이나 미세 요철로 처리된 마킹 카드지?"


태현이 테이블 위에 놓인 남은 덱을 집어 들어 허공에 쫙 흩뿌려버렸다. 카드가 눈처럼 쏟아져 내렸다.


"결론은 하나야. 당신은 이 러시안룰렛이 전혀 무섭지 않아. 왜? 이 리볼버의 '약실 위치'를 당신의 의자 팔걸이에 부착된 미세한 햅틱 모터나 센서가 진동으로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있으니까."


태현의 소름 끼치는 통찰력이 수장의 모든 사기 수법을 완벽하게 발가벗겨버렸다.


"리볼버 안에 칩이 내장되어 있거나 센서가 달려 있겠지. 당신은 몇 번째 방아쇠에 실탄이 장전되어 있는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리고 카드의 뒷면을 읽어 나와 당신의 승패를 조작하지."


태현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쳤다.


"실탄이 장전된 라운드가 오면, 당신은 무조건 내가 높은 카드를 뽑아 이기게끔 카드를 배치할 속셈이었어. 왜? 데드맨 스위치 때문에 내가 실탄이 든 총으로 당신을 쏠 수 없으니까. 내가 기권하면 룰에 따라 당신이 승리하고, 당신이 내 머리에 실탄을 박아넣을 수 있으니까. 그게 이 조작된 룰렛의 진실이지."


정확했다.


수장은 애초에 목숨을 건 도박 따위는 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철저하게 조작된 기계 장치와 속임수로 태현의 목을 옥죄며 여흥을 즐기다 깔끔하게 처형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수장의 얼굴이 수치심과 분노로 붉게 일그러졌다.


"그래… 네놈 말이 다 맞다 쳐. 내가 사기를 쳤다고 치자고."


수장이 발악하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어쩔 텐가! 총알이 어디 있는지 네가 안다 한들, 저 해커 년이 암호를 풀기 전에 실탄 라운드가 돌아오면 끝장이다! 내가 널 쏴 죽이거나, 네가 날 쏘지 못해 기권하거나 둘 중 하나지! 룰은 변하지 않아!"


[통제실 수몰까지 남은 시간: 04:30]


"강태현 씨!! 암호 해독률 80%!! 3분만… 3분만 더 버텨주세요!!"


유진이 피가 맺힌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박살 낼 듯 두드리며 절규했다.


쿠구구궁!! 쩌저적!


타워의 전면 방탄유리에 거대한 거미줄 같은 금이 쩍쩍 가기 시작했다. 수만 톤의 수압이 마침내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3분? 어림없지. 바로 다음 라운드에서 끝내주마."


수장이 자신의 의자 팔걸이를 꾹 눌렀다.


그의 입가에 다시 한번 사악하고 잔혹한 미소가 번졌다.


"세 번째 라운드다. 뽑아라."


[3라운드]


수장이 흩어진 카드들을 대충 모아 두 장을 엎어놓고 강제로 들이밀었다.


태현은 직감했다. 이번 3라운드.


이 방아쇠에 실탄이 장전되어 있다. 수장의 팔걸이에 부착된 진동 센서가 그것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태현이 카드를 스윽 뒤집었다. 수장도 카드를 뒤집었다.


오픈.


태현: [스페이드 K]


수장: [다이아 3]


태현의 압도적인 승리.


수장은 자신의 계획대로, 일부러 낮은 카드를 뽑아 태현이 승리하게 만들었다.


"자, 승자. 총을 들어라."


수장이 광기 어린 눈으로 테이블 위의 리볼버를 가리켰다.


"이번 방아쇠엔 네가 그토록 피하고 싶던 '실탄'이 들어있다. 네놈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내 머리통이 날아가고 데드맨 스위치가 작동해서 이 통제실은 통째로 수장된다."


수장이 양팔을 벌린 채 태현을 조롱하며 낄낄거렸다.


"어쩔 테냐? 쏘지 못하겠지? 암호는 아직 풀리지 않았어! 쏠 수 없다면 네가 스스로 기권해라! 그럼 넌 네 패배의 대가로 얌전히 총을 맞고 죽고, 나는 저 방주를 타고 나가는 거다! 자, 쏴봐! 쏘란 말이다!!"


진퇴양난. 외통수.


쏘면 데드맨 스위치가 작동해 같이 수몰되어 죽고, 안 쏘고 기권하면 룰에 의해 수장이 총을 넘겨받아 태현을 쏴 죽인다.


하지만 태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매우 침착하고, 느릿한 동작으로 테이블 위의 리볼버를 집어 들었다.


"영감. 겜블러가 판돈을 올리는 가장 완벽한 타이밍이 언제인지 알아?"


태현이 리볼버의 해머를 엄지손가락으로 찰칵, 뒤로 젖혔다. 서늘한 금속음이 수압으로 인한 파열음을 뚫고 선명하게 들렸다.


"상대방이 완벽하게 이겼다고 착각하고, 자기 패를 다 까발리며 방심했을 때지."


순간, 태현은 총구를 수장의 머리가 아닌, 수장의 가슴팍… 정확히는 셔츠 사이로 번쩍이고 있는 데드맨 스위치의 붉은 센서 모듈 쪽에 정조준했다.


"무, 무슨 짓이야! 거길 쏘면 즉시 기폭 신호가…!"


수장이 기겁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서유진."


태현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 시선은 수장의 가슴에 고정하고 뒤를 향해 낮게 불렀다.


"몇 프로 남았어."


"92%…! 아직 안 돼요!! 1분! 1분만!!"


유진이 울부짖었다. 방탄유리의 금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니. 넌 지금 당장, 그 콘솔의 락을 해제할 거야."


태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어떤 의심이나 흔들림도 없었다.


"강태현 씨?!"


"내가 방아쇠를 당겨서 저 새끼 가슴팍에 박힌 폭탄 뇌관 모듈을 물리적으로 날려버리는 속도. 그리고 네가 엔터 키를 쳐서 잠수정 락을 해제하는 속도. 둘 중 어느 게 빠를지. 그걸로 마지막 베팅을 걸지."


미친 짓이었다.


인간의 반응 속도로 전자식 폭탄의 뇌관 기폭 신호 전송 속도를 앞지르겠다는,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 게임. 총알이 모듈을 부수기 전 0.001초의 찰나에 심박수 정지 신호가 메인 서버로 송출되면 폭발한다. 그것을 막으려면, 유진이 서버와의 동기화를 끊어버리는 해킹 엔터 키를 '동시에' 눌러야만 했다.


"미, 미쳤어! 쏘지 마! 쏘면 다 죽는다니까!! 기권해!!"


수장이 사색이 되어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자신의 완벽했던 덫이, 태현의 상식을 벗어난 자폭성 벼랑 끝 전술 앞에서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난 태어날 때부터 확률 따위 믿어본 적 없어. 내 손으로 쥐고 흔들었을 뿐이지."


태현의 핏발 선 눈동자가 수장을 향해 폭발적인 살기를 뿜어냈다.


"유진아. 셋 세면 동시에 누른다."


"강태현 씨…!"


"하나."


쩌저적!! 콰창!!


방탄유리의 한쪽 귀퉁이가 마침내 뜯겨져 나가며, 시커먼 심해 바닷물이 소방 호스처럼 맹렬하게 뿜어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둘."


태현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쥐어짰다. 수장의 비명소리가 커졌다.


"안 돼!! 멈춰! 내가 졌다! 내가 졌으니까 잠수정 키를…!!"


권력자의 비참한 절규를 가차 없이 씹어 삼키며, 타짜의 마지막 선고가 떨어졌다.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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