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 생활자의 일상 : 꿈꾸던 일상 속에서
미국에 온 지 2주째 되던 날 남편이 운동을 시작하자고 했다. 한국에서 매일 출근을 하고 바쁜 일상을 이어가던 시절에도 운동을 빼먹지 않았던 남편이었기에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남편은 지독한 운동광이었다. 열심히 운동하는 것에 비해 조각 같이 훌륭한 몸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그는 운동 자체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겼다. 그는 미국 입국 후 2주 동안 생활을 위한 셋팅과 서부 로드 트립을 다녀오느라 멈추었던 운동을 위해 이미 모든 검색을 끝낸 후였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한 주가 시작되던 월요일 우리는 남편이 미리 검색해 두었다는 헬스장 2-3군데를 함께 둘러보기로 했다.
방문했던 헬스장 모두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지만 남편은 그중에서도 Equinox라는 시설을 마음에 들어 했어 했다. 그곳에는 요가, 수영, 사이클, GX, 헬스를 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고 시간마다 다양한 수업이 운영되고 있어서 자유롭게 원하는 클래스를 예약해 수강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에서부터 미리 검색을 해보았기에 인지하고 있던 곳이기도 했는데 직접 답사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시설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샤워실의 세안 제품과 로션까지 모두 키엘 제품으로 갖추고 사우나와 샤워시설까지 완비하고 있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이곳은 미국 전역에 다양한 지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미국 내 최고의 Fitness로 투표된 적도 있을 만큼 평이 좋은 곳이었다. 예상대로 남편은 여기서 함께 운동을 시작하자고 했다. 하지만 다달이 납부해야 하는 멤버십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한화로 1인당 20만원이 넘는 금액을 두 사람이 함께 등록하면 매월 약 50만원 가까이 되는 금액을 운동을 위한 고정비로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고정 수입도 없는 상황에서 너무 큰 사치를 하는 것만 같아 망설여졌다.
언제나 경험에 투자하고, 성장을 위한 일에는 돈을 아끼지 말자던 우리였지만 회사를 휴직하고 제한적 백수가 되고 나니 현실적인 여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3일간 무료 체험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기에 해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매트를 펴고 요가를 하니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긴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는 것 같았다. 천천히 들이마셨다 내쉬어 보는 숨. 낯선 환경 속 잔뜩 긴장했던 어깨에 힘을 빼고 내 몸 구석구석을 살피니 그야말로 살 것 같았다. 요가를 마치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니 긴장했던 몸이 풀려 뭐든 잘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마저 들었다.
결국 우리는 3일간의 체험을 끝내고 정식 회원으로 등록을 하기로 했다. 백수들이 이렇게 사치를 부려도 되나 싶었지만 비싼 돈을 내고 등록한 만큼 열심히 운동해서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생활해보자고 서로를 독려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요가하는 여자가 됐다. 헬스장에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한 후 우리는 일주일에 6일 이상 매일 운동하는 패턴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주일에 3번 정도는 요가를 했지만 퇴근하고 나면 지칠 대로 지쳐 힐링 요가만 찾아 하곤 했었는데 미국에 온 뒤론 강도 높은 GX와 다양한 클래스를 매일 하다 보니 어느 때보다 건강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한국에서 아무리 시도해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동작이 한 번에 되는 신기한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한국에 있을 때 다니던 요가원의 선생님께 10년을 넘게 요가를 해도 안 되는 동작은 되지 않는다며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는데 “퇴사하면 다 돼요!” 하고 웃으며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 말씀처럼 긴장을 내려놓고 내게 집중하자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동작이 너무나 쉽게 되는 것이었다. 출근으로 굳었던 나의 어깨가 문제였던 것일까 아니면 긴장했던 마음이 문제였던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미국에 온 뒤 매일 요가를 하며 나는 날마다 더 건강해져 갔다.
그토록 바라던 해외 1년 살이였지만 누가 등 떠밀어서도 아니고, 온전한 우리의 선택으로 찾아온 타지에서 낯선 언어와 시스템에 헤매다 자책하게 되던 많은 날에도 우리는 언제나 헬스장으로 갔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난 뒤 곧바로 헬스장으로 가서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어느새 우리의 일상 루틴이 되어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 일정하게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이 작은 루틴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상에 많은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야말로 백수들의 소확행이었다.
작진 않지만 '소중하고 확실한 행복'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 같은 우리의 운동 루틴은 그렇게 우리의 미국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됐다. 이따금 끝을 모르고 치솟는 물가에 벌이 없이 지출만 하는 백수의 삶이 괴로워 괴리감을 느낄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 소확행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었다. 결국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말하던 미국행도 우리 가족만의 다정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내 몸을 돌보고, 건강한 컨디션으로 이곳에서의 삶을 잘 살아내는 일, 그것이 우리가 여기서 해야 할 유일한 임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