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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Jan 15. 2017

직장인의 일요일 밤

출근하기 싫은 직장인의 일에 대한 단상




직장인의 주말은 언제나 빛의 속도로 지나간다. 일요일 오후 시계가 4시를 가리키면 꿀 같은 주말이 끝나가고 있음을 인지한다. 현실 자각과 함께 이를 부정하고 싶은 이성의 마찰로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아무 이유도 없이 짜증이 나고 모든 의욕이 소멸하기 시작 한다.



주말의 마지막 저녁밥을 먹고 나면 모든 것을 체념하고 조금은 담담해진 마음으로 월요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내일 입을 옷가지를 꺼내어 두고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해 두고 나면 이제 정말 월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직장인의 주말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가. 반복된 생체리듬으로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같은 시간 눈을 뜰만큼 훈련되어 버린 지 오래지만 그래도 다음날 알람을 맞추지 않은 채  잠들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던 주말이 이제 정말 끝나버렸다.



이제 정신없는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내가 시간을 쫓고 있는지 시간이 나를 쫓고 있는지 모를 그런 하루들의 연속. 평일은 원래 그런 거니까 싶다가도 분주한 일상이 차지하는 포션이 너무도 크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내 금방 씁쓸해진다.



담담한 척하려 해도 다시 시작될 한주에 우울해져 버리는 일요일 밤 결국 생각은 일의 의미에까지 미치고 만다. 왜 나는 월요일이 반갑지 않은가. 나는 언제부터 월화수목금 평일을 죽은 시간이라 생각하게 되었나. 어째서 나의 일은 나의 자아실현과 맞닿아 있지 않은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일의 의미에 대해 처음 진지하게 고민을 했던 것은 일 년의 육아휴직 후 다시 회사로 복귀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결혼하기 전엔 말할 것도 없이 일이 가장 중요했다. 더 잘하고 싶었고 더 많이 알고 싶어 주말에도 일을 가지고와 공부하고 준비할 만큼 욕심이 많던 시기였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가정이 생긴 후 나는 일과 나 자신에게 한결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일보다 더 중요한 가정이 인생에 우선순위를 차지한 후 일에 대한 집착과 욕심이 줄었고 이는 오히려 일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윤활제 역할로 일과 삶에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변곡점은 출산이었다.



입사하고 5년 차 되던 해 아이를 갖고 처음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으니 잠시 쉬어가기에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복직을 앞두자 많은 것들이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직 걸음마도 하지 못하는 아이를 두고 사회로 나가야 할 만큼 일이 중요한가 나에게 있어서 일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 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복직을 앞두고 나는 일의 의미에 대해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일을 좋아하는가?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왜 나는 일을 해야 하는가? 등등 내가 일을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스스로 찾고 거기서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아주 작은 의미에서라도 그것을 찾지 않으면 아직은 엄마가 필요한 어린아이에게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해야만 하는 것에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끔은 문화센터나 다니며 남편 출근시키고 여유롭게 커피 한 잔 하는 주부의 일상을 꿈꾸어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의 기쁨일 것 같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반복되는 일상 속 내 이름은 흔적도 없이 희미해져 갈 것 같았다. 일은 나에게 나 자신이자 나로 존재할 의미를 주는 은신처였다.



그러나 엄마로서의 자아와 일을 맞바꾸어야 할 시점이 다가오자 일의 의미는 민낯 그대로의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했지만 아이 앞에서 일은 그저 생계의 수단 그 이상의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럴듯한 이유를 아무리 갖다 붙여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직장으로 복귀해야만 하는 이유 그것은 생계였다. 일이 없어도 살 것 같았다. 일을 하면서 내 이름으로 불리는 시간도 소중했지만 엄마가 필요한 아이 곁에 머무르고 싶었다. 그러나 늦은 복귀로 인해 발생될 승진 지연과 직장에 적응하기 위한 공백의 단축 그러한 것들을 위해 복직을 감행해야 하는 이유는 단연 생계였던 것이다.



일을 해야만 하고 앞으로도 해나가야만 하는 이유는 일을 해야만 우리의 삶에 선택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도 돈이 없으면 가지 못할 것이고 언젠가 아이가 자라 제 스스로 배우고 싶은 무언가가 생겼을 때 배움의 기회를 줄 수 있는 능력 또한 경제활동을 통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그토록 소중한 아이와의 시간과 맞바꾸어야 할 만큼 생계라는 단어가 주는 존재감은 무거운 것이었다. 아주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었는데 무얼 바라 '일의 의미' 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던 것일까. 어쩌면 나는 생계 이외에도 일이 주는 의미에 아주 그럴듯한 무엇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복직을 했고 어느덧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세 번째 해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분주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생각했다.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 그 8할이 생계라는 것을 인지하고 온 몸으로 받아들였던 순간 어쩌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고. 월요일이 두려워진 순간이 말이다.



가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지인 또는 타인의 어떤 삶들을 보면 사무치게 부러울 때가 있다. 베이킹 클래스를 하는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네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기분은 어때? 일을 할 때마다 너무너무 행복해?" 친구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취미로 하던 일을 직업으로 하니까 오히려 전보다 불편한 것이 더 많아. 수업 신청이 없으면 수입이 줄어서 걱정이고 또 신청이 많으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여가 시간이 나질 않으니 모든 것을 만족시키긴 힘든 거구나 싶어." 결국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해도 저런 고충이 있다니 그럼 대체 나의 지향점은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이 가까워져오는 일요일 밤. 결국 월화수목금 출근하는 시간들을 죽은 시간으로 치부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나도 짧고 가엾으니 어떻게 해서든 내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바빠도 나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분주한 시간 사이사이 반짝이는 순간들을 숨겨두고 보물찾기 하듯 설레는 시간들을 마주해 보는 것이다.



이를 테면 점심시간 마음 나눌 지인과 아주 맛있는 디저트를 함께 하는 것. 대충 때우던 저녁식사를 아주 충실히 차려먹는 것. 퇴근과 동시에 휴대폰은 서랍 속에 넣어두고 아이의 눈을 마주치는 것. 아주 사소하지만 빛나는 순간들을 일상 곳곳에 숨겨 두는 것이다. 그러면 생계를 위해 출근해야 하는 일상의 끝 반짝이는 순간들이 그 날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일상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한 아주 작지만 사소한 약속들을 세우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지금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유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사실. 행복은 지금 여기서 누려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되뇌어본다. 그런데 큰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밤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슬프니 나는 어쩔 수 없는 생계형 직장인인가 보다.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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