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한 일곱번째 여행지 | 호주 시드니 #2
시드니 공항에 내리자마자 외곽 투어를 위해 신청해 둔 가이드 아저씨를 만나 Bondi Beach로 향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10시간의 비행으로 조금 피곤함을 느꼈던 나는 '아 여기가 본다이 비치구나' 했다. 여행의 시작부터 아이가 감기에 들까 봐 걱정하는 나와 달리 매튜는 아이에게 갖은 포즈를 주문해가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특별히 바다색이 유난히 예쁘다거나 이래서 본다이 본다이 하는구나 하는 감흥은 없었다. 매튜의 모자가 계속해서 바람에 날아다녔고 모자를 주우러 이리저리 뛰어다닌것이 본다이와의 첫인사였다. Dudley page 가서야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시내를 보며 그제서야 얌전해진 바람에 들숨과 날숨 사이 시드니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시드니로 떠나오기 전 상상했던 푸른 잔디가 정말로 눈 앞 가득 펼쳐져 있었고 아이는 제 세상을 만난 듯 신이나 잔디 위를 뛰어다녔다. 산책 중이던 불독 강아지 한 마리가 다가와 아이 앞에 물고 있던 공을 내려놓으며 던져 달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강아지와 놀기에 익숙한 아이가 공을 던져주자 불독이 다시 공을 물고 오길 여러번 반복했다. 고맙게도 파란 눈의 할머니는 미소 띤 얼굴로 오래도록 두 친구가 노는 것을 기다려 주었다.
가이드 아저씨와 함께 마지막 코스로 갭팍이라 불리는 Gap Bluff & Watsons bay로 향했다. 전망대로 오르는 길을 산책하고 내려오니 이 곳 저곳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는 시드니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가 공평하게 즐기는 햇살 아래 시드니 사람들의 여유로운 일상이 흘러가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가이드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호주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이 곳에서의 삶을 궁금해하며 살기 어떠냐고 많이들 물어오세요. 요즘은 호주 이민이 예전처럼 쉽지 않아 쉽사리 이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제가 쭉 같이 다니며 아이가 노는 걸 보니 이 아이는 이런 곳에 살면 정말 좋을 것 같네요."
"저도 한국에 있을 땐 앞만 보고 달리며 사는 삶을 살았는데 아이들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직장, 지위 이런 것들을 다 내려놓고 이민을 결심하게 됐거든요. 결과적으로는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자연 속에서 뛰놀고 충분히 여가를 즐기며 살기엔 이만한 곳이 없어요. 혹시 생각이 있으시면 진지하게 고민해 보세요. 지금부터 준비하면 10년 이내에는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오지랖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허허."
시드니 아이들 틈에 섞여 신나게 잔디 밭을 뛰놀던 아이가 인상 깊었는지 말을 아끼던 아저씨가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 차가 숙소에 도착했다. 시드니에서 멜버른으로 다시 시드니로 여행을 하는 내내 이따금씩 아저씨가 전해준 말들이 마음속을 날아다녔다.
긴 비행 후 도착하자마자 시외 투어를 다녀와서인지 숙소에 오자마자 약속이 나한 듯 다 같이 뻗어버렸다. 4시간쯤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다행히 아직 어두워지진 않은 오후였다. 좀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시드니에 온 첫 날을 이대로 보낼 순 없다 생각하며 노곤한 몸을 일으켰다.
거리로 나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퀸 빅토리아 빌딩. 꼭 무엇을 사지 않아도 건물 자체를 즐기기에 충분한 고풍스러운 내부를 가진 QVB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견고하고 멋있었던 건물이었다. 퀸 빅토리아 빌딩과 차이나타운을 지나 드디어 이름마저도 달콤한 달링하버에 닿았다.
달링하버에서 조금 걸어 해 질 녘 푸른 하늘과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펼쳐진 하버브릿지를 마주하니 지금 여기, 시드니에 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은 풍경 속에서 아이도 신이나 광장 이 곳 저 곳을 뛰어다녔다.
조금 더 걸어가니 오렌지를 깎아놓은 모양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졌다는 오페라하우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오렌지를 잘라 늘어놓은듯 여러 각도에서 보아도 다른 모습이 다채로운 건물이었다. 광장 앞 편에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아코디언을 연주하기도 하며 저녁 풍경을 더욱 로맨틱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달링하버에서 오페라하우스까지 아주 천천히 걸으며 애틋한 풍경을 만끽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멜버른에서 돌아와 마지막으로 머문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하루도 계속해서 아침 저녁으로 이 곳을 찾았다. 시드니 사람들이 애정과 자부심을 갖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고 아름다워 자꾸만 눈에 밟히는 풍경. 달링하버를 걷는다는 것은 당신이 지금 시드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과 사진 | B구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