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1 트리스트럼 테마

황폐한 마을에 울려 퍼지는 12현의 진혼곡

by 연구소장

황폐한 을에 울려 퍼지는 12현의 진혼곡

Tristram · Matt Uelman


"Stay a while and listen..."

데커드 케인의 늙은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1996년, 처음 트리스트럼에 발을 들였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Matt Uelmen의 12현 기타소리. 그 첫 화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우리는 안전하지만 결코 평온하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트리스트럼 테마의 탄생은 아이러니하게도 열악한 환경의 산물이다. Uelmen은 Condor(블리자드 노스의 전신)에서 일하며 "꿈의 직장"이라 생각했지만, 실리콘밸리 기준으로는 "상당히 낮은 급여"를 받는다. 회사도, 작곡가도 모두 제한된 예산 안에서 작업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인 것이다.


작업 환경은 "초저예산"이었다. 비싼 스튜디오 마이크 대신 AKG 지향성 마이크(그마저도 일반 SM-57 마이크보다 약간 나은 정도)를 구형 Ensoniq 16비트 샘플러에 직접 연결한 것이 전부였는데 오늘날로 치면 스마트폰으로 녹음하는 것과 전문 스튜디오의 차이 정도라고 해야할까. 컴퓨터 화면으로 음악을 편집할 수도 없다. 요즘처럼 화면에서 음파를 보며 자르고 붙이는 게 아니라, Uelmen은 "파형을 보기도 전에 눈 감고 프레이즈를 이어 붙였다"고 회상한다. 오직 귀에만 의존해 음악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어둠 속에서 퍼즐을 완성하는 작업인 것이다.


녹음된 소리는 최종적으로 22Khz로 음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잔혹한 과정"을 거친다. 이게 얼마나 거친 음질인지 감이 안 온다면, 옛날 전화 통화 소리나 AM 라디오를 떠올리면 된다. 오늘날 음원 스트리밍의 맑은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일부러 낡고 거칠게 만든 소리다. 당시 프로 작곡가들이 사용하던 고급 Akai 사운드 라이브러리는 수천 개의 악기 소리가 들어있는 음악계의 '포토샵' 같은 것이었는데, 반면 Uelmen은 ASR-10 샘플러 하나에 모든 것을 의존한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 주방과 일반 가정집 주방 정도의 격차. 하지만 Uelmen은 이를 "우연한 독창성"이라 불렀다. 제약이 오히려 트리스트럼만의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12현이 그려낸 트리스트럼

12현 기타는 일반 기타와 다르다. 줄이 두 배로 많아서 더 풍성하고 울림이 깊다. 한 번 치면 여러 줄이 함께 울리면서 특유의 몽환적인 소리를 만든다. 이 악기 하나가 트리스트럼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다. Uelmen은 전형적인 판타지 게임 음악을 거부했는데 웅장한 오케스트라 대신, 택한 것은 전혀 다른 세계들의 조합이었다. Uelmen은 트리스트럼 테마가 "페루 왈츠, 오래된 미국 컨트리 음악, 그리고 70년대 초 포크 음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 플리트우드 맥의 린지 버킹엄 같은 기타리스트들의 어쿠스틱 사운드가 큰 영향을 끼친다.


던전 음악은 완전히 다른 우주에서 왔다. 80년대 고딕 록 밴드 바우하우스의 어둡고 시끄러운 포스트 펑크 사운드를 기반으로, 자메이카 음악이 실험하던 깊은 울림과 메아리 효과를 섞어 넣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Comfortably Numb"처럼 딜레이(메아리) 효과를 많이 사용했고, 80년대 후반 밴드들이 에코를 리듬처럼 사용하던 방식도 차용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고딕 웨스턴'이라 부를 만한 독특한 감성이 탄생한다. 중세 유럽의 성당과 미국 서부의 황야, 그리고 남미의 애수가 기묘하게 뒤섞인 느낌. 12현 기타 하나로 이 서로 다른 세계들을 하나의 소리로 묶어낸 것이다.


이 음악의 진정한 힘은 '끝나지 않는 긴장감'에 있다. 보통 음악은 긴장을 만들었다가 풀어주기를 반복한다. 따라서 불안한 소리 다음에 편안한 소리가 오면서 안도감을 주는 것이 일반적인 문법이다. 하지만 트리스트럼 테마는 다르다. Uelmen은 "거대하게 떠다니는 소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긴장이 풀리지 않고 계속 공중에 떠 있는 느낌.


