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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Jan 31. 2017

꿈꾸는대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에게




필요에 의한 관계에 익숙한 회사에서 친구가 된 사람들이 있다. 같은 파트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한 우리는 드라마 대사처럼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수없이 사소한 이유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런 날 혼자는 너무 쓸쓸하고 누군가 곁에 있어주었으면 싶을 때 아무렇지 않게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서로를 토닥거렸다. 그러고 나면 다시 사무실로 돌아갈 힘이 생기곤 했다.  



셋이 마주 앉아 있으면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했다. 그런 그녀들 중 한 사람이 먼 곳으로 떠나게 됐다. 자신의 꿈을 찾아 해외로 이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미 퇴사한 상태로 회사에서는 마주할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 출국을 앞둔 그녀의 집에서 마지막 모임을 하기로 했다.



향긋한 차 한 잔과 폭신한 케이크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직개편과 새로 바뀐 업무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이야기. 그러던 중 출국을 앞둔 당사자이자 집주인인 A가 한껏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봐요. 보여줄 게 있어요." 서재방에 다녀온 그녀의 손에 작은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이것 보세요. 대학 졸업반 때 메모했던 건데 얼마 전에 짐 정리를 하다 이걸 발견하고 소름 돋았잖아요. 그 당시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적어두었던 것인데 돌아보니 생각한 대로 정말 그런 길을 걸어온 거 있죠. 너무 힘들었고 지겹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던 길을 걸어온 거였어요. 지금의 선택 역시 그런 거죠. 너무 신기하죠."



함께 갔던 B와 나는 "소오름"을 외치며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정말이네요. 정말 그러네요. 과장님은 꿈을 이루었네요. 꿈꾸었던 길을 그대로 걸어왔잖아요. 특별한 행보예요. 도전을 선택하며 꿈을 이루어온 과장님이 너무 대단해요. 응원해 주고 싶어요." 그런 우리에게 그녀가 말했다.



"사람들이 왜 어려운 길을 가냐고 그랬어요. 안정적인 대기업 타이틀 버리고 불안정한 세계로 걸어가는 것에 대해 만류한 이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공감이 되지 않았어요. 실패할 수도 있죠. 그런데 실패가 없는 삶이 좋은 것 같지 않았어요. 어쩌면 저의 선택은 그런 기조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그래요. 20대 땐 적어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의 저는 안정성을 더 추구하는 그런 30대를 살고 있네요. 과장님은 여전히 꿈을 꾸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네요. 누가 뭐라든 흔들리지 말아요. 안주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역시 과장님의 선택이었잖아요. 설사 무엇을 잃는다 해도 적어도 지금보다 한층 성장해 있을 거예요. 저에게 직장은 언젠가부터 일을 위한 일을 하는 곳이 되었는데 그런 면에서 일을 꿈의 연장선으로 이루어가고 있는 과장님이 정말 부럽고 대단하다고 느껴요."



얼마 전 한국에 방문한 현지 상사와의 만남에서 제가 그랬어요. "사실 많이 두렵다고. 일은 배워가며 적응할 자신 있다. 한국 시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담당자로써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하는 의사소통. 현지 스텝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이런 것들이 너무 걱정된다고." 그랬더니 그가 그러는 거예요. "네가 걱정하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것들이 아니네. 우리는 네게 유창한 의사소통을 원하는 것이 아니야. 한국 시장을 아는 담당자가 필요했고 그래서 널 뽑은 거야. 언어는 일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이면 충분해. 안 그래?"



"그 순간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 같았어요. 정말 그랬던 거예요. 그래서 자신감을 가져보기로 했어요. 제 자신을 위해서요."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운 시작을 앞둔 그녀를 응원했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짙은 어둠 속을 함께 걷던 밤. 우리는 다음에 또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할게 될까 멀고도 가까운 내일을 그려보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자리걸음인 듯 아닌 듯 조금씩 전진하며 살다가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떠나는 그녀에게 거창한 인사는 하지 않았다. 자신이 변화를 선택한 이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에게 더 이상 우리가 해줄 말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실패도 성장의 다른 이름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로 걸어갈 준비가 된 그녀에게 나는 담담히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속삭였다. '걱정 말아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그저 한 걸음씩 걸어가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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