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회진 도는데 영장이 왜 필요해?

by 연구소장

"거기 멈춰! 손들어!"


'천상관' 1층 로비. 형사 서너 명이 권총에 손을 올린 채 고함을 질렀다. 그 뒤로는 제복 입은 순경들이 곤봉을 들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이구, 이게 무슨 난리래." 나는 가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피식 웃었다. 내 뒤를 따르던 정혁과 외상팀은 사색이 되어 멈춰 섰다.


"망했다. 취업 사기인 줄 알았는데 장기매매 조직이 맞았어..." 수간호사 박미선이 입을 틀어막았다. 정혁은 본능적으로 내 앞을 막아서려 했다. (이 자식, 겉으론 틱틱거려도 스승 보호 본능은 여전하군.)


"비켜, 정 선생." 나는 정혁의 어깨를 가볍게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입니까, 형사님들? 남의 집 안방에 신발도 안 벗고 들어오시고."


가장 선임으로 보이는, 가죽 재킷을 입은 중년 형사가 나를 노려보며 다가왔다. "네가 천이환이냐? 신고가 들어왔다. 어제 헬기 추락 사고 현장에서 구조된 119 대원을 네놈들이 강제로 끌고 갔다고!"


아, 그 환자 직업이 소방관이었군. "납치라뇨. 구조입니다."


"구조? 병원도 아닌 종교 시설로 데려가는 게 구조냐? 당장 피해자 내놔! 안 그러면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 형사가 수갑을 꺼내 들며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쫄아서 오줌을 지렸겠지만, 나는 전생에 술 먹고 칼 들고 난동 부리는 조폭 환자들도 제압해 본 외상센터장이었다.


"체포?" 나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형사의 눈을 쏘아봤다.


"지금 환자는 급성 후두개염에 의한 기도 폐쇄로 응급 처치를 받고 안정을 취하는 중입니다. 함부로 옮기면 쇼크 옵니다. 당신이 책임질 겁니까?"


"뭐, 뭐? 후두... 개?" 형사가 주춤했다.


"그리고." 나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로비의 거대한 기둥 뒤, 2층 난간, 그리고 정원 쪽 창문 너머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흰 옷을 입은 신도들. 그들의 손에는 촛대, 빗자루, 혹은 그냥 맨주먹이 쥐어져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형사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히익...!" 순경 하나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수백 개의 눈동자가 뿜어내는 광기는 공권력조차 압도하고 있었다.


"이곳은 종교 시설입니다. 영장 없이 들어와서 난동을 부리면, 우리 신도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내가 나직하게 말하자, 김 장로가 어디선가 나타나 양복 입은 남자 두 명을 대동하고 형사 앞을 막아섰다.


"안녕하십니까. '천명' 법무팀장, 전직 부장검사 출신 강철민 변호사입니다. 지금 주거 침입 및 종교 탄압으로 고발 조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형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 이 미친 사이비 새끼들이...!"


"욕설도 하셨네요. 모욕죄 추가." 변호사가 싱글벙글 웃으며 수첩에 뭔가를 적었다.


나는 형사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뒤를 돌아봤다. "가자. 환자 기다리겠다."


형사들은 분해서 씩씩거렸지만, 변호사들과 신도들의 인간 바리케이드에 막혀 더 이상 진입하지 못했다.


[천상관 1층, 임시 처치실]


"미쳤어... 진짜 미쳤어..." 정혁은 복도를 걷는 내내 중얼거렸다. "경찰을 저렇게 돌려보낸다고? 대한민국에 이런 치외법권이 존재한다고?"


"익숙해져라. 여긴 내 말이 곧 법이니까." 나는 쿨하게 대꾸하며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어제 내가 살려낸 여환자가 링거를 꽂은 채 누워 있었다. 옆에는 간병인—이라고 쓰고 신도라고 읽는—이 물수건으로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상태는?" 내가 묻자 간병인이 화들짝 놀라며 엎드렸다. "서, 성자님! 열은 내렸고 호흡도 안정적입니다!"


나는 환자에게 다가갔다. 목에는 여전히 볼펜 대롱이 꽂혀 있었다. 주변 피부가 약간 붉게 부어올랐지만, 다행히 고름은 없었다.


"정 선생." "네? 아, 네." 정혁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이거 뽑고, 트라키오(Tracheostomy, 기관절개관)로 교체해. 6.0 사이즈 튜브, 카트에 있어."


"아니, 지금 여기서요? 장비도 없이?" "카트 열어봐."


정혁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구석에 있는 의료용 카트를 열었다. 그리고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 미친."


카트 안에는 대학병원 수술실에서도 아껴 쓴다는 최고급 일회용 절개 세트와 멸균 소독포, 그리고 종류별 튜브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까 내가 김 장로를 시켜 퀵으로 받아온 물건들이었다.


