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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Jan 17. 2017

처음이라서

어른들의 세계에 어른이 없는 이유



"직장생활 10년쯤 되면 당황스러울 일이 없을 줄 알았어요. 입사했을 때 한참 선배였던 과장님 차장님들 보면 뭐든지 잘하는 것 같고 모르는 게 없는 것 같고 그랬는데 10년 차가 되니 여전히 모르는 일 투성이에 당황스러운 일 뿐이고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에요 뭐 이래요?"



여느 때와 같이 출근했던 평범한 아침 탕비실에서 마주친 동료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내가 뱉을 수 있는 말은 다섯 글자의 공감뿐이었다. "저도 그래요." 우리는 정말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런 성장도 없는 채로 그저 제자리걸음 만으로 쌓아온 시간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가며 매일을 평가받아야 하는 조직 생활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생각해보면 매일이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초등학생 땐 중학생이 되면 모든 게 달라질 것 같았다. 중학생 땐 고등학생이 되면, 고등학생 땐 대학생이 되면 모든 것들이 자리를 잡고 안정이 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거꾸로 흘러가는 듯했다. 이제 한 계단 올라왔다고 생각하면 더 어려운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 아침 일어나 등교하는 시간은 점점 빨라졌고 자꾸만 해야 하는 숙제의 양도 늘어갔다. 그마저도 대학생이 되어 수업 스케줄을 자유롭게 조율할 수 있는 때가 되었을 땐 이제 완전한 경제적 독립으로 다음 학기 등록금을 걱정해야 하는 생활 전선이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어느새 나는 서른을 훌쩍 넘겨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됐다. 한 때는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한껏 우쭐했던 때가 있었다. 잉크도 마르지 않은 주민등록증을 받아 들고 은행에 가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을 처음 만들었을 때, 부모님의 도움 없이 처음으로 집을 계약했을 때, 아이를 낳고 엄마란 이름으로 불리어졌을 때 새로운 경험의 순간마다 나는 어른들의 세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대단한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 이름으로 된 통장이 생겼다는 것은 치열한 생계활동이 수반되어야 함을 의미했고 내 집이 생겼다는 것은 다달이 내야 할 이자가 늘어나는 일임을 알게 됐다. 엄마가 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부족한 내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임을 받아들이고 전에 없던 부담과 책임을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모든 순간에 서툴렀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 점차 나름의 적응을 하고 익숙해지는 듯했지만 여전히 실수를 했고 여전히 두려웠다. 왜 나는 여전히 모든 것이 이토록 어렵기만 할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것 같은데 나만 넘어지고 깨지고 절뚝거리며 먼 길을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런 내게 동료가 말했던 것이다. "왜 저는 익숙해지지 않는 거죠?"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순간 얼마 전 수족구에 걸린 아이를 돌봐주러 온 친정엄마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엄마 장난감 밟아서 피가 났으면 알아서 판단하고 병원을 데려가던지, 연고를 발라주던지 하면 되지 무슨 일하는 사람한테 하루 종일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해 엄마가 더 잘 알잖아 애 처음 키워?" "니 아이니까 그렇지 그리고 엄마도 할머니는 처음이잖아!"



그랬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 처음이었다.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를 먹고 어른의 모습으로 서 있었지만 모두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할머니가 처음이고 나는 엄마가 처음이고 팀장은 팀장이 처음이고 신입사원은 사회생활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렇게 서툴고 낯설고 두려웠던 것이다.



그제야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세계에 어른이 없는 이유. 그것은 모두가 처음 어른이 된 이유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곧 맞이할 서른네 번째 봄을 생각했다. 계절은 숱하게 지나갔지만 내게 올 처음의 서른네 번째 봄. '올해도 쉽지 않겠지... 그럼 뭐 어떤가. 모두가 처음인 것을' 그러니 서로가 서로에게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져도 되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나니 어쩐지 오후에는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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