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난 후에 오는 것들 | 아이와 함께한 다섯번째 여행지 푸켓 #2
휴양지로 떠나는 동남아 여행은
여행을 다녀온 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존재감이 더욱 선명해진다.
복귀 후 적막한 사무실
탁탁탁탁 들려오는 키보드 소리 속에서
시야를 가득 채우던 초록이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다시 시작된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
시계 조차 보지 않던 며칠이
마치 꿈을 꾼 것만 같다.
여행지에서의 시간도
사실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으로 채워진다.
일어나 세수를 하고 조식을 먹고
주말에만 하던 모래놀이와 산책을
온종일 했다는 사실 외에
특별할 것 없던 여행지에서의 시간.
그렇지만 아침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늘어지게 잘 수 있다는 사실.
아무 생각 안 한 채 언제까지고
멍 때리며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
차려먹는 식사가 아니라
차려주는 식사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
내일 출근 걱정에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억지로 재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자꾸자꾸
앞으로 나가야만 하는 일상이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일상
여행이 주는 기쁨은 그렇게
작지만 특별한 차이에서 비롯된다.
여행은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돌아와 더 잘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어느 책에서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언제부턴가
여행이 끝난 후엔
이 문장이 탁 하고 생각난다.
맞아 맞아하면서.
다시 떠나고 싶은
충동이 매우 자주 일렁인 며칠
지금 여기, 이 곳에서
다시 잘 살아내야 함을 되새기며
여행의 후유증을
주머니에 꾹꾹 눌러 넣어본다.
글과 사진 | B구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