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즈 오브 툼레이더 - 재탄생의 순간을 노래한 명곡

완벽한 영웅에서 불완전한 인간으로, 그리고 다시 전설로

by 연구소장
Karen O – “I Shall Rise” Official Music Video


라라 크로프트는 1996년 처음 등장한 이후 게임계의 대표적인 여성 캐릭터로 자리잡는다. 그도 그럴것이 그 당시에는 이런 캐릭터가 없었기 때문. 영국 귀족 출신의 고고학자이자 모험가. 듀얼 피스톨을 들고 전 세계 유적지를 누비는 그녀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캐릭터였다. 2001년과 2003년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되며 문화적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프랜차이즈는 침체기에 빠졌다. 매년 나오는 속편들은 판매량이 떨어졌고, 과장된 캐릭터 디자인과 비현실적인 액션은 시대에 뒤떨어져 보였다. 2008년 <툼레이더: 언더월드> 이후 시리즈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망했어요


1992년 설립된 크리스탈 다이나믹스는 <레거시 오브 케인>, <소울 리버> 같은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 유명한 개발사다. 2009년 스퀘어 에닉스에 인수되면서 툼레이더 프랜차이즈를 맡게 된 그들은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데 바로 라라 크로프트를 완전히 새롭게 리부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2013년 출시된 <툼 레이더> 리부트작은 21살의 젊은 라라가 야마타이 섬에서 생존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처음으로 사슴을 사냥하고, 생존을 위해 사람을 죽인 뒤 괴로워하는 모습은 기존의 완벽한 영웅 라라와는 달랐다. 이 새로운 접근은 성공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1,450만 장이 팔렸고, "인간적인 라라"라는 평가를 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2015년 출시된 <라이즈 오브 더 툼레이더>는 그 후속작이다. 전 세계 1,18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메타크리틱 94%의 긍정 평가를 받았다. 미국 작가 조합상 비디오 게임 각본상, D.I.C.E. 어워드 최우수 캐릭터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대작 게임들은 보통 오케스트라 음악을 선호한다. 영화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서일까. <언차티드>는 할리우드 모험 영화를 연상시키는 음악을, <위쳐 3>는 민속음악과 교향곡을 섞었다. <갓 오브 워>는 아이슬란드 합창단까지 동원했다. 뭔가 거대하고 서사적인 느낌을 주려는 시도들이다.


<라이즈 오브 더 툼레이더>도 게임 내에서는 바비 타호리(Bobby Tahouri)의 오케스트라 음악을 사용했다. 그런데 엔딩곡으로는 Yeah Yeah Yeahs의 프론트우먼 Karen O를 선택했다. 개발팀은 "라라가 아이콘이 되는 순간"을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드라마와 긴장감, 멜로드라마"가 필요했지만, 동시에 개인적이고 친밀한 감정도 중요했다는 것이다.


Karen O는 이미 영화음악 작업으로 인정받은 아티스트다. 영화 <Her>에서 'The Moon Song'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고, <괴물들이 사는 나라> 사운드트랙으로 그래미상 후보가 됐다. 데이비드 핀처의 <밀레니엄>에서는 리스베트 살란데르라는 복잡한 여성 캐릭터를 위해 레드 제플린을 재해석하기도 했다.


툼 레이더를 위한 음악 녹음 당시 Karen O는 임신 8개월이었다. 그녀는 "거대한 전환기를 겪고 있었다"고 표현했는데, 새 생명을 품은 상태에서 재탄생(리부트)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 이런 상황이 오히려 곡에 특별한 의미를 더했을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I Shall Rise'의 가사는 게임의 구체적인 순간들과 연결된다. "As I walk the desert sands / Through the flames of burning lands"는 시리아 사막에서 예언자의 무덤을 찾는 초반부를 떠올리게 한다. 라라는 실제로 불타는 헬기 잔해를 지나가고, 트리니티의 공격을 피해 사막을 횡단한다.


"Waves are crashing over me / They drag me down"은 시베리아의 급류 장면과 겹쳐진다. 게임에서 라라는 여러 번 물에 빠진다. 얼음물 속에서 버둥거리며 살아남으려는 장면들이 가사와 맞아떨어진다. 플레이어는 빠르게 버튼을 눌러 라라를 구해야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They'll know my name / After the storms are passing through"는 게임의 핵심 주제를 담고 있다. 라라는 아버지의 연구를 증명하려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결국 중요한 건 라라 크로프트라는 이름 그 자체다.


곡은 조용하게 시작한다. 기타와 보컬만으로 시작해서 점차 악기가 추가된다. 드럼, 베이스, 현악기가 더해지면서 사운드가 풍성해진다. 이런 전개는 게임 속 라라의 성장과 닮았다. 혼자 시작한 여정에서 동료를 만나고, 점점 강해지는 과정과 비슷하다.


Karen O는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와 찬송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반복되는 "I shall rise"는 주문처럼 들린다. 게임에 등장하는 '예언자', '신성한 원천' 같은 종교적 요소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레딧에는 이 노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라라와 함께 모든 시련을 겪은 것 같았다",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봤다" 같은 의견들이 눈에 띈다. 느린 템포의 이 곡은 긴장감 넘치는 게임플레이 후 플레이어에게 기나긴 여운을 남긴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함 대신 한 사람의 목소리가 전하는 메시지야말로 리부트 시리즈가 추구하는 인간적인 라라가 추구하던 모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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