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의 발견도서, #박완서
박완서 선생님이 떠나신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홍대 땡스북스를 방문했다가 발견한 선생님의 5주기 대담집을 보고서 책과 책을 쓰는 일에 매료를 느낀 지난 날의 나를 떠올려 보게 되었다. 4평남짓한 조그마한 회사기숙사 책방에서 그녀의 책을 읽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일이 기억난다. 그리고 나도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보았던 것이 지금의 이 블로그를 쓰게 만들지 않았을까.
언제가는 한 번 해야 했던 이 글을 이번 달 '월간서재'를 핑계삼아 그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에게 다가왔던 그녀의 글들이, 이 글을 읽는 분에게도 전해질 수 있길 바라며 말이다. 이번 2월의 발견도서는 바로 #박완서 이다.
2월의 발견책
#1.제목보다 다른 단편이 더 매력적인, <친절한 복희씨>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의 주인공들은 대개 50년대 전후의 젊은시절을 보내며 척박한 삶을 살았고 열심히 자식들을 키워 결혼시켰으며, 이제는 손자 손녀들을 돌보며 혹은 은퇴해서 노후의 생활을 하고 있는 6,70대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을 쓸 때의 박완서 선생님도 70대 후반의 노인이었다. 아마 그녀는 노년기로 접어들면서 쌓았을 내면적 통찰과 세상사의 이해, 관점과 지혜가 피력되는 문학적 공간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친절한 복희씨> 속에 수록된 단편 중 사실 나는 '그리움을 위하여(현대문학 2001년 2월호)'와 '거저나 마찬가지(문학과사회 2005년 봄호)' 같은 작품이 더 좋았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잘 드러나는 평범한 사람의 알량한 우월감이 친근했고, '거저나 마찬가지'와 같은 단어를 해학적으로 나타낸 문체도 나에겐 너무 사랑스러웠던 것 같다. 물론 '친절한 복희씨'이 아닌 '그리움을 위하여'나 '거저나 마찬가지'를 표제로 했다면 책은 덜 팔렸을테지만 말이다.
[이 구절을 찾아봐]
나는 동생에게 항상 베푸는 입장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상전의식이지 동기간의 우애는 아니다. 상전의식이란 충복을 갈망하게 돼 있다. 나는 상전의식을 포기한 대신 자매애를 찾았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도 춥지 않은 남해의 섬. 노란 은행잎이 푸른 잔디 위로 지는 곳, 칠십에도 섹시한 어부가 방금 청정해역에서 낚아 올린 분홍빛 도미를 자랑스럽게 들고 요리 잘하는 어여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이 있는 섬, 그런 섬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그리움이 샘물처럼 고인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릴 것 없이 살았음으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그리움을 위하여' 중)
#2.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박완서만의 대답, <노란집>
제목과 일러스트가 따뜻해서 서슴지않고 읽어 보게 된 이 책의 주제는 결국 '인생에서 사랑받은 기억'이다. 평생의 삶은 결국 내가 살아온 날동안 사랑받은 기억의 나열일 것이다. 나는 왜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다는 그 사소한 기억을 재빨리 떠올리지 못할까. 어린시절의 내가 충분한 사랑이라고 만족해보지 못해서일까, 그래서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노년문학이라는 장르를 남기게 된 그녀의 글은 담담하면서도 스며드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그녀만이 가진 삶에 대한 정의와,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답을 독자에게 슬며시 전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킨포크야 말로 그녀처럼 살다간 삶이 아닐까 한다. 허세로움없이 하루를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대범했던 한 여인의 글쓰는 삶이 내가 그렇게도 갈망한 '글 쓰는 킨포커'의 삶이었을지 모른다.
[이 구절을 찾아봐]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반추하는 건 주로 사랑받은 기억이다. 나는 문명과는 떨어진, 농사짓고 길쌈하고 호롱불 켜고 바느질하고 사는 산골 벽촌에서 태어났다. 물질적으로 넉넉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버지를 여의었으니 요샛말로 하면 결손가정이었다. 부족한 것 천지였다. 넉넉한 건 오직 사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움받거나 야단맞은 기억은 없고 칭찬받고 귀염받은 생각밖에 나는 게 없다. 그게 이른 새벽 잠 달아난 늙은이 마음을 한없이 행복하게 해준다.
현재의 인간관계에서뿐 아니라 지나간 날의 추억 중에서도 사랑받은 기억처럼 오래가고 우리를 살맛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건 없다.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일 뿐, 이만하면 됐다 싶은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게 곧 성공한 인생이다.
#3.그 때, 아니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이 책을 읽으면서 2월 월간서재의 테마는 #박완서 로 정했다. 이 책은 그녀의 딸인 호원숙씨가 그녀와 인터뷰를 했던 사람들과 그녀가 남긴 음성기록을 바탕으로 그녀를 기억하는 글이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어깨가 으쓱해지는 게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그녀가 살았던 돈암동과 가깝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이다. 물론 그녀에게는 성북경찰서가 아픈 상처로 남았겠지만, 사실 그녀의 작품에서 나온 돈암동이야기는 행복한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그녀가 걸었던 성북천을 걸으면, 나도 그녀가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나는 그녀의 이름, '완서'에 느릴 완(緩)과 천천히 할 서(徐)를 붙여본다. 참 그녀다운 이름같아서 말이다. 이 책은 느리고 천천히 읽기를 추천한다. 그녀가 말하는 듯한 속도로 말이다. 표지가 참 따스해서 책장에 꽂아두고 싶지 않은 책. 우리 모두가 참 아끼던 작가, 선생님, 엄마인 소설가 박완서님을 그리워해 본다.
[이 구절을 찾아봐]
"소설에는 누추한 생활을 뛰어넘는 힘이 있어요. 시골뜨기로 서울 명문학교에 입학한 나는 아이들 틈에서 촌티가 았고 3학년 때까지는 공부도 못했어요. 그런데도 열등감을 이길 수 있었던 까닭은 내가 어머니에게 듣고 책으로 읽어 수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였어요. 난 그애들이 모르는 세계를 알고 있었고 이야기를 해보면 걔네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꼈죠."
소설가란 숙명적으로 그런 것들을 기록해야만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선생의 작품이 주는 감동도 바로 거기서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런 순간들을 경험할 수 밖에 없을 테니까. 아름다웠던 모든 것들이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게 되는 순간 말이다. 모든 독서의 체험은 그게 얼마나 절망적인 현실인 동시에 매혹적인 환상인지 깨닫는 순간에 비롯할 것이다.(소설가 김연수)
에필로그
마냥 소설가가 되고 싶은 꿈은 그녀의 책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나도 이렇게 쓸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보게 된 작가가 바로 박완서 선생님이다. <그 많던 싱아는 어디로 갔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게 있었을까> 부터 시작해 선생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그래 이렇게 가슴으로 들어오는 글을 써야지'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글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그녀처럼 마흔에 홀연히 등단하게 될지 어찌 알겠는가. 지금처럼 책을 읽어나가며 조금씩 끄적이면서 글이 쓰이는 삶을 살아내는 수밖에.
* <도심킨포커의 월간서재>의 모든 도서는 글쓴이가 모두 읽고 난 후 소개합니다.
* <도심킨포커의 월간서재>는 매월 21일에 발행(함을 목표로 하지만 간혹 늦어지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