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리 Feb 13. 2021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일의 기쁨과 슬픔>

밀레니얼 작가의 소설에 만난 '일 하는 여자들' #3

안녕하세요?  일 하는 여자들의 북클럽 <19호실로 간 여자들> 책지기 볼리입니다. 지난달에 이어 2020년의 북클럽 마지막 주제인 밀레니얼 작가의 소설에서 만난 '일 하는 여자들'의 마지막 책인 <일의 기쁨과 슬픔> 북클럽이 진행되었습니다. 밀레니얼 작가란 1981년부터 1996년 출생한 여성 작가 중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책을 골랐답니다. 이번 달 북클럽장인 미뇽의 선택으로 장류진 작가의 단편소설 모음집인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이번 테마 마지막 독서모임을 진행했습니다.

*1월 북클럽은 구글밋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미뇽님이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일하는 것이 나만 힘든 것일까'라는 고민이 될 때가 있었는데 그때 제목에 혹해서 구매했던 책이라고 해요. '나만 일이 힘든가', '나만 회사 다니는 것이 이렇게 권태로울까', '일을 하는데 왜 무기력해질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이 책의 제목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다양한 고민들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는 걸 알게 돼 이 책을 통해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고 해요.




이번 달 19호실엔 누가 왔나요?

클럽장 : 미뇽
방문자 : 볼리, 앨리, 크런치


이 책을 어떻게 읽었나요? 어떤 단편이 가장 좋았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크런치 : 작가가 90년대생 회사원 작가라서 그런지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것 같아요. 단편 속 <일의 기쁨과 슬픔> 이 재밌더라고요. 현직자들이 충분히 일어날 수 일이지만 글로 적지 않는 소재에 대해서 생생함이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업계를 벗어나면 친근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새롭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 책에서 생소한 IT 업계의 특성을 이야기로 잘 담고 있어 더 재미있었어요.


앨리 :  저도 <일의 기쁨과 슬픔>을 재밌게 읽었어요. 회사가 위치한 곳이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판교 테크노밸리인데 대표가 하자고 해서 굳이 영어 이름을 쓰는 것, 직업이 기획자다 보니 개발자와 커뮤니케이션할 일이 많은데 주인공이 커뮤니케이션 중 제가 겪은 일이 떠올라 더 재밌게 느껴졌어요. 특히 표지가 NC소프트 앞이라 더 공감됐어요.


미뇽 : 말씀하신 <일의 기쁨과 슬픔>도 좋았지만 <탐페레 공항>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나중에 해야지 하고 미뤄놨던 일을 꺼내서 하는 그 모습이 요즘의 제 모습처럼 느껴졌어요. 퇴사하고 집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되돌아볼 시간이 많아졌어요. 개인적으로 <후쿠오카 가이드>가 몰입감이 가장 좋았어요.


볼리 : <잘살겠습니다>가 가장 첫 번째였는데 네이트 판을 읽는 듯했어요.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제가 과거에 일했던 스타트업에서 겪었던 말들과 행동들이 떠올라서 너무 재밌었어요. 그리고 <도움의 손길>에서 가사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어요.




오늘은 장류진 작가의 단편 중 두 작품만 이야기 나눠보려 해요. 바로 <잘 살겠습니다>와 <도움의 손길>인데요. 책 속의 내용과 함께 이어지는 질문을 이어나가 볼게요. 


