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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Jan 04. 2017

나의 작은 집

변한 것은 집이 아니라 나였다



나의 집은 인천 가좌동, 동암역에서도 마을버스를 타고 10여분을 가야 닿는 인천의 끝자락에 있었다. 나는 그 집에서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열 살 부터 대학 기숙사 생활을 하기 전인 스무 살 무렵까지 10여 년을 살았다. 처음 네 식구가 살던 집엔 오빠와 내가 떠나며 둘이 되었다가 이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엄마 혼자 살 집을 구해 이사하면서 다른 사람이 살게 되었다.  



25평 남짓한 작고 오래된 집엔 세 칸 방과 거실 주방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그 집에서 우리는 각자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학교를 가며 그렇게 속닥속닥 살았다. 어려서는 그 집이 작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네 식구가 살기에 적당하고 알맞은 크기라 느꼈다. 놀기 좋아하던 나는 친구들을 자주 불러 놀았다.



초등학생 땐 작은 방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인형놀이 소꿉놀이를 했고, 중학생이 되어선 거실에 부르스타(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꺼내어 놓고 달고나를 만들어 먹으며 놀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선 작은 방에 친구들과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놀았다. 대학을 가며 기숙사 생활을 하기 시작한 나는 점차 집을 찾는 횟수가 적어졌다. 처음엔 이 주에 한 번이던 것이 점차 한 달에 한 번 다시 세 달에 한 번이 되었다가 언젠가부터 서너 달에 한 번이 되어갔다.



시간이 지나 졸업을 하고 입사를 하며 네 식구가 살던 집과 같은 크기의 사택을 얻게 된 나는 세 칸 방과 거실 주방 그리고 화장실이 있는 집에 혼자 살게 되었다. 혼자 사는 집이었지만 처음으로 누려보는 완벽한 독립에 신이 나서 소파며 침대, 세탁기와 같은 살림살이들을 들이고 분주한 타지 생활을 이어나갔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동암역에 내려 마을버스에 몸을 싣고 빛바랜 우리 집을 찾았을 때였다.



10년도 넘게 살던 우리 집이 너무도 작게 느껴졌다. 4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은 음침했고 고장난 세면대를 떼어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양치를 하는 일은 번거로움을 넘어 궁상스럽게 느껴졌다. 나의 작은 방에 이불을 펴고 몸을 누이자 발가락 끝이 한쪽 벽에 닿을락 말락 했다. 작고 낡은 집이 지겹다며 어서 이사 가자고 투정하는 나의 입에 엄마는 분주하게 차려낸 밥상을 들고와 뜨끈한 국과 갈비찜을 밀어 넣었다.



이년 전 겨울, 엄마가 이사하던 날 많이 바뀌어 버린 주변에도 빛바랜 모습을 간직한 채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내던 나의 작은집을 마주했다. 키만 자라고 철이 없던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다. 엄마 도 작은집이 좋아 20여 년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음을. 작은집이었기에 우리가 밥을 먹고, 학교를 가고, 속닥속닥 함께 살 수 있었음을. 변해버린 것은 집이 아니라 나였다.



이상하게도 인천 서구 가좌동, 지하철 1호선 동암역에서도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있던 나의 작은 집이 가끔 그립다. 그곳에서 복닥 거리며 살던 우리의 모습이, 철없었던 내가,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펐던 그 풍경이 그렇다.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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