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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Jan 02. 2017

캔들이야기

나에게도 켜고싶은 캔들이 생겼다



블로그를 하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 이야기 속에서 여전히 세상을 배운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감탄하며 자극받고 위로받으며 무명의 세계를 향유한다. 작년 매튜의 생일 선물로 캘리그라피를 주문하며 알게 된 마미공방도 그런 인연 중 한 곳이었다. 성북동에 위치한 공방을 직접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뛰어난 손재주로 캔들을 만들고 뜨개질을 하는 그녀의 예쁜 재주가 부러워 동경하는 마음 이만큼 담아 이따금 올라오는 소식들을 눈여겨보던 중 오랜만에 올라온 그녀의 글을 읽었다.



여행을 갈 때마다 직접 만든 캔들을 챙겨가 그때 그때 기분에 맞는 향을 즐긴다는 그녀. 그녀의 사진 한 장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여행을 가서 익숙했던 향초를 펴두고 맥주 한 캔과 함께 즐기는 도쿄의 밤이라니. 술과 캔들 그리고 이야기가 어우러진 그런 밤. 순간 나는 그녀가 너무 부러워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캔들을 주문하고 말았다. 평소 향초를 그리 즐겨 켜지도 않는 나이지만 캔들과 맥주가 어우러진 TOYKO의 밤. 이 사진 한 장을 보는 순간 홀린 듯 캔들을 주문해 버린 것이다.



http://gukwa.blog.me/220815873465 



실은 매일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서야 자정이 다 되어 잠이 드는 슈퍼베이비 덕분에 캔들을 사더라도 내게 향초를 켤 잠깐의 시간이 주어지기나 할까 싶었지만 그 순간 아무 계산 없이 캔들을 주문하고 싶었다. 그리고 곧 떠날 오사카에서 그녀처럼 월화수목금토일의 향 중 가장 좋았던 향을 켜 두고 맥주 한 캔을 마시며 그 날 걸었던 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상을 했다.



캔들이 도착하고 나서도 하루가 지난 뒤에야 처음 켜 볼 수 있었던 토요일의 캔들. 오사카로 떠나기 전까지 모든 요일의 향을 탐닉하고 가장 좋아하는 향 하나를 정해 틴케이스에 담아 가야지 생각하며 나는 또 잠시 행복했다. 캔들 하나에 너무도 설레어하는 나를 보며 우리팀 막내는 주말 백화점 나들이를 갔다가 내 생각이 났다며 부엉이 캔들 홀더를 선물해 주었다.



생일도 기념일도 아무 날도 아니었던 월요일 아침. 후배가 주는 선물에 마음이 말랑말랑 따뜻했던 한 주. 결국 오사카 여행을 가서도 왈가닥 딸내미가 다다미방의 낮은 탁자 위에 올려둔 캔들을 떨어뜨릴까봐 아주 잠시 불을 붙이곤 이내 가방 속에 쏙 숨겨 두어야 했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반짝이는 캔들을 잠시 켰다는 사실 자체에 나는 설레었다.



반짝반짝 예쁜 불빛과 익숙한 향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여유. 세 번째 캔들을 언제 켜게 될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밤이지만 괜찮다. 조금씩 천천히 시간을 내어보자 생각한다. 내게도 켜고 싶은 캔들이 생겼다. 그것은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바라만 보아도 언젠가는 켤 수 있는 캔들 하나가 있다는 기대감으로 행복해지는 마법. 어쩌면 내가 갖고 싶었던 건 캔들이 아니라 그녀의 여유였을지도.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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