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 된 기도의 변화
13세기 중세 교회에서 수도사들이 신에게 바치던 음악이 그레고리안 성가입니다. 오르간도 없이 오직 인간의 목소리만으로 부르는 노래가 현대 게임과 영화에서는 가장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뇌리에 남을 만큼의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장치로 쓰이고 있습니다.
먼저 블러드본과 다크소울 시리즈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순간을 기억할겁니다. 루드비히가 달빛의 성검을 들고 일어설 때, 법왕 설리번이 검은 날개를 펼칠 때, 노예 기사 게일이 세계의 끝에서 마지막 싸움을 시작할 때, 그리고 우주의 딸 이브리에타스가 울부짖을 때. 이 모든 순간에 웅장한 라틴어 합창이 울려퍼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성가대 합창이 전혀 다른 감정을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예전에 작성한 제네식 가오가이거 파이널 퓨전 음악에서도 합체를 시작하는 순간 또한 장엄한 성가대가 등장하지만, 이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희망과 승리의 감정입니다.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의 성가는 숭고함을 더하지만, 타락한 성직자가 괴물이 되는 순간의 성가는 공포를 배가시킵니다.
왜 같은 음악이 이렇게 다른 감정을 만들어낼까요?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적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었던 순간들을 떠올려봅시다. 교회에서, 결혼식에서, 영화 속 천사가 나오는 장면에서.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 뇌는 하나의 견고한 공식을 만듭니다. "성가 =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이라는 공식입니다.
이것은 개인적 경험을 넘어선 문화적 학습입니다. 서구 문화권에서 천 년 동안 그레고리안 성가는 신성함의 상징이었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이 연결고리는 문화적 DNA처럼 우리 안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식이 깨지면 뇌는 극도의 혼란을 경험합니다. 귀로는 "여기는 신성한 곳이야"라는 신호가 들어오는데, 눈으로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라는 정반대 신호가 들어옵니다. 평생 쌓아온 '성가=안전'이라는 공식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부릅니다. 머릿속에서 "이건 말이 안 돼!"라고 외치는 상태입니다. 이 불일치가 만드는 불편함이 공포의 시작입니다. 이 혼란은 우리 뇌 속에서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요?
캐나다의 Annabel J. Cohen 교수는 우리가 영화나 게임 같은 미디어를 경험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과정을 연구했습니다. 2006년 "The Role of Music, Sound Effects & Speech on Absorption in a Film"에서 처음 제시하고, 2013년 MIT Press 『Language, Music and the Brain』에서 더욱 발전시킨 'Congruence-Associationist Model'은 우리 뇌를 하나의 거대한 정보 처리 회사로 비유합니다.
이 모델을 블러드본의 대성당 구역에 들어서는 순간에 적용해봅시다.
어두운 성당,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퍼지고, 무언가 불길한 존재가 움직입니다.
A층 - 감각 정보의 입력 (Surface Level)
맨 아래층은 우리 감각기관으로 직접 들어오는 날것의 정보들입니다. 게임을 하는 동안 'Sound FX Surface(효과음 표면)'로는 발소리, 숨소리,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어옵니다. 'Music Surface(음악 표면)'로는 그레고리안 성가가 흐르고, 'Visual Surface(시각 표면)'로는 어두운 성당 내부와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입니다.
여기서 영화와 게임의 결정적 차이가 나타납니다. 바로 'Kinesthetic Surface(신체감각 표면)'의 존재입니다. 컨트롤러를 쥔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 캐릭터를 조작하면서 생기는 근육의 긴장, 위험을 감지한 몸의 본능적 반응이 모두 정보로 입력됩니다. 영화를 볼 때는 의자에 편안히 앉아있지만, 게임을 할 때는 온몸이 긴장 상태가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B층 - 단기 기억 처리 (Short-Term Memory Processing)
중간층의 다이아몬드들은 방금 들어온 정보를 1차적으로 처리하는 STM(Short-Term Memory, 단기 기억) 부서들입니다. 각 부서는 자신의 전문 분야만 담당합니다. 'STM Music'은 들어온 성가를 분석합니다. "이건 전통적인 그레고리안 성가네. 단선율이고, 라틴어로 부르고 있어. 교회에서 들었던 그 음악이야." 동시에 'STM Visual'은 완전히 다른 분석을 내놓습니다. "공간이 너무 어둡고, 뭔가가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고 있어.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이 부서들 사이의 소통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이어그램에서 음악과 시각 정보 사이의 굵은 화살표를 주목해보면, Cohen 교수는 이 연결이 가장 강력한 상호작용을 일으킨다고 설명합니다.
