뿅뿅 소리로 100스테이지를 버틴 미니멀리즘의 승리

적을수록 풍부하다는 역설

by 연구소장
Bubble Bobble Arcade In-Game Music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미니멀리즘은 복잡한 것을 다 빼고 가장 핵심적인 것만 남기자는 예술 운동이다. 필립 글래스나 스티브 라이히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같은 패턴이 계속 반복되는데, 처음엔 "이게 뭐야?"라고 생각하지만, 계속 듣다 보면 미묘한 변화들이 들리기 시작하고 어느새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이런 미니멀리즘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등장하는데 바로 일본의 아케이드 게임 음악이다. 당시 아케이드 게임기들은 Yamaha의 YM2203이라는 사운드칩을 사용했다. 동시에 겨우 6개 채널의 소리만 낼 수 있는 극도의 제약이 있었고, FM 합성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특유의 '뿅뿅'거리는 전자음이 전부였다. 요즘 게임이 수백 개의 소리를 동시에 재생하는 것과 비교하면 믿기 힘들 정도다.


이 똑같은 칩으로 만들어진 게임 음악들을 들어보면 재미있다. Taito의 'Darius'는 우주전쟁의 웅장함을 표현하려고 애썼고, Namco의 'Dragon Spirit'은 판타지 세계를 그리려 했다. Sega의 'Fantasy Zone'은 파스텔톤 동화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모두 같은 YM2203 칩을 썼지만,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Taito의 작곡가 키미지마 타다시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택했다. 100개의 스테이지를 가진 'Bubble Bobble'(한국에서는 '보글보글'로 더 유명한)에 단 하나의 BGM을 만들어야 한다는 미션을 받았을 때, 그는 이 제약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16마디짜리 무한 루프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어차피 전자음이니까 전자음답게, 어차피 반복이니까 반복답게 가자"는 발상이었다.


무한 반복의 기적

링크한 'Bubble Bobble Theme'를 들어보자. 아마 읽는 동안 벌써 네 번은 반복됐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직 끄고 싶지 않다. 왜일까?


Bubble Bobble 테마를 자세히 들어보면 교묘한 구조가 숨어있다. 밑바탕이 되는 화음은 극도로 단순하다. 도-파-솔, 도-파-솔... 음악 시간에 배운 가장 기본적인 것들만 반복한다. 베이스는 쿵짝쿵짝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도-미-솔-미-도 하며 계속 움직인다. 계단을 오르내리듯 꾸준히 진행하면서 '전진감'을 만든다. 가만히 서 있어도 음악이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든다. Bubble Bobble은 멈춰있으면 안 되는 게임이었으니까, 이 추진력이 플레이어를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만든다.


왜 이 음악을 질리지 않는가? 바로 비밀은 '순환 구조'에 있다. 이 곡은 시작과 끝이 정확히 이어진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다. 일반적인 음악은 긴장을 만들고 해소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우리가 팝송을 들을 때 "아, 이제 후렴 나오겠구나" 하고 예상하는 것처럼.


하지만 Bubble Bobble 테마는 해결되는 순간이 곧 새로운 시작이 되도록 설계됐다. 16마디가 끝날 때 우리의 뇌는 "아, 끝났구나"라고 인식하기도 전에 "어? 다시 시작이네"를 경험한다. 우리의 뇌는 '완결'을 원한다.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끊으면 찝찝한 것처럼. 하지만 이 음악은 완결되는 순간 다시 시작되기 때문에, 뇌는 계속해서 '다음'을 기다리게 된다. 100스테이지를 플레이하는 동안 같은 음악을 들어도 '아직 끝나지 않은 느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이것이다.


YM2203 칩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뿅뿅' 소리도 한몫한다. 많은 게임들이 이 전자음을 숨기려고 실제 악기처럼 들리게 하려 애썼지만, Bubble Bobble은 오히려 이를 적극 활용한다. 그 '뿅뿅' 소리가 버블이 터지는 효과음과 완벽하게 어울렸기 때문이다. BGM 자체가 거대한 버블 속에서 연주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전자음의 주파수가 어린아이의 허밍 소리와 비슷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따라 부르기 쉬웠다. 템포 변화도 이 음악의 숨은 무기다. 평소에는 분당 120박자 정도로 경쾌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한 스테이지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Hurry Up!"이라는 경고와 함께 음악이 갑자기 빨라진다. 150, 180까지 올라갔다. 같은 멜로디, 같은 화음인데 템포만 바꿨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곡처럼 들렸다. 느린 템포에서는 즐겁게 노는 느낌이었지만, 빨라지면 긴박한 추격전이 됐다.


