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0.001초의 잭팟

by 연구소장

"셋."


탕-!!!


밀폐된 통제실의 차가운 공기를 찢으며, 고막을 터뜨릴 듯한 단발의 총성이 폭발했다.


은빛 리볼버의 총구에서 시뻘건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수장의 팔걸이 센서가 경고했던 대로, 세 번째 약실에는 명백한 '실탄'이 장전되어 있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동일한 찰나의 순간.


타닥! 쾅-!


서유진의 피투성이가 된 손가락이 마스터 패드의 엔터 키를 부서져라 내리쳤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총구를 떠난 납탄은 수장의 미간이 아닌, 그의 셔츠 사이로 번뜩이던 붉은색 데드맨 스위치 모듈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피융- 콰직!!


총알은 수장의 가슴팍에 부착된 기폭 송신 모듈을 완벽하게 산산조각 내며 관통했다.


동시에, 유진의 해킹 프로그램이 이사회의 메인 서버에 치명적인 과부하 패킷을 쑤셔 넣으며 잠수정(Ark)과 연결된 자폭 동기화 네트워크를 강제로 끊어버렸다.


물리적인 회로 파괴와, 디지털 네트워크의 단절.


어느 하나라도 0.001초 늦었다면 기폭 신호가 전송되어 벙커 최상층 전체가 날아갔을 것이다. 인간의 반응 속도로는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오직 신의 영역에 닿은 타짜의 '감'과 해커의 '집념'이 만들어낸 기적의 타이밍.


"아아아아아악-!!!"


모듈이 박살 남과 동시에, 총알의 관통력을 이기지 못한 수장이 피분수를 뿜으며 뒤로 고꾸라졌다. 그는 의자와 함께 바닥을 나뒹굴며 가슴을 부여잡고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삐리리링-!! 철컥!


[Ark System Override. 비상 잠수정 기동 락(Lock) 및 자폭 시퀀스 해제.]


유진의 마스터 패드와 잠수정 기동 콘솔의 붉은 경고등이, 청명한 녹색 빛으로 바뀌며 경쾌한 알림음을 냈다.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하아… 하아아…."


태현은 총구에서 매캐한 화약 연기가 피어오르는 리볼버를 바닥에 툭, 내던졌다. 방아쇠를 당긴 그의 손끝은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자신의 목숨을 건 0.001초의 벼랑 끝 도박은 뼈를 깎아내는 텐션을 요구했다.


"풀, 풀었어요…!! 강태현 씨!! 락이 풀렸습니다!!"


유진이 패드를 끌어안은 채 바닥에 엎드려 오열하듯 소리쳤다. 긴장이 풀린 그녀의 다리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해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컥, 쿨럭… 커어억…."


바닥에 쓰러진 수장이 입가로 검붉은 피를 토해내며 발작적으로 기침을 했다. 총알은 모듈을 부수고 그의 우측 폐를 스치고 지나갔다. 즉사는 아니었지만, 치명상이었다.


"어… 어떻게…."


수장이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장을 향해 손을 뻗으며 경악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인간이… 그 타이밍을… 확률상 불가능해… 이건 말도 안 돼…."


태현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가, 수장의 얼굴 바로 옆을 군화 발로 쾅 짓밟았다.


"확률?"


태현의 내려다보는 시선은, 마치 길가의 버러지를 보는 듯 한없이 차갑고 무자비했다.


"주사위가 던져졌을 때, 나올 확률을 계산하는 건 도박판의 호구 새끼들이나 하는 짓이지. 진짜 타짜는 내가 던지고 싶은 숫자가 나올 때까지 주사위의 무게 중심을 깎아내고, 테이블의 기울기를 조작해. 네가 데드맨 스위치로 내 목줄을 쥐고 흔들었다고 생각했겠지만, 내 눈엔 그저 언제든 박살 낼 수 있는 싸구려 플라스틱 쪼가리로 보였거든."


수장의 핏기 가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자신이 통제한다고 믿었던 이 거대한 판옵티콘이, 사실은 눈앞의 미친 도박사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조잡한 무대에 불과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지만 패배의 여운을 곱씹을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쩌어어엉-!!!! 콰과과광-!!!


통제실 전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십 미터짜리 특수 방탄유리가, 마침내 심해의 수만 톤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완벽하게 터져버렸다.


"씨발!! 엎드려!!"


태현이 몸을 날려 유진을 덮어 누름과 동시에, 칠흑 같은 심연의 바닷물이 댐이 무너진 것처럼 통제실 안으로 맹렬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압도적인 물의 장벽이 공간을 강타했다.


