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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Jan 20. 2017

개미인생

일개미의 웃픈 하루




"제가 뜬금포 웃긴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지인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제 친구가 이마트에 갔는데 자기 주변 사람들이 홍해 갈라지듯 갈라지더래요." 도대체 무슨 세일을 했길래 그랬을까 생각하며 이야기를 듣는데 지인이 말을 이었다.



"웅성웅성 사람들 틈에 섞인 아이를 잡으러 다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정용진 부회장이 있더래요. 그런데 길만 비켜주면 될 것을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대요. 인사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더래요 내가 왜 남의 회사 회장한테 인사를 했지? 난 고객인데..."



"그 친구가 회사에서 그룹의 경영지원실 소속이라 늘 보는 사람들이 회장 부회장 이런 사람들이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인사를 한 거예요. 그 날 처음으로 뼛속까지 회사원 마인드인 자신이 부끄러웠다며 그런 얘길 해주는데 너무 웃기고 슬펐어요." 그녀의 이야기에 나도 말을 이었다. "저도 웃긴 얘기 있어요."


 

"머리 털나고 처음으로 한 알바가 배스킨라빈스였는데 한창 열심히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어느 날 약속이 있어 택시를 탔다가 내리는 찰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한다는 걸 생각과 다르게 입으로는 어서 오세요 배스킨라빈스입니다 하고 말해버린 거예요 이미 택시는 출발하고 없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붙박이장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어요."



지인과 한바탕 웃으며 이야기하는 한편 우리는 왜 일상에서도 일개미의 삶을 이어가야 했던 것일까 씁쓸했다. 삶의 주인공이 되어도 마땅했을 자리에서 누리는 것에 익숙지 못했던 우리가 마치 일개미들 같았다.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 것은 대가를 지불하고 인사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도 인사를 하는 것에 더 익숙했던 내가 떠올라서였다.  



자신과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는 대기업의 회장에게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지인의 친구나 택시기사에게 어서 오세요를 외친 나의 에피소는 자본주의 미명 아래 엮인 계약관계에 익숙한 우리여서 였을까. 웃펐던 오후, 어쩐지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글과 사진 ㅣ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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