p.23_언니랑 내 사이는 축의금 오만 원 정도의 사이였다. 딱 기본 금액. 나는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해 오만 원 선에서 살 만한 게 있나 둘러봤다. 딱히 끌리는 게 없었다. 한참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문득, 이걸 왜 내가 검색하고 있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부아가 치밀었다. 돈으로 주기 싫으면 주지를 말든가. 굳이 선물을 하고 싶으면 자기가 센스 있게 오만 원 한도 내에서 적절한 선물을 알아서 골라 오든가. 고민해서 적당한 걸 고르는 것도 일인데 그걸 왜 나한테 외주를 주고 있지? 나는 홧김에 쇼핑몰 창을 다 닫아 버렸다.
p.28_"빛나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 원을 내야 오만 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 이천 원을 내면 만 이천 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 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에비동에 새우가 빼곡하게 들어 있는 건 가게 주인이 착해서가 아니라 특 에비동을 주문했기 때문인 거고, 특 에비동은 일반 에비동보다 사천 원이 더 비싸다는 거. 월세가 싼 방에는 다 이유가 있고, 칠억짜리 아파트를 받았다면 칠억 원어치의 김장, 설거지, 전 부치기, 그 밖의 종종거림을 평생 갖다 바쳐야 한다는 거. 디즈니 공주님 같은 찰랑찰랑 긴 머리로 대가 없는 호의를 받으면 사람들은 그만큼 맡겨놓은 거라도 있는 빚쟁이들처럼 호시탐탐 노리다가 뭐라도 트집 잡아 깎아내린다는 거. 그걸 빛나 언니에게 알려주려고 이러는 거라고, 나는."


<잘 살겠습니다> p.23에서는 직장동료와 '축의금 5만 원 정도의 사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표현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의미를 어떻게 해석했고, 실제로 그런 관계를 경험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크런치 : 회사 동기 중 결혼을 가장 먼저 했어요. 그래서인지 축의금을 5만 원보다 더 많이 주는 사람이 많았어요. 오만 원을 주신 분은 인사 치로 내는 데 의의를 둘 뿐 거의 오시지 않았어요. 식사비가 오만 원 정도 드는데 돌아보니 안 오고 오만 원을 준 사람들이 고맙더라고요.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돈을 보낸 경우도 있었어요. 청첩장을 안 드렸는데 돈을 보내신 분을 보며 제가 그분의 경조사를 챙 길일이 없는 연세가 있으신 분이었는데도 축의금을 보내셔서 그분처럼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났어요.


앨리 : 작년에 결혼을 해서 코로나 때문에 오실 분들만 오신 상황이었어요. 꼭 받으실 분들만 면대면으로 청첩장을 돌렸어요. 그러다 보니 인사치레로 축의금을 보낸 사람이다라는 느낌을 덜 받았어요. 예전 직장에서 팀장님 부친상에서 조의를 얼마나 할지 고민을 했었고 5만 원을 해야 하나 10만 원을 내야 하나 고민했거든요. 개인적으로 부의금은 더 많이 내야 하는 주의인데 그때 같이 일하던 대리님이 모두 똑같이 3만 원만 내자고 하셔서 조금 황당했던 기억이 있어요. 부의금도 사회적인 관계에 따라 눈치껏 내야 하는 것 같아 아쉬웠어요.


볼리 : 첫 회사에 입사한 후 경조사가 너무 많고 의례적으로 축의금, 부의금을 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어요.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돈을 내야 하지?' 란 생각이 절로 들었죠. 당시 동기에게 조언을 구하니 회사에서 의례적인 관계는 3만 원만 내고(아마도 당시의 물가는 3만 원 사이었나 봐요), 동기는 5~10만 원을 내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렇게 냈었어요. 결혼하고 나면 축의금 때문에 인맥 정리가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실제로 그렇게 정리당한 경험이 많아요. 단순히 '돈'이 아니라 그 속에 복잡 미묘한 관계와 감정이 숨이 있는 것이죠. 이 관행이 없어지면 좋겠지만 적어도 본인 결혼식과 장례식에만 그치면 좋겠어요. 주변 인물의 경조사와 돌잔치 같은 건 너무 소모적인 것 같아요.


