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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Sep 26. 2022

생각의 전환 (feat. 루저 배틀)

Part3. 생활자의 일상 : 꿈꾸던 일상 속에서



돌이켜 보면 미국에 온 후 처음 한 달은 우리 부부에게 참 힘든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미리 계약하고 온 집과 선택한 동네는 더없이 마음에 들었고, 차량 및 생활을 위한 전반의 셋팅 역시 문제없이 진행되었으며, 아이도 학교에 잘 적응해가고 있었기에 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이 무탈한 듯 보였다. 그러나 사실 남편과 나는 모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스트레스의 가장 큰 요인은 언어였다. 남편은 영어로 듣고, 말하는 것에 문제가 없을 만큼 영어 실력이 좋은 편이었고, 나도 특유의 뻔뻔함으로 부족한 언어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의 소통은 할 수 있었지만 여행이 아닌 일상에서 행정처리가 필요한 모든 과정을 영어로 해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도전이었다.


 

일례로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첫 수업을 하던 날, 집에 돌아온 남편은 나라 잃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강 신청한 모든 과목에서 유일한 한국인 학생이었던 남편은 숨도 쉬지 않고 말하는 듯한 네이티브들 사이에서 정신이 혼미 해졌다고 했다.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은 수업 참여도를 매우 중요시하는데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네이티브들의 말을 따라가기도 힘든 상황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한 채 수업이 끝나버리니 앞으로 이 과정을 잘 마칠 수 있을지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미국에 오기  앞서 유학생활을 경험했던 어느 팀장님께서 현지에 가면 상상했던 캠퍼스 라이프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토론할  끼어드는  자체가 어려울  아니라 실제로 국제 학생을  끼워주지도 않는 분위기이기에 초반 충격과 상실감이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다는데 직접 경험한 수업 분위기는 상상했던  이상이었다고 했다. 조언을 해주셨던 팀장님은 서울대 출신에 언어학을 전공한 분이셨는데도 불구하고 발표할  수십 가지 질문과 답변을 준비해 들어가도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올 때면 매번 당황해 준비한 내용의 10분의 1  선보이지 못한  돌아온 적이 허다했다고 했다. 경험담에서 해주신 조언에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나름 자신감을 갖고 있던 남편은  수업에서 모든 것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며 앞으로의 수업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나는 나대로 남편이 학교에 가고 나면 일찍 하교한 아이를 데리고 코딩 학원으로, 축구교실로 라이딩을 해야 했는데 10여년  한국의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경험한 뒤로 운전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내게는 길도 익숙하지 않은 미국에서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상황 자체가 공포였다. 운전대만 잡으면 식은땀이 나고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정착 초반 심심해하는 아이를 위해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방과  놀이터로, 수영장으로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로 또래 친구들을 찾아다니곤 했는데 또래 친구들의 엄마나 아빠를 만날 때마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만남의 아이스 브레이킹 과정이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완전하지 않은 나의 언어가 이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하는 생각에 대화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면 머리를 쥐어싸고 실수를 곱씹을 때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학교나 학원에서의 행정적인 문제로 잦은 소통을 요하는 많은 상황들이었다. 혹시나 내가  알아듣지 못해 놓치거나, 나의 필요를  전달하지 못해 불이익이 생길까   순간 극도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해야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괴리감을 느끼는 순간이 많았고 자존감은 점점 낮아져 갔다.  


 

어떤 하루는 ‘우리 무탈하게 잘하고 있어’ 싶다가도 어떤 하루는 잠들기 직전까지 이불 킥을 하며 루저 배틀을 하기에 바빴다. 미국에서 운전면허를 따는 것도, 학교를 다니는 것도, 하다못해 아이의 학원 등록, 공과금 납부 등 생활을 위해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이 처음이다 보니 마치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그토록 꿈꾸었던 해외에서의 일년살이 였는데 현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고단하고 어려웠다. 여행이 아닌 삶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맞닥뜨려야 할 많은 숙제들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그런 숙제 같았던 시간들이 더 이상 이것이 여행이 아니라는 걸 일깨워줬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은 하루들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는 사이 우리도 현실 적응을 위한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해갔다. 남편은 랩을 하듯 빠르게 말하는 원어민들 사이에서 교수님께 한 번이라도 질문을 하기 위해 한창 토론이 진행되는 타이밍이 아닌 수업 초반 먼저 손을 들고 말하는 방식으로 발언권의 기회를 얻어내는 전략을 취하기 시작했고, 나도 아이의 친구 부모들을 만나기 전 해야 할 이야기를 미리 생각하거나 연습해 두었다가 자연스럽게 이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스몰 토크의 두려움을 지워갔다. 매일 다니는 길이 익숙해질수록 운전대를 잡는 것도 익숙해져 갔고 한 달쯤 지나자 음악을 들으며 경치를 즐길 수도 있을 만큼 운전에도 여유가 생겼다. 초반 과도하게 몰렸던 행정처리도 차츰 정리가 되어갔고 이따금 아이의 학교나 아파트 관리 사무실에서 전화가 걸려오더라도 처음처럼 당황하지는 않게 되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스럽게만 느껴지던 상황들이 조금씩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힘들게만 느껴지던 일상의 많은 순간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림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낯설기만 하던 이웃들이 정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날씨가 따뜻하게 느껴졌고, 두렵다는 마음보단 잘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커져갔다. 그렇다고 미국에 온지 한 달 만에 우리의 영어실력이 드라마틱하게 향상되었다거나,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지만 단지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바뀌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힘들었던 까닭은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우리의 상황을 받아들이자 모든 것이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입장을 바꿔 한국에 온 외국인이 한국말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에게 완벽한 한국어를 기대하진 않을 것이었다. 우리가 외국인이고 이방인인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영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LA에는 너무도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은 우리의 서툰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리도 없었다.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되, 실수했다고 자책하지 말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생활한지 두 달쯤 되자 모든 것이 축복처럼 느껴졌다. 나를 괴롭히는 적은 내 마음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단순하고 위대한 진리를 낯선 땅에 와서 깨달아가는 우리였다.  



그렇게 루저 배틀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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