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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Feb 04. 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feat. 직장인의 사생결단)  




얼마 전 뉴스에서 직장인의 조직개편 또는 업무의 변화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친한 지인의 사망과 유사한 정도의 영향력을 가한다는 기사를 봤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위안과 동시에 최근 2주간 퀭한 눈으로 사무실 곳곳에서 마주쳤던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2주 전 수년만의 대개편으로 본부 내 인원의 절반가량이 조직개편 또는 업무의 변화를 경험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소속은 동일했지만 기존의 팀에서 나를 제외한 모두가 다른 조직으로 이동했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며 주변의 환경이 바뀌었다.



팀장을 비롯한 주변 구성원이 바뀌는 것은 물론 기존 실무자로서 업무 부담을 지게 되면서 특별히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가야겠다는 야망도 욕심도 없는 내가 파트 내 관련 업무를 총괄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어떤 이는 좋은 기회라며 조금 더 욕심을 내어봐도 좋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원하는 내게 총괄이라는 역할은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개편을 기다리는 중 느꼈던 스트레스는 그야말로 극에 달했다. "어떻게 할 거야? 이동할 생각이야?" "누구는 어디로 간데? 사람들은 메신저로 이 곳 저곳의 분위기를 살피며 다음 목적지를 찾기에 바빴다. 나는 담담한 척 내색하지 않으면서도 속으로는 앞 길을 알 수 없는 안개 같은 이 상황이 제발 빨리 끝나기를 매일 같이 바랐다.



그리고 드디어 선택의 순간이 왔다. 팀장 이상 승진대상이 확정되고 드디어 개편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는 대대적으로 부문 내 대개편을 할 것이며 본부 내에도 담당 간 셔플을 하겠다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기에 팀장들은 서둘러 팀원과의 면담을 시작했다.



나의 선택은 잔류였다. 결과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지난 일주일이 말해주었다. 매일 같은 시간 퇴근과 동시에 아이를 하원 해야 하는 나는 제한된 시간에 더 과중해진 업무를 소화해내야 했고 쏟아지는 메일의 홍수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금요일이었다.



이전의 팀에서는 이직한 동료의 업무까지 2인의 업무를 소화했었지만 지나 보니 업무의 물리적인 양으로 보면 그곳은 천국이었다. 지난 일주일 내내 나에게 주어진 시간 내 최대한 맡은 바 업무를 소화해 내고자 출근시간을 한 시간 앞당겨야 했고 점심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전력질주를 하고 나면 우선순위에 따라 그 날의 이슈들을 겨우 해결해낼 수 있었다.



정말 겨우 일주일 지났을 뿐인데 나의 에너지는 깜박깜박 알람을 알리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방전되어 있었다. 겨우 숨을 돌리던 금요일 오후 동료가 물었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라고 나는 답했다. 정말 그랬다. 사실 개편 전 나는 최근 몇 년 간의 조직생활 중 가장 자존감이 떨어지는 시간을 걷고 있었다.  



상사와의 갈등, 필요에 의한 밀어주기, 정치적 관계 그와 같은 이슈들로 인한 괴리감이었다. 힘들었고 무엇보다 나와는 잘 맞지 않았던 상사와 2년이란 시간을 함께하며 누적된 스트레스로 폭발 직전의 상태에 닿아 있었다. 무엇이 되던 개편으로 인해 주변의 환경이 환기되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했고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바람대로 맞아떨어졌다.



이전의 상사를 비롯해 힘들었던 관계에 있던 동료가 다른 담당으로 발령이 나며 나는 홀로 잔존하게 되었고 업무 부담을 더 지게 되긴 했지만 괜찮았다. 모든 것을 다 만족할 순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변경된 업무의 부담감, 완전히 새로워진 주변의 환경, 더 과중해진 업무 이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적어도 나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고 있었다.



하나가 가니 또 다른 하나가 온 상황이었지만 벼랑 끝에 서면 단순해진다. 지금 이 순간을 바꿀 수 있다면 그 무엇도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절박함이 모든 것을 이긴다. 애잔하지만 슬픈 직장인의 사생결단. 미움에 대한 고찰은 내게 그저 다름에 대한 인정과 저마다의 이유 있음을 보라고 말해주었다.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면 내 마음이 더 힘들어지는 이유였다.



어제의 나는 절망 속에 있었지만 적어도 누군가 내게 "그는 어때?"라고 물어보면 "그저 나와는 스타일이 많이 달랐어. 그렇지만 장점도 꽤 많은 사람이야."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는 편이 훨씬 더 아름다웠다.



오늘도 쉼 없이 달리는 회의, 계속되는 보고, 끊임없는 메일링에 조리원 퇴소 이후 다시 부활한 손목의 건초염을 경험해야 했지만 그래도 나는 어제보다 꽤 괜찮은 오늘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땅이 꺼질 만큼 깊은 한숨을 내쉬던 그때 도망가지 않았던 나를 진심으로 토닥여주고 싶었다. 언제나 그랬듯 나의 선택은 같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변함이 없다.



적어도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도망이 아닌 때를 기다린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었다. 짧은 주말이 지나면 다시 분주한 한주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점차 그런 패턴에 익숙해져 갈 것이다. 데자뷰처럼 또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때의 나는 오늘보다 더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지난 시간이 그랬듯 넘어지고 깨졌던 시간은 결국 잊지 못할 한 줄을 남기기 마련이니까.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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