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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Mar 04. 2017

바이킹데이즈

가진 것이 없어도 반짝반짝 빛나던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서쪽으로 끝까지 가면 동인천역이란 곳이 있다. 자유공원, 신포시장, 냉면골목, 차이나타운, 월미도까지 교문 밖을 나서면 오래되고 예스러운 명물이 많은 이 곳에서 나는 천진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공부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우선이었던 내게 동인천은 최적의 놀이터였다.



점심시간이면 담장을 훌쩍 넘어 세숫대야 냉면을 먹고 오기도 하고, 볕 좋은 가을이면 자유공원 언덕에 올라 알싸한 맥주 한 캔에 목을 축이며 어른 흉내를 내어보기도 했다.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면 두 정거장에 바로 닿는 월미도에 놀러 가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나는 바이킹 타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인천 앞바다의 짠내음을 태우고 직각으로 솟는 월미도의 바이킹에 오를 때면 최소 다섯 번은 타야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올 만큼 질릴 줄도 몰라했다. 인심 좋은 아저씨는 언제나 "다시 한번 고!"를 외치며 단골손님에 대한 서비스를 톡톡히 해주었다.



바이킹에 올라 멀리 반짝이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얼굴 가득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때면 순간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뱃머리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오를 때 느껴지는 그 짜릿함이 좋았다. 언젠가 어른이라 불리어진 나이가 되어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인생에 가장 행복한 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인생에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냐는 한 친구의 물음에 나는 무지했지만 순수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른 친구들 또한 모두 같은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한여름밤의 꿈같았던 어린 날의 추억이 진짜였음을 증명해낸 것 같은 기쁨에 잊혀가던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어가며 함께 지난날들을 회상하기도 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우리는 그 시절 어른이라 생각했던 나이에 닿았다. 이제는 너무도 아득하게 느껴지는 그때를 떠올리며 이따금 생각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그때 우리는 무엇이 그리도 좋았을까? 초등학생 때처럼 우주비행사가 된다거나 대통령이 될 거라는 거창한 꿈을 말할 수도 없는 어른 아이였던 십 대, 막연했지만 무엇이라도 되어있을 거라는 그 희미함이 오히려 희망처럼 다가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서른을 넘긴 나는 더 이상 철없었던 십 대의 무모함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한다며 에버랜드 연간회원권을 끊고도 T익스프레스에는 몸을 싣지 않으며 다 놓아버리고 싶은 괴리감이 밀려오는 순간에도 당장 빠져나갈 이자와 대출원금을 생각하며 다시 활짝 웃는 얼굴로 출근을 한다. 막연한 미래를 오늘의 즐거움으로 덮어버렸던 십 대 때와는 대비되는 하루들을 담담히 살아나간다.



그러다 문득 지친다고 느낄 때면 오래전 친구들과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며 함께 타던 바이킹을 떠올리곤 한다. 하늘 위로 두 팔을 뻗은 채 그 짜릿함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곧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시간이 되면 허리에 두른 벨트는 풀어질 것이고, 둥둥둥 흔들리던 세상도 잠잠해질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이킹을 떠올리면 한걸음 앞으로 떼기조차 힘들 만큼 지치는 어떤 날에도 결국엔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란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끝이 있다는 믿음 그것만으로 힘겨운 하루의 끝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생기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가슴이 터질듯한 불안을 그 순간 허락된 모든 것을 사랑해 버리기로 마음먹는다. 무서운 것 없었던 그때처럼 말이다. 바이킹에 올라타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 불안함이 주는 짜릿함을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 그것이 여기 하루라는 예측 불가능한 롤러코스터를 즐겁게 타는 유일한 방법일테니까.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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