성가를 처리하는 부서는 "이 음악은 평화롭고 신성해"라고 보고하는데, 시각 부서는 "아니야, 지금 상황이 매우 불길해"라고 정반대 보고를 합니다. 게임에서는 여기에 신체감각 부서가 "심장이 빨리 뛰고 있어! 손에 땀이 나! 이건 명백한 위험 신호야!"라고 추가 보고를 올립니다.
C층 - 작업 내러티브 (Working Narrative)
모든 정보는 최종적으로 'Working Narrative'라는 중앙 통제실에서 만납니다. 이곳의 임무는 명확합니다. 지금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영화를 볼 때는 이 과정이 비교적 단순합니다. 감독이 의도한 하나의 내러티브로 자연스럽게 수렴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선택과 행동이 이 내러티브를 실시간으로 변화시킵니다. 성가는 "이곳은 신성한 공간이다"라는 내러티브를 제시하고, 어둠과 그림자는 "이곳은 위험한 공간이다"라는 내러티브를 제시합니다. 플레이어의 과거 게임 경험은 "조용한 음악 뒤에는 항상 보스전이 있었어"라는 예측을 만들고, 신체 반응은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해"라는 충동을 일으킵니다.
Working Narrative는 이 모든 모순된 신호를 하나로 통합하려고 애쓰지만, 도저히 일관된 이야기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 실패가 바로 우리가 느끼는 인지적 불편함의 핵심입니다.
E층 - 장기 기억 (Long-Term Memory)
맨 위의 'Long-Term Memory'는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축적한 모든 경험과 문화적 지식이 저장된 거대한 도서관입니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중세 교회 음악이다", "교회는 안전한 피난처다", "하지만 최근 본 호러 영화에서는 성가가 나올 때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어두운 곳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 같은 정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활성화됩니다.
특히 게임을 많이 해본 플레이어의 경우, 추가적인 패턴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조용한 음악이 나올 때 적이 나타난다", "세이브 포인트가 없으면 위험하다", "보스룸 앞에는 특별한 음악이 흐른다" 같은 게임 특유의 문법들입니다. 이런 '게임 리터러시'가 상황 해석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합니다.
D층 - 상호작용의 교차점 D층은 실제로 별도의 층이라기보다는 장기 기억과 Working Narrative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를 나타냅니다. 우리의 과거 경험과 기대(Expectations)가 현재 상황 해석에 영향을 주고,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의 새로운 경험이 다시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어 미래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순환 구조입니다.
Cohen 교수가 이 모델을 'Congruence-Associationist'라고 명명한 데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음악과 영상이 서로 일치(Congruence)할 때, 우리의 연상(Association) 작용은 매끄럽게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결혼식 장면에 축혼 행진곡이 나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 행복한 순간이구나"라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가와 공포가 결합하면 이 일치가 완전히 깨집니다. 연상 작용이 충돌하면서 인지적 긴장이 발생하고, 이것이 우리를 극도로 불편하게 만듭니다. 게임은 여기에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참여라는 요소를 더해 이 긴장을 극한까지 끌어올립니다. 플레이어가 직접 그 공간에 있다는 몰입감,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감, 잘못된 선택으로 죽을 수 있다는 실질적 두려움이 모두 합쳐져서 영화보다 훨씬 강렬한 감정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원래 완벽한 화음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도-미-솔처럼 수학적으로 안정된 주파수 비율을 가진 음들만 사용합니다. 현대 게임 작곡가들은 이 안정적인 성가에 미묘한 변화를 줍니다. 조율이 살짝 어긋난 피아노를 상상해보면, 귀로는 "뭔가 이상한데?"라고 느끼지만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는 모릅니다. 게임 음악에서도 비슷한 기법을 씁니다. 여러 목소리가 미세하게 다른 음높이로 노래하면, 우리 귀는 그 차이를 명확히 구별하지 못하지만 뇌는 "뭔가 불안정하다"고 느낍니다.
