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 생활자의 일상 : 꿈꾸던 일상 속에서
아이의 학교 등록을 마친 이틀 후엔 나의 Adult School 반배정 테스트가 예정되어 있었다. Adult School 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으로 미국에 온 외국인들이 현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무료로 영어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Adult School 은 미국 전역에 존재했고 나는 팔로스 버디스에서 가장 가까운 Torrance Adult School에서 진행되는 무료 ESL(제2언어로서의 영어,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수업을 듣기 위해 미리 한국에서 온라인 등록을 해둔 터였다. 나의 Adult School 테스트를 위해 온 가족이 함께 Torrance로 향했다. 시험을 보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어 남편과 아이 그리고 개들은 주변 잔디밭과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기로 했다.
시험 장소로 들어가 먼저 신청서를 작성한 후 간단한 문답이 이루어졌다. 미국에 왜 왔는지, 영어공부를 왜 하고자 하는지, 일주일에 영어를 얼마나 사용하는지, 영어공부할 때 느끼는 어려움엔 무엇이 있는지 등의 질문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완료하고 나니 인터뷰를 해주신 선생님께서 컴퓨터가 배치된 교실로 안내를 해주셨다. 이곳에서 컴퓨터로 토익 RC와 비슷한 형태의 리딩 문제를 풀었다. 시간을 다 채우고자 하면 1시간 가까이 걸릴 만큼 많은 문제였다. 긴장된 마음에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집중하려 노력하며 끝까지 문제를 풀었다. 문제를 다 풀자 화면에 점수가 바로 표시되었고 이에 따라 반 배정하는 선생님과 어떤 과목을 수강할지 정하면 모든 등록 과정이 끝나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Adult School 에는 레벨 1부터 레벨 6까지 등급이 있는데 나는 레벨 5를 받았다며 레벨 5에 권장하는 수업들을 소개해 주셨다. 수업은 오전/오후/저녁 등 다양한 시간대에 준비되어 있었고 희망하는 시간과 요일에 따라 수업을 선택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모두 온라인 수업이었다.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정상화되진 않은 상황이었기에 대부분의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혹시 온라인이 아닌 대면 수업은 없나요? 저는 영어 실력을 늘리고 싶어 이곳에 왔고 온라인보다는 대면 수업을 듣고 싶어요.” 하고 말씀드리니 “대면으로 진행되는 수업이 하나 있긴 한데 이건 레벨 6고 여기가 아닌 Washington Ave에서 진행되는 수업이야. 가만 보자, 집이 Palos Verdes 면 Washington Ave가 조금 더 가깝겠다. 이 수업은 할머니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수업이고 말씀도 천천히 하시는 편이니까 네가 들어도 괜찮을 것 같아. “ 하시며 다행히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온라인 수업이 아닌 대면 수업으로 진행되는 레벨 6 수업으로 최종 배정을 받게 되었다. 다음날부터 바로 수업에 참여하면 된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나는 아이와 같은 날 미국에서 첫 등교를 하게 됐다. 나의 Adult School 수업이 진행되는 Washington Ave의 Griffith Adult Center는 우리 집에서 차로 25분 거리에 있었다. 미국에 온 초기 나는 운전이 익숙하지 않을 때라 얼마간은 남편이 학교까지 동행을 해주기로 했다. 아이를 먼저 학교에 데려다주고 25분을 더 달려 Adult School에 도착했다. 교실로 들어서니 안경을 낀 할머니 선생님 캐서린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교실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아시아인 학생도 여럿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학생이 되어 책상에 앉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낯설고 생소한 기분이 싫지 않았다. 나는 나의 일상에 새롭게 들어온 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2시간 정도 수업 후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처음 교실에 들어왔을 때 아시아인으로 보였던 분들 대부분은 한국인 어머니들이셨고 모두 수준급 이상의 영어실력을 갖고 계셨다. 이 분들도 집에서부터 차를 몰아 아침 8시 30분에 시작되는 수업을 듣기 위해 이곳에 오셨겠구나 생각하니 왠지 모를 동지애가 느껴졌다. 같이 수업을 듣는 한국인 학생 중에는 남편이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이곳에 머물게 된 분도 계셨고, 젊었을 적 미국에 와 사업체를 일구고 영주권을 따 아이들을 모두 키운 뒤에 계속해서 공부를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저마다 다른 시간을 걸어왔지만 모두 이곳에 공부를 하러 온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노력하고 정진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Adult School에서의 수업은 때론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갈 때도 있어 ‘이대로 수업을 유지하는 것이 맞을까, 영어공부를 위한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난 한국 어머니들의 노력하는 모습은 끊임없이 나를 반성하게 했으며 매일 그곳으로 나를 걸음 하게 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Adult School에 다니기 시작한 지 3주쯤 지난 후부터 나는 혼자 운전을 해서 학교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매일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전 8:30부터 12:00까지 영어 수업을 듣는 일상을 이어갔다.
Adult School을 4개월 정도 다닌 후 아이의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우리 가족도 멕시코와 캐나다, 미국 내 다른 도시들로 여행을 다니게 되었고, 다시 개학을 한 가을부터는 오가는 시간과 투입되는 시간 대비 영어 학습으로서는 효과가 크지 않다고 생각되어 더 이상의 추가 등록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덜트 스쿨로 매일 공부하러 가던 시간은 한국에서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멈추고 낯선 곳으로 온 내게 학생이라는 소속감을 준 동시에 낯선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적응하고 있을 딸아이와 동질감을 가지며 서로를 더 이해하고 응원하게 만들어 준 시간이기도 했다. 어덜트 스쿨에서의 수업이 나의 영어 실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공부하는 루틴 속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영어 학습법일지 고민하며 나의 영어 수준이 어디쯤 와 있는지 객관적으로 체크할 수 있게 해주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