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답답한 세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단 하나였다. 대학.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가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공포 속에서 나는 원서를 넣었다. 누구나 알아줄 만한 대학은 아니었다. 공부를 게을리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그저 ‘대학은 다니는구나’ 하고 인식될 뿐인, 구색을 맞추기 위한 선택이었다.
다만 학과만큼은 내 의지로 골랐다. 전기전자공학. 이유는 단순했다. 어릴 적부터 품어온 질문 하나, ‘TV와 모니터는 대체 무슨 차이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Turbo C로 코드를 짜면서도 늘 궁금했다. 내가 만든 소프트웨어가 전자 기기 내부에서 어떻게 맥동하길래,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텍스트와 소리와 이미지로 치환되는 걸까. 컴퓨터공학이 아닌 전기전자공학을 선택한 건 그 보이지 않는 하드웨어의 심장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인기 학과였던 탓에,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학교에서조차 예비 번호로 겨우 문을 닫고 들어갔다. 그렇게 내 대학 생활이 시작됐다.
입학 후 마주한 첫 감정은 극심한 낯섦이었다. 남학생뿐이던 정적인 환경에 여학생들이 섞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기는 달라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전기전자공학과는 여전히 99.9%가 남학생이었고, 학생회 분위기는 군대처럼 강압적이었다. 수직적인 규율과 종종 행해지는 구타. 대학이라는 이름표만 달았을 뿐, 그곳은 내가 도망쳐 나온 중고등학교의 연장선이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학생회에 지원했다. 그것은 내 생애 가장 생경한 용기였다. 달라져 보고 싶다는 막연하지만 절실한 바람 하나로. 학생회의 일이란 대단한 게 없었다. 행사를 준비하고, 술을 마시고, 사람을 모으는 것. 그냥 노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란스러움이 나쁘지 않았다. 줄곧 혼자였던 내 곁에 동기와 선배들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거칠고 과격한 선배들 사이에서도 나는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사람들 속에 어울린다는 게 무엇인지, 나는 그때 처음 배웠다.
컴퓨터 동아리 문을 두드린 건 온전히 내 발로 걸어 들어간 첫 번째 선택이었다. 드라마 <카이스트>에 나오는 안경잡이 너드들이 모여 마이크로마우스를 만드는 풍경을 상상했다. 면접에서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컴퓨터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집요했던 내 눈빛이 선배들에게는 꽤나 쓸만한 신입생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동아리방 문을 열었을 때, 내 시선을 멈춰 세운 건 구석에 놓인 빅타워 서버 한 대였다. 낡은 책상과 어지러운 케이블 사이에서 그 기계만 유독 고고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저게 바로 서버구나.’ 어린 시절 SPC-1500을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잊고 있던 무한한 호기심이 다시 들끓었다.
졸업을 앞둔 선배가 학교에서 폐기하려던 서버를 가져와 리눅스를 설치했고, 이제 막 동아리 홈페이지가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대학교 LAN에 물린 리눅스 서버. 그 검은 화면 속에서 깜빡이는 커서는 다시 한번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막상 들어가 보니 너드들의 모임이 아니라 친목 동아리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 서버가 있었으니까. 결국 그 서버는 내 손에 왔다. HTML과 PHP로 동아리 사이트를 운영하고, 메일 서버와 FTP 서버를 열고, 리눅스 데몬을 관리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서버 관리자가 되었다.
그렇게 서버와 단둘이 남는 시간이 늘어갔다. 모두가 술자리로 떠난 정적 속에서, 빅타워 서버의 팬이 돌아가는 낮은 웅웅 거림만이 방 안을 채우곤 했다. 그 소리는 마치 기계의 깊은 숨소리 같았고, 나는 그 검은 화면 속 커서에서 세상과 연결된 비밀스러운 통로를 발견하곤 했다.
하지만 전기전자공학에 올 때 품었던 거창한 포부는 어느새 희미해지고 있었다. 전공 수업은 트랜지스터와 수식으로 가득 찬, 숲을 보지 못한 채 나무만 들여다봐야 하는 고단한 세계였다. 칠판을 가득 채운 복잡한 수식과 소자의 동작 원리는 내게 그저 죽어있는 기호들에 불과했다. 나는 흐르는 전기를 이해하고 싶었지, 종이 위에서 멈춰있는 숫자를 나열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대신 프로그래밍 수업만큼은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어느 날, 컴파일러 설치를 못 해 쩔쩔매던 교수님이 나를 불렀다. 몇 가지 설정을 만져 해결하자 교수님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동기들도 모르는 게 있으면 당연하게 나를 찾아왔다. 누구의 인정보다도, 내 논리가 맞았음을 증명할 때 오는 그 짜릿함. 그것이 나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주 낯설고 부드러운 중력이 내 세계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 중력의 진원은 같은 동아리의 회장이었던 여선배였다. 작은 키에 동그란 안경. 처음 봤을 때 꽤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든 내가 당혹스러웠다.
알고 보니 그녀는 C/C++을 능숙하게 다뤘다. 나만큼이나 컴퓨터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이야기할 때는 막히는 게 없었다. 컴퓨터 이야기, 만화 이야기. 밤새 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버 앞에 혼자 앉아있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사건은 강원도 MT에서 일어났다. 밤늦게 술기운을 빌려 바람을 쐬러 나갔을 때, 그녀가 뒤따라 나왔다. 취한 것 같다며 잠깐 걷자고 했다. 전신주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강가를 향해 걷던 중, 그녀가 내 옷자락을 살며시 잡았다. 보이지 않아서 잡아야겠다고 했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 옷자락 대신 그녀의 손을 잡아버렸다.
그녀의 손은 생각보다 작고 따뜻했다. 그녀는 손을 빼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이, 우리는 그렇게 어둠 속을 걸었다. 이윽고 강가 벤치에 앉아 건너편 관광지의 네온사인이 명멸하는 것을 바라봤다. 긴 침묵이 흘렀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만으로 충분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돌아가는 길에서 다시 숙소의 불빛이 보일 때쯤 그녀가 말했다.
“이제 손 놓아도 되겠어.”
다음 날 아침, 그녀는 평소와 똑같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쾌활한 선배의 모습 그대로. 하지만 내 세계는 이미 무너지고 재편되어 있었다. 세상은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나머지는 그저 흐릿한 배경일 뿐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좋은 선후배로 돌아갔다.
생활이 즐거워질수록 성적표는 처참해졌다. 1학년 1학기 3.5였던 학점은 2학기 2.8을 거쳐 2학년에는 2.4까지 곤두박질쳤다. 동아리 회장에 총학생회 일까지 맡으며 나는 전공 서적보다 사람들과의 술자리에 더 익숙해졌다. 전공과목들은 여전히 외계어처럼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는 무너지는 현실을 애써 외면했다. 부모님의 질책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나날들만큼은, 그렇게 지내는 것이 내게 허락된 유일한 행복이었다.
2학년을 마치고 그렇게 끌려가듯 군대에 갔다. 전기전자공학은 내 길이 아니라는 확신만 깊어진 채 군복을 입었다. 그 확신이 산산조각 난 건, 전역 후 마주한 어떤 운명적인 경험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