미뇽 : 전 회사에서 매일 봐야 하고 일을 함께 해야 하는 사이라면 3만 원, 뭔가 전우애가 생겼다면 5만 원 이상을 해요. 입사 시기 비슷했던 자기일 남의 일 구분이 확실한 직원의 결혼이 다가오던 날이 있어요. 평소 그녀는 팀의 경계 밖의 일에 관심이 없어 다른 동료들이 섭섭해하던 일이 있었는데, 다들 마음에 쌓아뒀다가 그녀의 결혼식에서 터트린 거죠. 이사님 대표님 외 모두 불참, 축의금 3만 원 전달했던 에피소드도 있어요. 축의금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경계를 보여주는 매개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빛나 언니가 몰랐던 '모든 것에 대가 없는 호의가 없다'가 진실이라 생각하시나요? 소설 속 표현에 따르면 '칠억짜리 아파트를 받았다면 시댁의 종종거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앨리 : 저희 부부가 결혼할 때 부모님께 금전적인 도움을 받진 않았지만, 지인의 상황을 보면 받으면 받은 만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친정을 보면 외할아버지가 엄마의 학비를 지원해주셨는데요. 그거 때문에 외할머니가 편찮으실 때 간병인으로 제가 지목되더라고요. 엄마의 학업엔 대가가 필요했던 거죠. 그리고 그 대가의 피해는 저희 남매 중 제게로 온 거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베푸는 게 마음이 편한 편인데, 조직에서는 관계의 중요한 곳이다 보니 최대한 공정하고 분배하고 더치페이를 유지하려고 해요.


크런치 : 만약 부모로부터 7억짜리 아파트를 받는다면 종종거림을 해야 한다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해요. 주변의 경우  많이 받을수록 부모와 종속적인 관계가 계속되더라고요. 현실적으로 그 돈을 버는 게 쉬운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자발적으로 하는 건 아니니까 좋은 감정으로 하진 못하겠죠.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1:1로 갈 수밖에 없지만 직장 상사랄지 선배에게선 받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대신 저도 제 후임이나 후배에겐 더 베풀게 되죠. 이게 자연스러운 관계의 현상이죠. 최근에는 제가 선배나 교수님께 식사를 사드리겠다고 해요. 베풀 수 있을 때 베풀자는 마음으로 말씀드리니 좋아하시더라고요. 결국 태도의 문제라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한테 돈을 받더라도 진짜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면 주시는 입장에서도 좋은 마음이지 않을까요?


볼리 : 이런 문제에 대해 저는 오래 생각해왔어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편이라 독립이나 결혼할 때 최대한 부모님 도움을 받지 않았죠. 요즘처럼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시기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요청드릴 것 같아요. 그만큼 종종거림을 감당할지라도요. 그러지 않기 위해 저는 재테크 공부,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학습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 스스로 경제적 자유를 누려야 싫은 소리 듣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기브 앤 테이크'도 결국 기버가 행복하려면 테이커의 태도나 주고받음이 중요하죠. 누군가에게 베풀어도 그게 돌아오지 않는 일방적인 베풂이라면 언젠간 멈추지 않을까요? 저는 이게 작은 자본주의에 대한 모습 같아요. 요즘은 제가 베푼 것에 대해 성의 있는 반응을 해주는 사람을 더 챙기게 되더라고요.


미뇽 : 제가 호의를 베풀 땐 대가를 바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진심으로 서로 마음을 여는 호의의 행동들에 대해 반응이 없다면 섭섭해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반응이 없다면 어쩔 수 없다고 잊어버리지만요. 사실 요즘 같은 부동산 과열 시기에는 양가 부모님께서 집을 사준다고 하시면 삼시세끼 밥 차리고 빨래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웃음) 아무것도 받지 말고 아무것도 해드리지 말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대잖아요. '받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받고, 드릴 수 있는 만큼 드리자'가 서로 좋지 않을까요? 그래서인지 요즘 방영 중인  <며느리기>에서 사린이는 저 아파트를 어떻게 마련했을지 궁금하더라고요.