음악이 빨라지면 우리의 심박수도 따라서 올라간다. 빠른 템포의 음악을 들으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Hurry Up!' 상황에서는 무적 몬스터까지 등장해서 플레이어는 음악과 위협이라는 이중 압박을 받았다. 16마디라는 짧은 루프가 오히려 이런 템포 변화를 더 극적으로 만들었다.


게임 음악의 미니멀리즘 계보

Bubble Bobble이 증명한 미니멀리즘의 힘은 이후 많은 게임들에 영향을 미쳤다. 'Tetris'의 아케이드 버전(1988)이 대표적이다. 러시아 민요 'Kalinka'를 단순하게 편곡한 아케이드 음악은 극도로 제한된 사운드 채널 속에서도 중독성 있는 루프를 만들어냈다. 블록이 떨어지는 단순한 게임에 복잡한 음악은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단순한 멜로디의 반복이 Tetris의 본질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Tetris Arcade Music - Kalinka


'Pac-Man'(1980)의 시작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단 4초짜리 멜로디였지만, 40년이 지난 지금도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다. 와카와카 하며 점을 먹는 단순한 게임 플레이와 단순한 음악이 절묘하게 어울렸다.

최근 인디 게임들도 이런 미니멀리즘을 재발견하고 있다. 'Undertale'(2015)의 일부 트랙들은 의도적으로 단순한 칩튠 스타일을 고수한다. 'MEGALOVANIA' 같은 곡은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몇 개의 패턴을 계속 반복하고 변주하는 구조다. 'Celeste'(2018)의 일부 스테이지 음악도 최소한의 음으로 최대한의 감정을 전달한다.


'Super Hexagon'(2012)의 칩젤이 만든 음악은 극단적 미니멀리즘의 현대적 해석이다. 단 몇 초의 루프가 게임의 극도로 빠른 속도감과 맞물려 트랜스 상태를 만든다. 플레이어는 음악의 비트에 맞춰 움직이게 되고, 게임과 음악이 하나가 된다.

Super Hexagon Soundtrack - Hexagon


몰입의 비밀

게임을 하다가 "어? 벌써 3시간이나 지났어?"라고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플로우' 상태라고 부른다. 이 상태에 들어가려면 방해받지 않는 환경이 필요한데, Bubble Bobble의 단순 반복 음악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


음악이 너무 복잡하거나 자주 바뀌면 우리의 뇌는 계속 그것을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Bubble Bobble 음악은 몇분만 들으면 완전히 익숙해진다. 그 후부터는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뇌가 음악 처리에 에너지를 쓰지 않으니, 모든 집중력을 게임 플레이에 쏟을 수 있다. 음악은 거슬리지 않는 배경이 되고, 플레이어는 오직 버블을 쏘고 적을 잡는 데만 몰입한다.


역설적이지만, 지루할 정도로 단순한 음악이 오히려 더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했다. 1986년 동시대의 다른 게임들과 비교해보면 이 선택이 얼마나 독특했는지 알 수 있다. SEGA의 'OutRun'은 라틴 재즈와 신스팝을 섞은 세련된 음악으로 유명했다. Konami의 'Castlevania'는 고딕 록과 바로크 음악을 8비트로 구현했다. 남들이 복잡하고 화려한 음악을 만들 때, Bubble Bobble은 극도로 단순한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게임의 정체성이 된다.


Bubble Bobble, 한국에서 '보글보글'로 더 친숙한 이 게임의 테마는 일본에서는 수많은 리믹스가 만들어졌고, 한국에서는 '공룡둘리' 게임에서 어레인지되어 또 다른 추억이 됐다. 심지어 소녀시대가 모델로 나온 삼양라면 광고에서도 등장한다.

소녀시대의 삼양라면 CF


이 멜로디가 강력한 인상을 남긴 이유는 '귀벌레' 현상 때문이다. 특정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현상 말이다. 샤워하다가 갑자기 "뿅뿅뿅~"하고 흥얼거린 적 있다면, 그게 바로 귀벌레다.


16마디, 5개의 음, 3개의 화음. Bubble Bobble이 가진 것은 이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 극도의 제약이 오히려 영원한 생명력을 만들어냈다. 기술적 한계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 16마디는, 지금 들어도 여전히 미소 짓게 만드는 마법의 BGM이라 부르기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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