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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Jan 03. 2017

그녀의 이중생활

바리스타가 된 수상한 직장인



우리가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히 들른 회사 앞 까페 바오밥나무의 커피 장인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였다. 특별할 것 없는 골목 안 담담히 자리 잡은 까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밖에선 상상 할 수 없었던 사운드의 클래식 선율과 깊은 커피향 그리고 인자한 얼굴의 커피 도사 할아버지가 계셨다. 언제나 따뜻했던 할아버지의 담백한 인사처럼 할아버지의 드립으로 내린 커피는 무척이나 향기롭고 맛있었다. 처음으로 드립 커피에 맛을 들인 우리는 피곤한 퇴근길 까페에 들러 커피를 찾는 일이 잦아졌고 자연스럽게 할아버지께 어깨너머 드립을 배우게 되었다.




호기심 대장인 우리 두 사람에게 할아버지는 언제나 변함없는 친절함으로 드립 레슨을 해주셨다. 할아버지가 서울대 출강까지 나가시는 커피 장인임을 알게 된 것은 후에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때마침 당시 한창 유행하던 소셜커머스에서 바리스타 학원비 반값 딜을 발견한 우린 연고도 없던 구의역 작은 학원의 수강생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우연의 일치라 하기엔 모든 것이 절묘한 타이밍에 이루어졌다. 그렇게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우리는 커피와 사랑에 빠졌다.




교대역에 위치한 까페 바오밥나무 전경
커피장인 할아버지의 뒷모습




일주일에 두 번씩 퇴근 후 30분에 걸쳐 두 시간에 걸친 강의를 듣고 다시 1시간에 걸쳐 반대편의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힘들지 않았다. 마침내 한 달 반에 걸친 수강이 끝나고 몇 주 뒤로 일정이 잡혀있는 바리스타 시험에 떨리는 마음으로 응시했다. 만만하게 봤던 시험이었는데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어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는 떨어질 수도 있겠단 생각에 좀 더 열심히 준비할걸 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다행히도 커트라인을 넘긴 아슬아슬한 점수로 바로 실기시험에 응할 수 있었다.




바리스타 시험에선 반드시 해야 하는 멘트 나의 소개와 시험에 응시하게 된 계기 그리고 내가 내린 커피에 대한 간략한 소개, 이 오글거리는 멘트를 해야 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막상 시험 당일이 되니 그 간단한 멘트마저도 긴장감에 두 주먹 불끈 쥐고 하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멘트와 함께 몇 잔의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를 내리고 심사위원의 커핑테스트까지 마친 후 시험을 끝내고 얼마 뒤  짧은듯 길었던 여름의 끝 우린 부부 바리스타가 되었다.

 

                                           


매튜의 실기시험 현장
실기 테스트로 내린 두 잔의 카푸치노




그렇게 바리스타가 된 우린 자격증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똘끼를 십분발휘, 배운 것을 몸소 익혀 내 것으로 만들자는 취지에 서 까페에 취업하여 투잡족이 되어보기로 했다. 평일에는 빨라도 7-8시에 퇴근, 퇴근 후엔 녹초가 되어 알바를 하기 힘들 것이므로 주말에만 알바를 하되 집에서 10분 거리 서빙이 아닌 직접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조건으로 까페를 찾았고 다행히 알아본 지 일주일 만에 둘 다 집에서 10분 거리의 주말 까페 알바를 구할 수 있었다.



매튜는 토일 AM 10:00 - PM 11:00, 나는 토일 AM 10:00-PM 10:00 시급은 4,800원 둘 다 사장님을 대신해 오픈부터 마감까지 마무리를 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욕심을 내었다가 사장님께 피해를 드려선 안되었기에 8월부터 11월까지 4달간 근무를 하는 것으로 약속을 드렸다. 부득이 매튜는 갑작스러운 미국 출장으로 세 달간 국내를 떠나 있어야 했기에 알바를 시작한 지 2주 만에 일을 그만두어야 했지만 매튜가 없는 한국에서 나는 열심히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는 일을 계속해 나갔다.




회사 일은 회사일대로 하며 누구에게도 투잡의 고충을 토로하지 못한 채 평일이면 평일대로, 주말이면 주말대로 달리는 생활이 이어졌다. 육체적으로는 다소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기한이 정해진 투잡이었기에 즐겁게 임할 수 있었다. 후에 아기자기한 작은 까페를 내는 것 또한 함께 꿈꾸었던 일 중 하나였으므로 미리 경험해볼 수 있다는 면에서 유익하다고 느꼈다. 주말마다 놀러 다니질 않으니 소비가 줄었고 얼마 안 되는 알바비였지만 추가 수입과 더불어 줄어든 지출로 세 달간 상당한 빚을 상환하는 기적도 경험할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하던 까페의 커피머신


점심은 늘 까페에서 만든 샌드위치와 쥬스 또는 커피로 했다. 주말 까페 일은 쉼 없이 손을 쓰고 몸을 움직여야 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평일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더 충전이 된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여름에 시작한 까페일은 사장님의 부탁으로 12월 초 추가 근무까지 마친 뒤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야 네 달 반에 걸친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특별했다. 카페 일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평일과 주말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지 않았다면 매튜가 없는 한국에 홀로 남은 일이 외로웠을 것이다.




까페 일을 하며 바쁜 일상을 보냈기에 네 달의 시간이 짧다고 느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두 번 바뀌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즐거운 기억이었다. 장마철이면 까페의 유리문 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찰나의 사진처럼 설레는 순간을 찰칵 기억 속에 찍어두었다. 선선함을 넘어 약간 쌀쌀해지려는 늦가을 달달한 라떼 한잔을 내려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까페 가득 울리게 듣고 있노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을 만큼 행복하기도 했다. 회사와 커피학원 그리고 집을 오가며 실컷 커피 향기를 맡고 그저 바람에 머물 수 있었던 작은 꿈 하나를 이루었던 시간, 그 해 여름, 나는 작은 까페의 바리스타였다.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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