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 생활자의 일상 : 꿈꾸던 일상 속에서
2주 간의 서부 로드 트립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이의 학교 등록을 위해 교육구를 찾았다. 한국에서부터 아이의 학군을 고려해 거주할 동네와 집을 선택했기에 어쩌면 가장 많은 공을 들였던 학교 배정이 확정되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미국도 한국처럼 공립학교의 경우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배정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1순위 배정 학교의 인원이 만석일 경우 인근의 다른 학교로 배정되는 경우도 있었기에 별다른 문제없이 1순위 희망학교로 배정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만일을 대비해 인근 학교까지 모두 평점이 높은 동네로 집을 구하고 이곳 팔로스 버디스로 우리의 거주지를 정했지만 해당 학교의 상황에 따라 자칫하면 매일 다녀야 하는 통학거리가 늘어날 수도 있었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교육구를 찾았다. 우리가 교육구에 방문 한 날은 긴 겨울 방학이 끝나고 첫 등교가 시작된 날이어서 교육구에는 우리 외에도 학교 등록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이들이 꽤 많았다. 다행히 우리는 오전 8:55 미팅을 예약해 두어 특별히 서류상의 이상만 없다면 우선 배치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서류가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이었다. 학교 등록을 위해서는 여권, 유틸리티빌(집주소와 부모의 명의가 적힌 인터넷 또는 전기세 고지서), 교육구 온라인 등록서류, 거주하고 있는 집의 계약서가 필요했는데 교육구를 방문했던 날은 우리가 미국에 온 지 15일째 되는 날이어서 아직 한 달이 채 안 된 시점이었기에 전기세 고지서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인터넷은 미국 입국 바로 다음 날 개통해 고지서는 받은 상태였지만 문제는 COX라는 인터넷 회사에서 보내온 고지서에 남편의 성(Last Name) 이 Cho가 아닌 Chin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만일 교육구에서 이 부분을 문제 삼는다면 유틸리티빌 서류가 준비되지 못했다는 사유로 재방문을 요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여행에서 돌아온 당일 모바일 앱의 온라인 채팅 기능을 이용해 COX 측에 고지서 재발급 요청을 해둔 상태였다. COX 측에선 Last Name 수정을 위해선 사내 다른 부서로 FAX를 보내 접수해야 한다는 답변과 함께 즉시 수정 가능한 상황이 아님을 안내해왔다.
드디어 순서가 되었고, 우리의 서류가 문제 되지 않기를 바라며 준비해온 서류로 접수를 했다. 유틸리티 빌은 아니었지만 혹시 몰라 추가로 준비해둔 Bank of America 우편물도 함께 제출한 터였다. 다행히 교육구 직원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고 모든 서류를 정상 접수해주었다. 아이는 우리가 한국에서부터 미리 알아보았던 1순위 배정 학교로 정상 등록되었다. 학년의 경우 한국에서는 2학년 2학기까지 마치고 왔기에 3학년으로 올라갈 차례였지만 미국 학교에서는 생년월일에 의거해 미국 학교의 2nd Grade로 배정받았다. 3일 뒤인 목요일부터 정상 등교하라는 안내와 함께 축하합니다 라는 말을 들은 뒤에야 긴장을 풀고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Palos Verdes에 위치한 초등학교 학생이 되었다. 배정받은 학교는 인근 학교 중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로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교육구 방문을 마치고 차로 아이의 학교 앞을 가보았다. 예쁘게 꾸민 하우스들이 즐비한 한적한 동네에 초록 잔디와 넓은 운동장을 가진 학교가 있었다. 구글 위성사진을 통해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보았던 풍경이지만 직접 와서 보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이제 이곳으로 매일 아이를 데려다주고 또 데리러 올 생각을 하며 간이 주차는 어디다 해야 할까 살펴보고 학교 주변을 걸어보기도 하다 집으로 왔다.
드디어 아이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날, 학교에 도착해 초입에 위치한 사무실로 들어섰다. “오늘 처음 왔어요. 2nd Grade, Bailey 에요!" 하고 말씀드리니 관리실 선생님께서 환한 미소로 환영한다고 인사해 주셨다. 잠시 후 선생님께서는 정문으로 들어서는 한 남자아이에게 “너도 2nd Grade 지? 오늘 처음 온 친구 Bailey 야. 교실로 같이 가주렴.” 하고 부탁을 하신다. 아이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딸아이와 함께 멀어져 갔다. 한국에서 기본적인 말하기와 듣기는 할 수 있도록 영어에 꾸준히 노출을 시켜 주긴 했지만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을지, 미국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친구는 잘 사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안쓰럽고 걱정되는 마음에 아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다시 차로 돌아가려는 찰나 아이의 담임선생님께서 다가오셔서 인사를 하신다. 첫날 어떨지 몰라 도시락을 싸서 보내긴 했지만 이번 학기에는 학교에서 무상급식이 제공된다고 하시며 도시락을 싸와도 되고, 제공되는 급식을 먹어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은 없는지 여쭤보니 학교에서 수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어 준비물은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 주셔서 마음에 짐도 덜 수 있었다. 밝은 미소로 인사해 주시는 선생님을 뵙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드린 후 왔던 길을 따라 다시 집으로 왔다.
아이가 첫 등교를 한 날, 어느 때보다 오전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월요일은 평소보다 수업이 한 시간 일찍 끝나는 날이라 오후 1시 30분 하교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니 다행히 아이가 밝은 표정으로 뛰어나온다. “서연아 학교 첫날 어땠어?” 하고 물으니, “재미있었어. 친구 5명 사귀었어. 새로 사귄 친구 중에 얼굴이 하얀 아이도 있고, 까만 아이도 있어. 다 착해.” 하고 대답해준다. 너무나 다행이었다. 낯설고 긴장됐을 텐데 씩씩하게 친구들도 잘 사귀고 온 아이가 대견해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