더 교묘한 기법은 초저주파의 활용입니다. 20Hz 이하의 초저주파는 우리 귀로는 들을 수 없지만, 몸은 느낍니다. 자연에서 이런 주파수는 지진, 화산 폭발, 대형 포식자의 으르렁거림에서 발생합니다.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우리 조상들은 이 주파수를 "도망쳐!"라는 신호로 학습했습니다.
이브리에타스 전투를 생각해봅시다. 우주의 딸이 울부짖을 때, 그 울음소리와 여성 성가대의 목소리가 겹쳐집니다. 가사도 없이 "아아아-" 하는 순수한 발성만 계속되는데, 이것이 이브리에타스의 울음과 섞이면서 기괴한 초저주파를 만들어냅니다. 플레이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주적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성가대 합창이 울려퍼지는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건 중요한 순간이다"라고 느낍니다. 한 사람이 아닌 수십 명이 함께 노래한다는 것은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제네식 가오가이거의 파이널 퓨전에서 성가대가 등장하면 "드디어 최종 형태가 나타났다"는 절정의 순간임을 알립니다. 반대로 법왕 설리번이 검은 날개를 펼치며 2페이즈로 전환할 때 성가대가 등장하면 "이제 진짜 시련이 시작된다"는 압박감을 전달합니다.
성가대의 또 다른 효과는 '초월성'입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개인적이지만, 수십 명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지면 개인을 넘어선 무언가가 됩니다.
노예 기사 게일 전투는 이를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1페이즈에서는 장엄한 레퀴엠이 울리지만, 2페이즈에서 게일이 완전히 미쳐버리면 성가는 비명으로 변합니다. 3페이즈에 이르면 성가가 거의 들리지 않고 가끔 바람에 실려오는 희미한 목소리만 남습니다. 이는 세계 자체가 소멸해가는 것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성가대의 소멸은 곧 세계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성가대 음악이 시작되면 시간의 흐름이 바뀝니다. 일상적인 시간에서 벗어나 신화적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루드비히가 성검을 들고 일어서는 그 순간, 법왕 설리번이 날개를 펼치는 그 순간, 플레이어는 단순한 보스전이 아니라 하나의 비극적 서사시를 목격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 시간의 변화는 플레이어의 심리 상태도 바꿉니다. 급하게 버튼을 누르던 전투가 갑자기 장엄한 의식의 순간으로 전환되면서, 플레이어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을 준비합니다.
근데 이러한 기법은 영화도 동일합니다. 하지만 왜 게임에서 유난히 더 기억에 많이 남을까요?
영화를 볼 때와 게임을 할 때 우리 뇌에서 활성화되는 영역이 다릅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문을 연다"고 인식하지만, 게임에서는 "내가 문을 연다"고 인식합니다. 비록 그 문을 열 수밖에 없는 정해진 스토리라 해도, 내 손으로 X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이 결정적 차이를 만듭니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직접 행동할 때는 운동피질(Motor Cortex)이 활성화되고, 이것이 감정 처리 영역과 직접 연결됩니다. 보스룸 문 앞에 서서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버튼을 누르는 그 행위가 "내가 선택했다"는 착각을 만들고, 이 착각이 감정적 몰입을 극대화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스토리상 필요할 때만 죽습니다. 하지만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실제로, 반복적으로 죽습니다. 루드비히 전투에서 플레이어는 평균 20-30번 죽습니다. 저는 100번이 넘습니다 법왕 설리번의 화염 검에 수십 번 유다희를 만나고 노예 기사 게일의 번개에 맞아 쓰러지며 이브리에타스의 촉수에 잡혀 죽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매번 죽을 때마다 그 성가가 "또 실패했다"는 신호가 됩니다.
