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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Mar 19. 2017

기억의 단절

전하지 못한 말




아버지는 택시운전사였다. 젊었던 부모님은 자고 일어나면 부쩍 커버리는 자식들을 키우려고 작은 오락실도 했다가 구멍가게도 했다가 하며 참 열심히 사셨다고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유일한 직업은 택시운전사였다. 적어도 아홉 살 무렵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운전만을 업으로 하셨으니 틀린 기억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내려 애를 써도 오락실이었거나 구멍가게였던 우리 집은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머리가 크고 고집이 생긴 나는 언젠가부터 아버지가 미웠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는 아버지의 삶이 무기력하다고 느꼈다. 주기에 따라 교대근무를 해야 했던 아버지는 야간근무를 할 때면 낮에 잠을 자야 했다. 나의 기억 속 그는 환한 낮에도 자주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주간 근무일 때는 운전을 하고 있었을 테니 얼굴을 마주할 일이 없었을 것이기에 틀린 기억은 아닐 것이나 아버지가 미웠던 내게는 내가 없는 시간 보냈을 그의 시간을 헤아릴 이해(理解)가 없었다.




오랜 시간 말없이 운전했을 아버지는 퇴근길 검은 봉지에 맥주 한 병을 담아와 홀로 약주하길 즐겼다. 나는 평소에는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가 약주만 하면 자꾸만 말을 거는 것이 싫었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는 다정하지 못했던 그가 충혈된 눈으로 거리를 좁혀오는 것이 비겁하다고 느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멀어져 갔다. 너무 착하고 외로웠던 그가 다 큰 자식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몰라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돌아가기엔 너무 많은 날들을 걸어온 후였다.




나는 성격도 생김새도 그를 똑 닮은 내가 무서웠다. 어른들은 내게 이따금 "너무 착해서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는지 걱정이 된다."라고 말했다. 무엇에 한 번도 뜨겁지 못했던 나는 무기력한 아버지처럼 단조로운 인생을 살게 될까 봐 두려웠다. 일찍 하교하는 것이 좋아 시험 보는 날을 가장 좋아하던 나는 열여덟 겨울이 되어서야 난생처음 공부라는 것을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무엇에 욕심이 생긴 나는 열심히 놀았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 앞에 깨달았다. 언제라도 시작만 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그 무엇도 이룰 수 없을까 봐 시작조차 못했던 두려움의 이면이었음을. 어떻게 지나갔는지 계절이 지나는 것도 모를 만큼 분주했던 일 년이 지나고 이듬해 봄 나는 서울 소재의 대학에 합격통지를 받을 수 있었다.




"어머니 지금의 성적으로는 전국에 어느 대학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성적표에 건조하게 한 줄을 적어냈던 선생님은 전교 일등이 서울대를 들어갔다는 사실보다 내가 대학을 들어갔다는 사실에 흥분하며 놀라워했다. 아버지처럼 되기 싫었던 나는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길었던 이십 대를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이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눈물조차 나지 않을 것 같았던 나는 참 많이도 울었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를 내게 빚진 사람처럼 대했다. 더 열심히 자신의 삶을 꾸리지 못한 빚. 더 열심히 마음을 표현하지 않은 빚. 더 평범한 아버지가 되지 못한 빚.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서야 그가 갚아야 할 빚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빚은 오히려 내게 있었다. 그에게 좀 더 따뜻한 자식이었어야 했을 빚. 그를 좀 더 이해했어야 했을 빚. 그에게 먼저 다가갔어야 했을 빚.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오래된 앨범을 꺼내어 본 적이 있다. 사진 속의 나는 젊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미웠는데 한 번도 아버지가 밉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사진 속의 어린 나는 세상 걱정 없는 얼굴로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을 감은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며 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미처 전하지 못한 고백은 허공 위를 떠다니다 길을 걷다가 아이를 재우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바라보다 불쑥불쑥 일상 속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서른이 넘은 나는 젊었던 날의 그처럼 이따금 외롭다고 생각했다.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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