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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Mar 17. 2017

어머니와 목욕탕

당신의 이유 있는 사치



몸살처럼 시작된 감기와 동거 동락한 지 삼 주째가 되어가던 금요일 밤 불현듯 어머니와 목욕탕에 가야겠다 생각했다. 회사 근처 용하다는 병원을 세 곳이나 다녀오고 처방받은 약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은채 발작적인 기침과 몸살로 버티어낸 날들이 쌓여 지칠 대로 지친 그런 밤이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온몸의 긴장을 풀어내고 싶었다. 자갈이 잔뜩 깔린 어머님 댁 동네 찜질방에 누워 높은 천정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몸을 지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이번 주말엔 어떤 일이 있어도 나돌아 다니지 않고 반드시 어머니의 목욕행사에 꼽사리를 끼어야겠다 결심했다.



굳게 마음먹은 만큼 토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분당으로 향했다. 염치없는 점심을 얻어먹고 아버님과 남편에게 아이를 맡긴 채 어머니와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탕 마니아답게 이미 회원권을 잔뜩 끊어놓은 어머니는 카운터에 자랑스럽게 입장권 두 매를 내밀었고 나는 역시 어머니를 따라오길 잘했지 생각하며 그 뒤를 따라 드디어 고대하던 목욕탕에 입성했다.



간혹 시어머니와 함께  목욕탕에 간다고 하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는 지인들이 여럿 있었다. 나는 그것이 누군가의 시선에 이상해 보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런 지인들의 반응을 통해 처음 인지했다. 전에는 한 번도 어머니와 목욕탕에 가는 일이 이상한 일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오고 계신 어머니의 유일한 취미는 목욕탕에 가는 것이고 나에게도 목욕탕에 가는 것은 언제나 큰 기쁨이기에 함께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혼자 보단 함께일 때 어떤 시간이든 더욱 풍성해진다고 믿는 내게 같은 취미를 가진 어머니와 목욕탕에 가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한겨울에도 난방을 떼지 않고 실내에서 파카를 입고 지내시며 외출할 때에는 집안의 모든 콘센트를 뽑고 나가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을 만큼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계신 어머니였지만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에 가는 것만은 빠뜨리지 않을 만큼 어머니의 목욕탕 사랑은 대단했다.



두 아들을 장성한 사회인으로 키워내고도 여전히 살림과 일을 병행하며 분주한 매일을 보내시는 어머니는 주말 오후 목욕탕에 가는 시간이 일주일 중 가장 좋다고 했다. 그야말로 7천 원의 행복이 따로 없다고 했다. 목욕탕에 가는 것을 즐기지 않던 친정엄마와 달리 고등학생 때부터는 혼자 목욕을 갈 만큼 목욕탕 바라기였던 나는 어머니가 말하는 행복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42도의 물에 몸을 담그면 정말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란 피부에 와 닿는 물리적 온도인 동시에 근육이 이완되며 긴장했던 마음까지 풀어지게 만드는 정신적 작용 이기도 했다. 뜨거운 탕 속에 몸을 담그면 굳었던 어깨가 펴지며 단단했던 마음도 몽글몽글 순두부처럼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살아온 날들이 저마다 다른 여인네들과 발가벗은 몸으로 마주 앉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늘 아래 인간이란 다 같은 것은 것이라는 겸허한 생각마저 들곤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세상의 모든 삶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랐고 지난 며칠간 혹시 내가 상처 준 이는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가벼운 샤워 후 탕 속 시간을 즐기고 나면 본격적인 찜질을 시작할 차례가 된다. 찜질복을 입고 나와 어머니와 따로 혹은 같이 드문 드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각자 가져온 책을 읽기도 하다 보면 어느새 서너 시간이 지나 있곤 했다.



그렇게 30여분씩 찜질을 하다 잠깐씩 밖으로 나와보면 어머니는 책을 읽고 계시기도 하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고 계셨다. 각자 찜질을 하다 얼굴을 마주한 타이밍이면 한 번씩 병원에 계신 시조부모님 걱정으로 무거운 마음을 열어 보이기도 하셨다.



어쩌다 내가 고된 직장생활에 대해 투정이라도 부릴라치면 "나도 그렇다. 직장생활을 30년 넘게 하고 이제는 관리자의 입장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것이 두렵고 어렵다. 여전히 막연한 마음으로 나의 부족과 빈틈을 메우려고 노력한다."는 한 마디로 목젖까지 나왔던 투정을 다시 저 깊은 곳으로 밀어 넣으셨다.  



그러면 이번엔 다시 화제를 바꾸어 본다. 나의 남편이자 당신의 철없는 아들에 대해 이런저런 서운했던 것을 이야기하면 이번에는 어머니도 덥석 안주거리를 물고 만다. "그놈이 그렇지. 장가가서 아기 낳고 아빠가 되었으면 철이 들어야 할 텐데 쓸데없는 고집이 있지. 그런데 사실 남자는 다 그렇다. 평생에 아이 같은 모습이 있지. 네가 고생이 많다." 그러면 나는 또 한껏 서운했던 마음이 풀어져 "그래도 회사에서는 얼마나 멀쩡한 척 일을 잘 해낸다고요." 하며 망나니 아들을 두둔하기도 했다.



그렇게 찜질을 하고 나면 다시 한 번 목욕탕으로 이동해 본격적인 목욕을 시작한다. 이제부터가 진짜 세정의 시간인 것이다. 어머니와 나는 탕 속에 들어가 긴장을 풀어내고 몸을 불린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번갈아 서로의 등을 밀어준다. 이 순간이 어머니와 함께 온 목욕탕의 클라이막스다.



내 손이 닿지 않는 나의 등을 타인의 도움을 받아 닦는 것. 커다란 목욕탕에 울려퍼지는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 이 순간이 되면 삶이란 결국 내가 볼 수 없는 나의 뒷모습을 누군가가 보아주고 온전하지 않은 나의 구석을 도움을 받아 닦으며 함께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때를 기똥차게 잘 밀어주신다.



목욕탕에 들어설 땐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나갈 때 시계를 보니 어느새 늦은 7시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어미새를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고픈 배를 움켜쥐고 있을 두 남정네를 떠올리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똑같이 동그랗고 구수한 얼굴을 한 두 남자와 삐삐머리 여자아이 한 명이 같은 자세로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충분히 고단한 피로를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자꾸만 눈이 감겼다. 삼주나 매달려온 감기가 드디어 집에 갈 차비를 하려고 그러는가 보다 싶었다. 오늘은 어머님댁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가야겠다 생각하며 다시 아득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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