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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Mar 19. 2017

힐링이 필요할 때

다시 봉평!



기내용 캐리어를 늘 거실 한편에 둔다. 언제라도 곧장 떠날 수 있게. 늦은 퇴근을 한 금요일 혹은 토요일 이른 아침 작은 캐리어에 세 사람의 여벌 옷을 챙겨 넣고 갈색 강아지 초코똥과 함께 봉평으로 간다. 목적지는 언제나 같다. 한참을 달려 도착 30분 전쯤 이제는 고향집 같이 편안한 펜션 아주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저희 가고 있어요. 금방 도착할게요." 언제나 그렇듯 조심히 오라고 반겨 주신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인연을 맺은 이 곳은 어느새 우리의 아지트가 되어버렸다. 언제고 휴식이 필요할 때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주저 없이 봉평을 찾는다. 봉평을 찾는 횟수는 점점 많아져 어느 때는 한 달에 두어 번 잠잠하다 싶으면 두 달에 한 번 꼴로 찾는 일이 일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태어나기 전부터 태중에서도 여러 번 찾았던 곳이어서인지 아이도 처음부터 이 곳을 좋아했다. 정 많은 할머니와 펜션에 살고 있는 강아지 앙이와 짱구.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초록 잔디까지 이 곳의 모든 것이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다. 조금 잠잠하다 싶으면 짱구를 찾으며 봉평에 가자고 졸라댄다. 아이는 초록이 가득한 이 곳에서 초코똥과 달리기 시합하기를 즐긴다.



비눗방울을 후후 불어주면 초록 잔디 여기저기 살포시 내려앉은 비눗방울들을 찾아내 꾸욱 눌러주기도 좋아한다. 주인아주머니의 새 식구 강아지 짱구와는 초코똥이 서운해할 정도로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봉평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짱구부터 찾는다. "짱구 짱구!" 잠들기 전 인사도 잊지 않는다. "짱구 잘 자."






흥정계곡 가는 길. 소박한 시골길은 언제 걸어도 즐겁다. 파란 하늘이 바라만 보아도 힐링이다. 자기와 똑같이 생긴 딸아이를 어깨에 진 남자와 여자 그리고 개 한 마리가 고요한 시골길을 걸어간다. 물소리, 참새 소리, 나무 위 매미소리, 바람소리 위에 세 사람과 개 한 마리의 발자국 소리가 더해진다.





걸어서 3분. 물 맑은 계곡에 도착하면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먼저 담가본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계곡물에 발을 담가보는 일은 필수코스다. 몇 년이 지나도 투명하다. 수년간 변함없이 투명하다. 한결같이 투명한 흥정계곡이 참 기특하다. 푸른 산에 둘러싸인 계곡에서 봄가을에는 돗자리를 펴고 소풍놀이를 해본다.



여름에는 첨벙첨벙 물놀이를 하고 작은 돌멩이들을 모아 계곡물에 던져본다. 발을 담그면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차가운 계곡물인데도 아이는 제법 물놀이를 즐긴다. 밤이 되면 온 세상이 다 캄캄 해지는 시골마을. 아이는 이 곳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쏟아질듯한 별들을 보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보았던 날. 아이는 늘 엄마가 불러주기만 했던 노랫말을 제 스스로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반짝반짝 작은 별."  






서울에서 봉평까지 차가 막힐 땐 편도 서너 시간도 걸리는 봉평이지만 아쉬운 주말을 이 곳에 내어주는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일이 없다. 봉평은 언제나 옳았다. 자연이 주는 힘일까. 마치 제 집인 것처럼 이 곳에서 특별할 것도 없을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시 돌아갈 힘이 생기곤 한다. 그리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전쟁 같은 월요일 아침을 맞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면 어느새 또다시 봉평이다. 참 다행이다. 언제고 변함없는 이 곳이 있어서.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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