수십 번의 죽음을 통해 플레이어의 몸은 각 보스의 성가와 고통을 물리적으로 연결시킵니다.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듯, 플레이어는 특정 음악만 들어도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빨리 뜁니다. 이것은 영화가 절대 만들 수 없는 종류의 신체적 조건화입니다.
현대 게임의 음악은 플레이어의 행동에 실시간으로 반응합니다.
법왕 설리번 전투 흐름을 살펴보면 전투가 시작되고 1페이즈에서는 오르간과 함께 남성 합창단의 낮은 성가가 울립니다. 전형적인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들리지만, 설리번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성가에 어색한 음이 섞입니다. 2페이즈로 전환되어 검은 날개가 돋아나면, 성가는 완전히 뒤틀립니다. 여전히 라틴어, 여전히 성가의 형식이지만, 더 이상 신성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행동이 음악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압니다. 음악이 살아있는 것처럼, 나를 지켜보고 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모든 매커니즘이 결합되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똑같은 성가대 합창이라도 맥락에 따라 정반대의 감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제네식 가오가이거처럼 영웅이 최종 형태로 변신하는 순간에 울려퍼지면 승리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블러드본처럼 한때 영웅이었던 존재가 괴물이 되어 싸우는 순간에 울려퍼지면 비극과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우리 뇌는 음악을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항상 맥락과 함께 처리합니다. 성가가 밝은 빛, 상승하는 이미지와 함께 나오면 희망의 음악이 되고, 어둠, 하강하는 이미지와 함께 나오면 절망의 음악이 됩니다. 음악 자체는 같아도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180도 다른 것입니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서구 문화에서 천 년 동안 '신성함'의 절대적 상징이었습니다. 블러드본과 다크소울은 이 문화적 DNA를 교묘하게 해킹합니다. 블러드본의 야남은 교회가 지배하는 도시입니다. 치유의 교회는 '피의 치료'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이것이 사람들을 짐승으로 만드는 원인입니다. 이브리에타스는 교회가 지하에 가둬둔 우주적 존재로, 교회는 그녀의 피를 성체로 사용합니다. 신성해야 할 의식이 사실은 우주적 공포의 근원인 것입니다.
각 보스의 성가는 그들이 한때 추구했던 이상과 현재의 타락 사이의 간극을 보여줍니다. 루드비히는 "밤에 길을 잃지 않으리라"고 노래하지만 이미 길을 잃었고, 법왕 설리번은 신의 대리인이지만 스스로 신이 되려 했으며, 노예 기사 게일은 세계를 구하려 했지만 세계와 함께 소멸해갑니다.
이 반전이 일반적인 공포 음악보다 훨씬 강력한 이유는 우리의 가장 깊은 믿음, 가장 오래된 안전감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공포를 만드는 것보다, 오래된 안전을 파괴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그레고리안 성가가 수백년이 지나서 디지털 악몽의 언어가 된 것은 무척 놀라운 부분입니다. 중세 수도사들이 신과 대화하기 위해 만든 음악이 이제는 플레이어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을 그들이 안다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요?
예술 작품의 형식은 시간을 초월하지만, 그 의미는 시대와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사람들에 의해서 재창조됩니다. 음악은 그저 단순한 소리의 조합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문화, 감정과 깊이 연결된 살아있는 언어이기 때문이죠.
게임은 이 변용을 가장 극적으로 달성합니다. 플레이어를 수동적 관찰자가 아닌 능동적 참여자로 만들고, 반복된 죽음을 통해 공포를 신체에 각인시키며,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음악으로 살아있는 악몽을 창조합니다. 여기서 블러드본과 다크소울이 보여준 것은 그저 공포 게임의 기법이 아닌, 오래된 문화적 상징을 새로운 매체의 언어로 번역하는 창조적 행위에 가깝습니다. 중세의 신성함이 21세기의 인터랙티브 공포의 매개체로 재탄생한 것이죠.
결국 성스러운 것이 공포가 되는 이 아이러니는 인간 상상력의 무한함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음악들도 언젠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컨데 케데헌 그것이 예술이 시대를 초월하는 방식입니다. 형식은 남되, 의미는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것. 그것이 그레고리안 성가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