이번에는 <도움의 손길> 단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려고요.  가사도우미와 겪는 일에 대한 에피소드인데요. 먼저 제가 고른 문장부터 소개드릴게요.
p.142_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충분하다거나 여유롭다는 기분으로 살아본 적 없는 삶이었다. 삼십 대 중반, 이제야 비로소 누리가 된 것들은 남은 인생에서도 계속 안정적으로 누리며 살고 싶었다. 이십 평대 아파트는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지 않는다. 그것이 현명한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p.154_그 후로 이주를, 아주머니께 마지막 기회를 드린다는 생각으로 기다렸다. 더는 참기 힘들었다. 아주머니께 다음번부터는 오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려고 마음먹었다. 몇 줄을 참고 참아왔던 말이었다. 그녀는 금요일에 격주가 아니라 매주 와달라는 집이 있어서 우리 집에는 더 이상 못 오겠다고 했다. 분명히 아주머니를 그만두게 하려고 했었는데, 내 입에서는 왜인지 "저희 집도 매주 오셔도 돼요. 다음 주부터 매주 오세요"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이 에피소드의 화자의 말에서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한 30대 부부의 고민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임신과 자녀 양육을 고민할 때 어떠한 생각과 감정을 가졌는데 이야기해봐요.


크런치 : 저는 '그랜드 피아노'로 비유하는 게 혹독하지만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구절을 보다 볼리 님이 생각이 났는데요. 아이를 낳을까 말까 고민할 때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떠올랐거든요. 아이를 키운다는 게 경제적, 감정적 소모가 크다 보니 경제적 고민이라도 덜 수 있는 환경에 놓인 다면 고통의 무게는 조금 덜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를 대신 돌봐주시고 가사를 봐주시는 분이 있다면 훨씬 나을 테니까요.


볼리 : 크런치님 말대로 이 내용은 정말 제 생각 같았어요. 아이를 낳기 전 아이를 낳지 않은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책을 많이 읽어 봤어요. 아이를 가진다면 경제적인 여유와 양육에 대한 가치관이 필요하단 것을 깨달을 수 있었죠. 스스로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특히 저는 IMF 키즈라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아이가 느끼게 되는 부모의 고통을 직접 겪었거든요. 제 아이에게 그런 두려움을 직접 느끼게 해 주기보다는 위기를 이해하고 대비하는 방식을 알려주는 부모가 되고 싶어요. 지금은 아이를 키우면서 현실적으로 와 닿는 것은 아이가 원할 때 사줄 수 있는 횟수가 달라지겠다는 점이에요. 저는 삼 남매로 커서 뭐든 늘 경쟁이 있었는데 저희 아이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정서적인 에너지도 한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어 제가 어린 시절 충분히 갖지 못했던 사랑을 저는 한 명에게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앨리 :  저희 부부는 임신 준비 중인데요. 비록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고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상황도 아니지만,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정도까지만 최대한 가져보기로 했어요. 만약 안되면 반려견과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해요. 난임시술이라는 게 여러 번하기는 정신적인 고통이 크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가능한 아이가 있다면 좋겠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가능한 많이 낳으면 좋겠어요. 빚만 없는 상태라면 아이한테 풍족하게 못하더라도 둘 이상은 낳고 싶어요.


미뇽 : 현재 임신 중인 상태라 제가 긍정적이지 않으면 아이와 함께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무게로만 느껴졌다면 지금은 어떤 원동력이 되어라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출산 후에 재취업을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하고 사이드 잡을 위해 스토어팜을 개설하기도 했어요. 열심히 사는 엄마로 보이고 싶어서요. 그리고 멘털 관리를 위해 인스타그램을 그만뒀어요. 제 상황과 타인과 비교되는 삶이 싫어서요. 지금은 조금 더 제 자신에게 집중하려고 해요.



이 책의 묘미는 가사도우미와의 미묘한 감정을 볼 수 있다는 점인데요. 특히 가사나 육아 서비스를 쓰다 보면 분명 내가 '갑'의 입장이지만, '을'의 상황이 되어 일이 진행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었는지 그때 어떻게 대처하셨는지 이야기 나눠 봐요.


