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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Feb 04. 2017

낮아진다는 것은

세상 모든 낮음의 위대함에 대하여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가려던 찰나 카시트에서 내린 아이가 손을 잡아끌며 외쳤다. "어! 엄마 저기 보세요. 저기 고양이가 있어요!" "어디? 어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이가 말한 고양이는 발견할 수 없었다. "저기, 저기 있잖아요. 여기 보세요!" 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모퉁이에 세워진 차 아래 길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어! 정말 그러네. 서연이가 고양이를 찾았네. 낯선 사람들이 다가가면 고양이가 무서울 거야. 고양이한테 안녕 인사하고 가자!" 아이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며 데자뷰처럼 익숙한 지난여름을 떠올렸다. 자주 가는 봉평 시골길에서도 아이는 언제나 내 손을 잡아끌며 외쳤다. "엄마, 여기 봐요! 여기 내가 좋아하는 분홍꽃이 있어요!" "어디? 어디에!" 하고 찾다가 아이의 손을 따라가 보면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 사이 홀로 고개를 내민 코스모스 한송이가 피어있었다.



아이는 언제나 내가 보지 못하는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이를 테면 길 위의 작은 개미들. 개미가 개미에게 먹이를 옮겨주는 치열한 일터의 현장. 하늘 위에 높이 뜬 달. 호랑이를 닮은 구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찰나의 순간을 마주할 때면 아이의 파인더에 잡힌 사물들을 보며 나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일상의 소소하고 따뜻한 장면들을 포착해내는 그 능력에 감탄하곤 했다.



아이의 '낮은 시선'이 가진 특별함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어쩌면 세상의 모든 낮은 것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 때 한창 사진에 대한 관심으로 투박한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틈만 나면 사진을 찍어대던 때가 있었다. 각도와 빛에 따라 달라지는 컷의 변화에 나는 깊이 들떠있었고 더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기 위해 수만 번의 셔터를 눌렀다.



울긋불긋 새색시 같은 단풍이 곱게 내려앉은 높고 선한 가을이었다. 겨울이 오면 사라질 가을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지만 아무리 찍어도 마음에 드는 컷이 나오지 않았다. 30분쯤 지났을까. 옆에서 찍고 앞에서 찍고 별 짓을 다해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지 못할 때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길 위에 그대로 배를 깔고 엎드려 버렸다. 그리고 다시 셔터를 눌렀다.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프레임에 그 순간의 가을이 담겨있었다. 온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생각했다. '낮아져야 하는구나'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낮아져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낮아짐의 위대함을 느낀 것은 비단 사진을 찍는 순간뿐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보다 높아지고자 고군분투할 때보다 상대가 가진 장점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손을 내밀 때 훨씬 더 견고한 관계와 시간이 만들어지는 것을 사회에서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경쟁에 익숙한 사회에서 언제나 나의 선택은 망설일 것도 없이 낮음이었다. 낮아짐에 대한 나의 선택은 나의 부족함과 자기 부족을 아는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지만 수년간의 조직생활을 바탕으로 볼 때 낮아질 때 비로소 사람과 성취가 내게로 오는 것을 수 없이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니 결국 세상의 모든 낮은 것은 위대하다는 생각에 미쳤던 것이다.



나는 아이의 낮은 시선이 찾아내는 일상의 풍경, 엎드릴 때 비로소 담을 수 있는 완벽한 한 컷, 몸을 낮추고 겸손에서 시작하는 차원이 다른 싸움 이러한 것들이 세상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높은 곳보다 낮은 곳에 더 많이 머물렀던 나는 그래서 오늘도 세상 모든 낮음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뒤꿈치를 들어 스스로를 빛낼까 우려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 그렇게 살다 보면 함께 웃을 수 있는 날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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