"뭐 해? 인턴 때 다 해봤잖아." 내 재촉에 정혁의 표정이 바뀌었다. 의사의 눈빛이었다. 그는 능숙하게 장갑을 끼고 소독약을 집어 들었다.


"박 선생님, 썩션(Suction) 준비해 주세요. 지영 누나... 아니, 이 선생님은 바이탈 체크해 주시고요."


"알겠어." "네, 선생님."


순식간이었다. 사이비 종교 시설의 호화로운 침실이, 순식간에 긴박한 응급 처치실로 변했다. 정혁이 볼펜 대롱을 뽑아내고, 박미선이 피와 가래를 빨아내고, 이지영이 맥박을 쟀다.


"절개합니다. 메스." 정혁의 손에 들린 건 진짜 메스였다. 그의 손놀림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펠로우 주제에 손이 맵기로 유명했지.


'잘 컸네, 내 새끼.' 나는 팔짱을 끼고 흐뭇하게 지켜봤다.


"튜브 삽입. 커프(Cuff) 팽창. 고정." 정혁이 능숙하게 튜브를 고정하고 청진기를 댔다. "양쪽 폐음 좋습니다. 시술 끝."


"수고했다." 내가 박수를 짝짝 치자, 의료진 셋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방금 전까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제야 자각한 표정이었다.


"우리... 지금 사이비 교주 침실에서 시술한 거죠?" 이지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정확히는 '천명 외상센터 제1호 환자'를 처치한 거지." 나는 환자의 차트—김 장로가 급조해 온 노트—에 끄적였다.


[환자명: 신원 미상(소방관 추정). 처치: 기관절개술. 경과: 양호.]


그때, 침대에 누워 있던 환자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으... 으윽..."


"어? 의식 돌아온다!" 박미선이 소리쳤다.


환자가 눈을 떴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천장의 샹들리에를 보고, 그다음엔 우리를, 마지막으로 내 얼굴을 봤다. "여... 여기가... 천국...?"


"아니요." 내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지옥보다 더 빡센 곳입니다. 완치될 때까지 못 나가는 병원이죠."


[띠링!] [돌발 퀘스트 완료: '첫 번째 어린 양을 구하라'] [보상: 레벨 업! (Lv.2 -> Lv.3)] [새로운 기능이 해금됩니다: <병원 경영 모드>]


눈앞에 거대한 홀로그램 지도가 펼쳐졌다. 천명원 전체의 조감도였다. 건물마다 빨간색, 파란색 아이콘이 떠 있었다.


[현재 병원 등급: F (무허가 야전 병원 수준)] [보유 자금: 7,200억 원 (풍족함)] [의료진 만족도: 15% (매우 의심스러움)] [신도 신앙심: 99% (광기)]


이거네. 심시티... 아니, 호스피탈 타이쿤이 시작됐다.


"자, 환자도 깼으니 이제 진짜 일하러 가야지." 나는 정혁의 어깨를 툭 쳤다.


"공사장 가자. 너희가 쓸 수술실, 너희 손으로 직접 감리해."


"네? 저희가요?" "의사가 동선 안 짜면 누가 짜냐? 건축 업자가 알아서 해주디? 콘센트 위치 하나까지 너희 편한 대로 다 뜯어고쳐. 돈은 내가 내니까."


정혁의 눈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내 맘대로 수술실을 만든다고?' 외과 의사에게 이보다 더 달콤한 유혹은 없다.


"아, 그리고." 나는 문을 나서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저 환자, 소방관이라며. 깨어나서 정신 좀 차리면 물어봐." "뭘요?"


"혹시 동료들 중에 다치거나 아픈데 돈 없어서 치료 못 받는 사람 있는지. 있으면 다 데려오라고 해."


"......"


"공짜로 고쳐준다고. 소방관, 경찰, 군인. 국가를 위해 몸 바치다 헌신짝 된 사람들. 우리 병원은 그 사람들 VIP로 모신다."


정혁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네. 사기꾼인지 슈바이처인지."


"둘 다야." 나는 윙크를 날리고 복도로 나갔다.


[의료진 만족도가 소폭 상승했습니다. (15% -> 20%)]


아직 갈 길이 멀군. 하지만 상관없다. 내일이면 헬기가 도착할 테니까. 그때부터가 진짜 전쟁이다.


[다음 날 아침, 천명원 상공]


쿠구구구구-! 거대한 굉음이 천명원의 고요한 아침을 깨웠다.


기도를 올리던 신도들이, 진료 준비를 하던 정혁 일행이, 그리고 100일 기도 굴에 있던 교주 천무성까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빨간 기체에 흰색 십자가가 그려진 거대한 헬리콥터 두 대. 아구스타웨스트랜드 AW-139.


그것은 구원의 천사가 아니라, 엔진 소리로 심장을 울리는 강철의 괴물이었다.


"왔다." 나는 옥상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바람을 맞으며 웃었다.


"내 날개."


이제 대한민국 응급 의료의 판을 뒤집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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