수 톤에 달하는 타원형 회의 테이블이 종잇장처럼 날아갔고, 이사회 임원들의 시체들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 벽에 부딪히며 산산조각이 났다. 대자연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는 인간의 권력도, 자본도 모두 무의미한 부유물에 불과했다.


"푸핫!! 컥, 커헉!!"


수압에 휩쓸려 통제실 구석으로 처박힌 태현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며 바닷물을 토해냈다. 물은 불과 10초 만에 태현의 가슴팍을 넘어 턱밑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공간이 밀폐되어 있어 수위 상승 속도는 VIP 라운지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빨랐다.


"서유진!! 유진아!!"


태현이 시커먼 파도를 헤치며 절규했다.


"여, 여기요…! 꼬르륵!"


태현의 오른쪽, 뒤집힌 모니터 잔해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유진의 손이 보였다. 태현은 물살을 가르고 헤엄쳐 가 유진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잠수정!! 저 은색 잠수정으로 헤엄쳐!!"


통제실 반대편, 거대한 레일 위에 매달려 있는 은빛 비상 잠수정 '방주(Ark)'. 유진의 해킹으로 탑승 해치의 락이 풀려, 녹색 비상등이 깜빡이며 생존자들을 부르고 있었다.


"물이… 물이 너무 차가워요… 몸이 안 움직여…."


유진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심해의 얼음장 같은 수온이 체온을 급격히 앗아가고, 근육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정신 차려! 여기까지 와서 물고기 밥 될 순 없잖아! 내 목 꽉 잡아!"


태현은 한 팔로 유진을 단단히 끌어안고, 남은 한 팔과 두 다리로 미친 듯이 물살을 저었다. 천장까지 남은 공간은 이제 3미터. 물이 타워 꼭대기를 완전히 채워버리면 수압에 의해 잠수정의 해치조차 열 수 없게 된다.


첨벙! 촤아악!


그때, 태현의 발목에 무언가 묵직하고 끈질긴 것이 확 감겨왔다.


"이… 이대로는 못 죽어…!!"


가슴에 총을 맞고 죽어가는 줄 알았던 이사회의 수장이었다.


그는 눈이 뒤집힌 채, 피를 토하면서도 생존에 대한 원초적인 발악으로 태현의 다리를 생명줄처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수장의 무게가 더해지자 태현의 몸이 순식간에 수면 아래로 확 가라앉았다.


"씨발! 이거 놔!!"


태현이 물속에서 발버둥을 치며 수장의 안면을 군화 발로 걷어찼지만,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수장의 악력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있었다.


"나를 데려가…! 콜록, 커허억…! 지상 코드를… 내가 알고 있어! 내가 없으면 너희는… 수면 위로 올라가도… 꼬르륵!"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민 수장이 피 섞인 바닷물을 토해내며 처절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처럼 군림하며 태현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밀던 자가, 이제는 젖은 쥐새끼처럼 다리를 붙잡고 살려달라며 징징거리고 있었다. 권력자의 가장 밑바닥, 가장 역겨운 민낯이었다.


"강태현 씨…!! 무거워요… 가라앉아요…!"


유진이 숨을 헐떡이며 태현의 목을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영감. 아까 당신이 그랬지."


태현이 차갑게 식은 눈으로, 자신의 다리에 매달린 수장을 내려다보았다.


"이 거대한 시스템을 설계한 창조주라서, 죽음 따위에 굴복할 나약한 정신력이 아니라고. 근데 지금 꼬라지가 이게 뭐야? 당신이 짓밟았던 하층민 구역의 쥐새끼들보다 더 추하게 발악하고 있잖아."


"살려줘…! 내, 내가 모든 걸 줄게…! 돈도, 권력도…!"


"지옥에서나 써라, 그딴 거."


태현이 허리춤에서, 아까 흑기동대 대원의 목을 딸 때 썼던 날카로운 룰렛 휠의 금속 조각을 뽑아 들었다.


퍽-!!


물속의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예리한 금속 조각이 수장의 쇄골과 어깨 사이를 무자비하게 찍어 내렸다.


"끄아아아아아악!!!!"


살을 파고드는 끔찍한 고통에 수장의 손아귀에 힘이 풀렸다.


태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리를 세차게 뿌리치며 수장의 명치를 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가라앉아라, 딜러 새끼야. 네가 만든 수족관에서 평생 썩어."


"안 돼… 안 돼애애애액-!!"


