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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Mar 06. 2017

브라더의 영어울렁증

울적할 때 떠올리는 마이 브라더 이야기



남편과 나에게는 오랜 시간 함께 공유해온 친구가 있다. 나에게는 친오빠 같은 존재이면서 남편에게는 절친이자 형인 그는 남편과 내가 서로를 알기 전에 각각 우리와 먼저 인연을 맺었다. 나는 그를 교환학생으로 가게 된 중국에서 처음 만났다.




먼 이국 땅에서 일 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나는 그와 자연스레 가까워졌고, 수년을 함께해온 피붙이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중국어로 형이나 오빠를 부르는 호칭을 붙여 나는 그를 쥬꺼거(哥哥)라 불렀고 그는 친오빠처럼 늘 내게 마음을 써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한국에 정말 친한 동생이 있는데 너를 보면 그 친구가 자꾸 생각나. 네 이상형에 거의 99% 가까운 놈이거든. 그놈은 남자인 내가 봐도 멋있고 괜찮은 녀석이야. 한국에 가면 내가 소개해줄게. 한 번 만나봐."



나는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한동안 잊고 지냈다. 중국에서의 일 년은 빠르게 지나갔고 어느새 우리는 한국에서 복학을 했다. 함께 교환학생을 다녀오며 친해진 친구들과 신청한 교양수업의 첫날 앞문으로 들어서는 남학생을 가리키며 쥬꺼거가 말했다. "저 녀석이야. 내가 말했던 애가."


 

남편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러나 신은 그에게 첫눈에 반할만한 외모를 주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확인함과 동시에 나는 쥬꺼거에게 복화술을 가동해 화를 냈었다. "장난해? 수업 끝나고 보자." 그렇게 우리는 쥬꺼거라는 매개체를 사이에 두고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고 서로를 알아나갔다.



시간이 지나며 쥬꺼거의 예언대로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됐다. 쥬꺼거의 말대로 그는 나의 이상형에 99% 가까운 사람이었다. 오늘의 분주함으로 내일을 준비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요즘 말로 츤데레 같은 매력이 있어 까칠한 듯 따뜻한 동시에 유머러스하기까지 해 늘 주변을 웃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친구에서 연인이 되고 결혼까지 약속한 우리에게 그는 장문의 편지로 우리의 앞 날을 축복해 주기도 했다. 나에게는 내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남편일 것이라며 그런 그라서 나의 결혼을 걱정보다 기쁨으로 축하해 줄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적어주었고 남편에게는 내 동생 잘 부탁한다는 글로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편지를 써주었었다.



책장 한 켠 앨범에 보관해둔 그의 편지를 이따금 꺼내어 볼 때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이토록 좋은 인연이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영어울렁증이었다. 숫자 감각은 뛰어났지만 언어에는 재능이 없었던 그는 일 년을 중국에서 유학하고도 중국인과 1분 이상 대화를 잇지 못하는 취약점을 갖고 있었다.



하다못해 학창 시절 내내 필수 과목으로 배운 영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미션스쿨 학교를 다녔던 그가 외국인 교수와의 회화 테스트에서 "My highschool was mission school." 하고 말한다는 걸 긴장한 나머지 "My highschool is middle school."이라고 말해버려 테스트를 망친 일화는 학기 내내 전설과 같이 남아 우리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누나가 둘이었던 그는 유독 둘째 누나와 사소한 말다툼으로 아웅다웅 하곤 했는데 어느 날은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짜증을 내는 누나에게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말았다. "제발 히스토리 좀 그만 부려!" 그랬다. 그는 "히스테리 좀 그만 부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선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고 그 날 누나는 배를 잡고 웃느라 더 이상 그와의 싸움을 잇지 못했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웠던 건 내가 직접 목격한 사건이었다. 중국에 간지 얼마 안 되어 서툰 중국어보다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편했던 그는 어느 여름날 목이 마르다며 음료수를 산다고 근처 슈퍼로 들어갔고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질 않아 그를 찾으러 가게에 들어갔을 때 나는 역사적인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다.




가게 주인은 "이 남자가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는 목대 핏대가 터져라 외쳐대고 있었다. "스트라이프. 스트라이프 플리즈!" 그렇다. 그는 스프라이트가 먹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가게 주인에게 계속해서 외쳐댔던 것은 줄무늬였던 것이다.



그는 여전히 영어울렁증에 허덕이며 장인 장모님이 "우리 사위는 중국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이니 언제 한 번 같이 중국 여행이라도 가자"고 이야기하실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아내에게 살려달라는 구원의 눈빛을 보낸다고 했다.   



그러나 영어울렁증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고난 친화력으로 일 년 간의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가장 많은 외국인 친구를 사귄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에게는 언어의 능력 대신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무한 매력과 친화력이 있었던 것이다. 영어울렁증이 있으면 좀 어떤가. 그는 이토록 매력쟁인데.



오늘은 오랜만에 쥬꺼거에게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수화기에 대고 "쥬꺼거~ 뭐해?" 하고 외치면 그는 여느 때와 같이 대답해 올 것이다. "지겨워~ 잘 살아?" 이따금 전화를 걸어도 어제 만난 것처럼 안부를 묻고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인생에 축복같은 일이다. 그런 친구를 가져서 우리는 이만큼 더 행복한 것이라고 자부하며 우울한 날이면 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웃긴 그의 울렁증 일화를 이따금 꺼내어 보곤한다.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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