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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Jul 03. 2017

실수해도 괜찮아

나에게도 실패 할 권리가 있다



오래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수채 캘리그라피 수업을 다녀왔다. 12명의 수강인원이 다 찰까 봐 입금부터 해두고 매튜에게 문자를 보낸 터였다. '나 전부터 듣고 싶었던 수채 캘리그라피 원데이 클래스 수업 공지가 떴는데 진짜 가고 싶다. 이번 주 금요일에 칼퇴할 수 있어?' 정신없이 일하던 매튜는 답문도 보내오지 않은 상태였지만 마음은 벌써 연남동에 가 있었다.



드디어 금요일이 오고 서둘러 퇴근을 한 뒤 홍대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재료가 모두 준비되어 있으니 빈 손으로 와도 된다는 공지에 정말 두근대는 마음만 가득 안은 채 버스는 어느새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연히 어디선가 수채 캘리그라피 손글씨와 그림을 접한 뒤로 가슴이 두근대던 어느 날, 관련 서적을 3권이나 주문하고 책의 서문에 소개된 수채물감과 종이 등 온갖 재료를 구비해둔 상태였다.



그러나 에너지가 솟구치는 다섯 살 개구쟁이 앞에서 도화지를 펼치는 것은 역시나 무리였다. 한 번 시도해 볼까 하다가도 결국은 버럭 소리로 붓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채 시간이 갔고 그렇게 6개월쯤 흘러 오늘에 이른 것이다. 무엇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할지 수채 물감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것인지 기본적인 것조차 몰라 두려움이 앞섰던 나는 선뜻 새로 들인 재료들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이따금 쌓인 먼지만 닦아온 터였다.



수업 장소인 카페에 도착하니 그림만큼이나 이쁜 선생님께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수채 캘리그라피 책도 내고 이 일을 업으로 하고 있으니 저를 전공자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더러 계세요. 그런데 사실 저는 그림을 전공하지도, 그림을 잘 알지도 못했던 사람이었어요.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때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그렇게 정말 좋아서 시작했던 일이 직업이 되면서 기존에는 없던 감성 수채화라는 이름을 붙여 출판까지 하게 되었지요."



"앞에 보시면 팔레트에 다양한 색색의 물감들이 있고 도화지가 있어요. 한 번 붓을 들어 동그란 원도 그려보시고, 쭈욱 일직선도 한 번 그어 보세요. 그러고 나서 몇 가지 터치하는 방법을 알려 드릴텐데 그리고나면 직접 마음 가는 대로 그림을 그려보시는 거예요. 조금만 색이 덧나도 아 망쳤어요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틀리면 틀린 대로, 물감이 번지는 대로 멋스러운 것이 수채화의 매력이에요. 틀리면 어때요 틀려도 괜찮고 처음 생각했던 그림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이상하게 '괜찮다, 괜찮다' 몇 번이고 강조하는 선생님의 그 말이 싫지 않았다. '그래 괜찮아, 실수하면 어때'  스스로를 다독이며 용기를 내 붓을 들어보았다.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말씀대로 붓이 머금은 물이 종이에 닿는 순간 번져가는 색들이 어설펐던 그림에 자연스레 명암을 만들어 주어 얼핏 보면 꽤나 괜찮은 그림이 되어 있었다.



그림을 그리며 생각했다. 어쩌면 집에 돌아가서도 팔레트에 고이 모셔둔 물감들을 색색이 짜고 다시 한번 붓을 들어볼 수도 있겠다고. 무엇이든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을 때 뚜껑을 열어 보이려는 나의 성격을 단단히 고쳐줄 참 좋은 취미가 생긴 것 같았다.

 


얼마 전 대선에 낙선한 심상정 대표가 TV 프로그램에 나와한 말이 생각났다. "실패가 없는 사회다. 한 번 시행착오하면 낭떠러지다. 그러나 나는 실패할 권리를 누렸다. 처음부터 당선되리라 생각지 않았기에 우리로서는 선거를 치르며 정치인 심상정, 정의당의 한계를 배울 수 있어 값진 실패였다."



그래, 나에게도 실패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두려움을 밀어내고 다시 연습해보자. 책 속에서 본 것처럼 예쁜 그림을 그릴 수는 없겠지만 부단한 실수를 허용하며 몇 번이고 새 도화지를 마주하는 과정을 오롯이 즐겨보자. 그림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어설픈 나의 첫 그림엽서를 들여다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든든해지는 밤이었다.




글과 그림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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