수장의 절규는 순식간에 차오른 시커먼 바닷물 속으로 삼켜졌다.


가슴의 총상과 어깨에 박힌 금속 조각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심해의 어둠 속으로 흩어지고, 판옵티콘을 창조했던 절대 권력자는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끝없는 심연 아래로 꼬르륵 가라앉으며 영원히 자취를 감췄다.


"하아, 하아…! 앞으로 조금만 더!"


무게를 덜어낸 태현은 사력을 다해 물살을 가르고 헤엄쳤다.


물은 이제 천장에서 불과 1미터 아래까지 차올랐다. 숨을 쉴 수 있는 공기층이 좁아지면서 기압이 급격히 상승해 고막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마침내 태현의 손이 은빛 잠수정의 외부 해치 손잡이에 닿았다.


"서유진! 잡았어! 올라타!"


태현이 유진의 허리를 밀어 올려 잠수정의 미끄러운 둥근 표면 위로 올려보냈다. 유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해치의 둥근 휠을 붙잡고 미친 듯이 돌리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긱-


해치의 압축 패킹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은빛 뚜껑이 열렸다.


"열렸어요!! 빨리!!"


유진이 잠수정 내부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태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태현도 상체를 끌어올려 잠수정 안으로 몸을 던졌다.


"닫아!! 락 걸어!!"


태현과 유진이 잠수정 안에서 동시에 해치의 손잡이를 붙잡고 전력을 다해 닫아걸었다.


쿵! 철컥- 삐빅!!


[Ark 내부 기압 안정화 완료. 탑승자 생명 반응 확인.]


해치가 완벽하게 밀봉되는 순간, 통제실 내부의 공기층이 완전히 사라지며 수만 톤의 바닷물이 잠수정의 외부를 무자비하게 덮쳤다.


쿠콰콰쾅-!!!


잠수정 외부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굉음. 통제실의 천장과 외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판옵티콘의 심장부가 완벽하게 수몰되는 소리였다.


잠수정 내부는 성인 서너 명이 타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았지만, 최첨단 방수 및 내압 설계가 되어 있어 물 한 방울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은은한 비상등만이 젖은 두 사람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하아… 하아… 큭."


태현은 잠수정의 좁은 바닥에 대자로 뻗어 미친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전신의 긴장이 풀리자, 그제야 어깨의 총상과 화상, 파편에 베인 등허리의 통증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유진은 젖은 안경을 벗어 던진 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죽음의 공포, 수천 명을 수장시켰다는 죄책감, 그리고 마침내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뒤섞인 처절한 울음이었다.


"울지 마라. 재수 없으니까."


태현이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켜 잠수정의 조종 콘솔 앞 좌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살아남은 놈들이 울 자격 같은 건 없어. 뒈진 새끼들 몫까지 숨을 쉬려면, 이빨 꽉 깨물고 수면 위로 올라가야지."


태현이 콘솔의 중앙에 빛나고 있는 푸른색의 [Launch(발사)] 버튼을 피 묻은 손으로 꾹 내리눌렀다.


[Ark Launch Sequence 가동. 수직 발사관을 개방합니다.]


기계적인 음성과 함께, 잠수정의 동체가 거칠게 흔들리더니 이내 엄청난 부력과 추진력을 받으며 위를 향해 치솟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콰아아아앙!!


잠수정의 강력한 워터젯 엔진이 불을 뿜으며, 무너져 내리는 벙커의 천장을 뚫고 나아갔다.


태현은 잠수정의 두꺼운 관측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수만 미터 심해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때 수천 명의 인간을 칩이라는 탐욕으로 옭아매었던 거대한 도박의 성채, 판옵티콘.


그 화려했던 구조물들이 엄청난 수압에 짓눌려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산산조각 난 잔해들이 깊은 해구 속으로 영원히 가라앉는 모습이 희미한 잔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에스트로의 오만함도, 이사회 수장의 비열한 욕망도, 그리고 칩 하나에 목숨을 걸고 서로를 물어뜯던 군중들의 광기도 모두 저 차갑고 어두운 심연의 침묵 속으로 묻혀버렸다.


완벽한 체제의 파괴.


도박판의 모든 룰을 찢어버린 타짜의 승리였다.


"끝났어."


태현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이제, 우리 판을 치러 가자고."


비상 잠수정 '방주'는 거품의 궤적을 그리며,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심해를 뚫고 오직 빛이 존재하는 저 수면 위를 향해 맹렬하게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자유를 향한, 멈출 수 없는 상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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