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마 작전에 울려퍼진 결전의 선율
1995년 10월 4일, 심야 시간대에 방영을 시작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빌렸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14세 소년 이카리 신지는 아버지에게 버려진 트라우마,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는 고독 그리고 일본 버블 경제 붕괴 이후의 불안과 무력감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보기 드문 캐릭터다.
종교적 상징과 정신분석학적 은유, 실존주의적 질문들이 뒤얽힌 이 작품은 특히 마지막 두 화에서 주인공의 이카리 신지의 내면 의식만으로 채워지면서 논란과 열광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에바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된 것이다.
2007년,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4부작을 시작한다. 더 큰 예산과 더 진보한 기술, 그리고 12년의 세월이 만든 새로운 시각으로 TV판의 1화부터 6화까지를 재구성한 첫 번째 작품이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서다. 더 세련된 작화와 더 역동적인 전투, 그리고 더 웅장한 음악으로 무장한 신극장판. 특히 클라이맥스인 야시마 작전은 영화적 스케일로 완전히 재탄생한다.
여섯 번째 사도 라미엘이 네르프 본부를 위협한다. 거대한 정팔면체가 지오프런트를 향해 구멍을 뚫고 있다. 이때 카츠라기 미사토 작전부장이 극단적인 작전을 제시한다. 일본 전국의 전력을 모아 포지트론 라이플로 초장거리 저격을 시도하는 것. 저격에 필요한 것은 1억 8천만 킬로와트의 전력이다.
이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에너지인가? 감이 잘 안오는데 쉽게 설명하면 한국 전체가 한여름 폭염에 에어컨을 풀가동할 때 쓰는 전력의 두 배, 서울시가 한 달간 쓰는 전기를 단 몇 초에 쏟아붓는 수준의 전력이며 포항제철소 같은 세계 최대급 제철소 90개를 동시에 굴리는 수준이다.
신극장판은 야시마 작전을 두 개의 음악으로 표현한다.
먼저 작전 준비 단계에서 흐르는 Strategie Yashima.
열차와 트럭 단위로 전기 장비가 이동하기 시작한다. 초전도 케이블과 집채만한 변압기, 거대한 냉각 장치. 평소라면 움직이지도 않는 산업 시설의 핵심 장비들이 제3신동경시로 실려온다. 거대한 송전탑들이 일제히 방향을 튼다. 일본 열도를 가로지르는 송전선들이 제3신동경시를 향해 재배열된다.
이 압도적인 준비 과정에 Strategie Yashima가 흐른다. TV판보다 훨씬 서스펜스가 강한 이 곡은 오케스트라의 점진적 고조와 현악기의 불안한 트레몰로로 시간의 압박을 전달한다. 일본 전역의 불빛이 구역별로 꺼지고, 제3신동경시로 향하는 송전선들이 푸른 빛을 내며 활성화되는 장면과 완벽하게 동기화된다.
야시마 작전 개시. 무전이 쉴 새 없이 오간다.
"각 방면 1차 변전소, 계도 변환 시작"
"2차 변전소, 모든 개폐기 투입"
"주파수 변환 용량 6500만kw 증대"
"전압 안정. 주파수 이상 없음"
계기판의 숫자들이 미친 듯이 올라간다.
전압계 바늘이 위험 구간으로 치솟는다. 거대한 전기 설비들이 푸른 빛을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팀파니가 울린다. 둥-둥-둥-둥. 10초간 이어지는 고독한 타격.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Bataille Décisive.
이 곡이 야시마 작전 시퀀스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이유는 철저히 계산된 음악적 구조에 있다.
팀파니의 리듬은 작전의 심장이다. 이 패턴은 변전소가 하나씩 투입되고 전력이 단계적으로 증폭되는 과정과 동기화된다. 심장박동 같은 이 리듬은 관객의 생리적 긴장을 자연스럽게 유발한다.
브라스 섹션의 주선율은 작전의 거대한 스케일을 표현한다. 트럼펫과 트롬본이 이끄는 상승하는 음정은 전압이 올라가는 계기판의 시각적 이미지와 절묘하게 공명한다. 1970년대 특촬물의 향수를 담으면서도 21세기 영화관의 사운드 시스템에 최적화된 웅장함을 만들어낸다.
현악기의 대선율은 표면 아래 흐르는 불안을 담는다.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만드는 트레몰로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위험, 실패하면 끝이라는 압박감을 음악적으로 구현한다. TV판보다 40명이 넘는 현악 주자가 참여한 신극장판에서 이 불안의 층은 더욱 두껍고 복잡해진다.
다층적인 타악기 구성은 일본 전역에서 모이는 전력을 표현한다. 팀파니뿐 아니라 각 타악기가 서로 다른 리듬을 연주하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작전의 복잡성과 통일성을 동시에 담아낸다.
이 음악은 작전 전반에 걸쳐 멈추지 않고 흐른다. 일본 전역이 암흑에 잠기고, 신지의 첫 발이 빗나가고, 레이가 방패로 사도의 공격을 막아내고, 두 번째 사격이 성공할 때까지. 끊이지 않는 음악의 흐름 자체가 작전의 추진력이다.
신극장판의 Bataille Décisive는 런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완전히 새로 녹음되었다. 비틀즈가 Abbey Road를 녹음한 바로 그 스튜디오다.
1995년 TV판의 Decisive Battle이 제한된 예산으로 만들어진 거친 에너지였다면, 2007년 신극장판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운드를 구현한다. 풀 오케스트라, 최첨단 녹음 기술, 그리고 극장 음향을 고려한 입체적 믹싱.
특히 주목할 점은 프랑스어 제목의 사용이다. Bataille Décisive(결정적 전투)라는 제목은 신극장판 전체를 관통하는 국제적이고 영화적인 분위기를 상징한다. 더 이상 일본 TV 애니메이션이 아닌, 세계 무대를 겨냥한 영화라는 선언이다.
이 음악을 들으면 1963년 007 영화 '위기일발'의 '007 Takes the Lektor'가 떠오른다. John Barry가 작곡한 이 곡과 비교해보면 팀파니로 시작하는 도입부, 브라스가 이끄는 주선율, 현악기가 만드는 긴장감의 구조가 놀랍도록 유사하다. 이유는 에반게리온 극장판 음악의 작곡가 사기스 시로가《블리치》에서 "Battle For Bond"라는 곡을 작곡할 정도로 John Barry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에 있다.
야시마 작전 자체가 첩보 작전과 닮아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정밀한 계산과 철저한 준비, 단 한 번의 기회와 냉정한 수행. 007이 임무를 수행하듯 신지는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2011년 3월 11일, 이 픽션은 현실이 된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전력이 부족해지자, 한 트위터 이용자가 제안했다. "야시마 작전을 실행하자."
#ヤシマ作戦 해시태그가 퍼져나가며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절전에 동참했다. 도쿄 타워가 불을 끄고, 시부야의 전광판들이 꺼졌다. 16년 전 애니메이션에서 일본 전역이 전력을 모아 사도를 격파했듯이, 현실에서는 시민들이 전력을 아껴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실제로 이 운동은 효과가 있었다. 도쿄 전력은 절전 덕분에 추가 정전을 피할 수 있었다고 발표했고, 한 참여자는 "야시마 작전이라는 이름 덕분에 무거운 상황에서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재난의 순간, 하나의 음악과 이야기가 현실의 행동 지침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