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한 일곱번째 여행지 | 호주 시드니 #1
이번 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살아도 되나? 목 뒤가 서늘해질 때가 있다. 내가 겪어온 '어제'들이 날아가 버린 날들이 아니라 몸에 배이고 스미는 날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난 이후로 줄곧 시간을 써왔구나, 나는 오래되었구나, 인생은 낡았다!
롱블랙도 두 잔 시켰다. 롱블랙은 에스프레소에 따뜻한 물을 섞어 마시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아메리카노와 비슷하다. 처음엔 이름이 근사해서 감탄했다. 내 멋대로 '긴 긴 밤'이라고 의역도 해봤다. 긴 긴 밤 한잔이요! 얼마나 멋진가? 밤을 한 잔 마시는 시간이라니. 커피 속에 기다란 검정도, 기다란 기차도, 기다란 밤도 넣어보며 홀짝였다. 이름이 중요한 법이다. 무엇이든 호명하고, 불러주고, 사랑해주는 순간 빛나게 된다.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中
호주를 여행지로 선택한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몇 년 간 모은 마일리지로 왕복 프리티켓을 끊을 수 있는 범주에 호주가 있었고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기에 너무 타이트하지 않으면서 도시의 편의성과 대자연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에서였다.
여행기간 내 머물 숙소와 비행 티켓만 끊어 놓은 채 다른 것은 준비하지 못하고 출국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떠나기 이틀 전 현지 여행사를 통해 거리가 있어 직접 이동이 어려운 몇 곳의 가이드 투어를 가까스로 신청해 두었더랬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의 휴가를 내고 앞 뒤로 붙어있는 주말을 포함하니 총 9일간의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되었다. 유난히 분주했던 한 주가 지나고 여름 내 뜨거웠던 태양이 사그라들 즈음 여름의 끝에서 지구 반대편 호주의 겨울로 향했다.
특별히 꿈꾸어왔던 여행지는 아니었으나 한 번쯤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곳. 호주를 떠올리면 그려지는 캥거루와 코알라 오페라하우스 푸른 잔디가 넓게 깔린 공원 같은 것들을 상상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는 코알라와 캥거루를 만나러 간다는 말에 설레어했고 그림을 그리고 뽀로로를 보고 이따금씩 나오는 기내식을 먹으며 긴 시간을 제법 잘 견뎌주었다.
시드니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시드니에 한 달간 머물었던 시인의 에세이를 읽었다. 책을 읽는 사이 시인의 눈으로 적어낸 달링하버와 롱블랙 그리고 호주 사람들의 여유로운 일상이 궁금해졌다. 시인이 묘사한 풍경이 너무도 생생해서 어서 빨리 시드니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생각할 즈음 비행기가 착륙했다.
이상했다. 고단했던 일상에 지쳐 특별한 기대감이나 낯선 곳이 주는 두려움, 긴장감 조차 없이 시작한 여행이었는데 시드니 공항에 내리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한겨울 이라지만 한국의 늦가을 마냥 청량하고 수줍은 시드니의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제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글과 사진 | B구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