이 곡은 슬픈 단조 계열의 음계를 사용한다. 그런데 처음 1분 30초 동안은 정확히 어떤 조인지조차 애매하다. 듣는 사람은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음악 속을 헤맨다.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대부분의 게임 음악이 "싸움 → 승리 → 휴식"의 패턴을 따른다면, 트리스트럼 테마는 영원히 불안한 휴식 상태에 머문다. 플레이어는 마을의 생존자들처럼 상실과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유산

이렇게 탄생한 트리스트럼 테마는 한 게임의 배경음악을 넘어, 시리즈 전체의 상징이 된다. 디아블로2에서 플레이어는 완전히 파괴된 트리스트럼으로 돌아간다. Uelmen이 직접 다시 편곡한 이 버전은 원곡의 멜로디를 유지하면서도 더 슬프고 처절하다. 폐허가 된 마을, 죽은 자들 사이를 걷는 플레이어에게 이 음악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안전했던 그 장소는 이제 없다. 남은 것은 기억뿐이다. 그래서 이 버전은 장소의 음악이 아니라 추억의 음악이 되었다.


디아블로3의 "New Tristram"은 다른 작곡가가 만들었다. 더 웅장하고 깔끔해졌지만, 많은 팬들은 원곡의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2008년 파리에서 열린 블리즈컨 행사장에서 기타리스트가 어둠 속에서 이 곡의 첫 몇 음만 연주했을 때, 만 명이 넘는 관객이 즉시 알아차렸다. 디아블로3가 발표되는 순간이었다. 단 몇 개의 음만으로도 모두가 알아듣는, 그만큼 강력한 상징이 된 것이다.


이 음악은 이제 회사나 작곡가만의 것이 아니다. 유튜브에는 수백 개의 커버 버전이 있다. 클래식 기타로 잔잔하게, 일렉 기타로 강렬하게, 바이올린으로 애절하게, 심지어 전자음악으로도 재탄생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곡에 경의를 표한다. 커뮤니티에게 이 곡은 민요가 된 수준이다.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처럼? 오케스트라처럼 거창한 준비가 필요 없고, 기타 하나만 있으면 연주할 수 있다. 누구나 한 번 들으면 기억하는 멜로디. 그리고 각자의 해석이 허용되는 자유로움. 이 모든 것이 20년 넘게 이 음악을 살아있게 만들었다.


디아블로의 독특함을 이해하려면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게임들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다크 소울은 '침묵'을 무기로 사용한다. 잘 생각해보면 던전을 돌아다닐 때는 음악이 아예 없다. 갑옷 소리, 발자국 소리, 바람 소리만 들린다. 그러다 보스를 만나면 갑자기 웅장한 음악이 터져 나온다. 침묵과 음악의 극적인 대비가 공포와 긴장을 만든다. 패스 오브 엑자일은 정반대다. 각 지역마다 고유한 음악이 끊임없이 흐른다. 숲에는 숲의 음악, 사막에는 사막의 음악. 거대한 세계를 음악으로 그려내는 방식이다.


트리스트럼 테마는 이 둘과 다르다. 계속 흐르지만 위로하지 않는다. 환경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심리 상태를 만든다. 안전한 마을에서조차 불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트라우마의 소리다.


디아블로 시리즈가 계속되는 한, 이 음악도 계속될 것이다. 지하 16층에서 디아블로를 쓰러뜨리고 돌아온 영웅을 맞이하는 것도, 부서진 소울스톤을 품고 서 있는 플레이어에게 승리의 공허함을 전하는 것도 이 선율이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12현 기타의 첫 화음이 울릴 때마다 우리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 그리스왈드의 대장간, 페핀의 오두막, 아드리아의 검은 천막. 타운 포탈의 푸른 빛이 흔들리고, 횃불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그 마을로.


트리스트럼의 거리를 걷는 모든 이들에게, 이 음악은 집으로 돌아온 안도감과 다시 떠나야 한다는 불안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 그리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다.


Matt Uelmen이 열악한 환경에서 우연히 만들어낸 이 곡은, 게임음악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제약이 오히려 축복이었던, 그 기적 같은 순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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