크런치 : 신혼 때는 도우미를 쓸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도 집안일이 서툴러서 몇 년 전부터 <대리주부>라는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쓰고 있어요. 그때부터 도우미를 써보면 집도 작고 살림도 잘 못하다 보니 갑질을 당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좋은 도우미를 만나야 내가 편하니까 항상 잘해드렸어요. 낮은 자세로 임하고 항상 선생님이라고 불러 드리고 '와주실 수 있으세요?' 하고 오시면 커피부터 타드리고, 점심식사도 준비해두면 청소를 더 열심히 해주시겠지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돈 주고 인력을 고용하는 건 그대로 누릴 순 없는 것 같아요. 상대를 편하게 해 줘야 상대와 계속 함께 할지 말지를 정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구를 고용할 때 예의를 갖춰야 내가 편하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볼리 : 아이를 낳아보니까 모든 일에 '을'이 되더라고요. 가사 일이야 다신 안 보면 되는데 산후도우미는 안 볼 수가 없으니 안 맞으면 너무 힘들더라고요. 이 부분도 케바케인데 원래 살림을 좀 하시던 분은 자기 스타일대로 일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싸우고, 또 살림을 잘 못하는 어떤 분은 살림을 잘해주셔서 너무 좋지만 그렇지만 산후도우미는 아기를 잘 봐주시는 게 기본인데 우선순위가 바뀐 것 같아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불신과 불안이 있을 때는 의심이 마음을 후벼 파기도 했지만 내 아이를 돌봐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믿는 수밖에 없었죠. 다행히 별 일은 없었지만 최근 산후도우미나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나쁜 사건을 마주하면 부모로서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돌봄 서비스는 국가의 관리 감독이 더 철저해져야 하는 것 같아요.


앨리 :  저도 막상 아이를 낳으면 누군가에게 믿고 맡길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것 같아요. 막상 아이를 낳으면 남편과 번갈아가며 육아휴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회사에서도 그렇듯 믿고 맡길 수 없다면 결국 스스로 해야 하잖아요. 이런 부담 때문에 출산율도 점점 줄어드는 것 아닐까요? 그러다 결국 부모님께 그 돌봄의 책임이 간다면 고통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전가되는 것일 테고요.


미뇽 : 2021년부터 임신/출산한 사람에게 임신 바우처를 6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늘리고, 출산 지원금도 300만 원 지급한다고 해요. 분명 혜택은 느는데 사용자의 불안은 그만큼 해소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돌봄의 영역에서 일하는 분들의 교육과 처우를 개선해야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이 영역에 계신 분들이 여성이잖아요. 갑/을보다는 모든 여성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북클럽을 마무리하며...


세 번의 '밀레니얼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소설을 통해 일 하는 여성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비단 직장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과 주변인과의 관계 등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녀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우리의 삶을 비춰주는 젊은 여성작가들이 여성의 서사를 더 많이 담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즌을 마쳐답니다.


글.미뇽

편집.볼리



2021년엔 어떤 책을 다루나요?


2021년 <19호실로 간 여자들> 북클럽은 3월부터 진행할 예정이에요. 21세기를 사는 버지니아 울프를 위한 돈에 대한 공부와 글을 쓰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시즌을 기획 중에 있답니다. 그리고 온라인 북클럽으로만 진행할 예정이라 시간/장소에 제약이 많으셨던 분들도 쉽게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일정과 신청방법은 인스타그램으로 공지하고 있어요.(@i.am.bolie)

다음 북클럽에 참여하시고 싶은 분은 댓글이나 인스타그램 DM으로 문의하세요.


2019년 3월부터 일 하는 여자의 북클럽 <19호실의 여자들>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엔 이미 좋은 북클럽이 많지만, 지금 제게 필요한 북클럽은 일 하는 여자로서 느긋하고 단단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책과 사람이었거든요.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에서 주인공 수전이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위해 허름한 호텔 19호실에서 보내는 감정을 떠올리며, 매월 일하는 여자들이 모여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의 이야기 <코리안 티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