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작가의 소설에 만난 '일 하는 여자들' #2
안녕하세요? 일 하는 여자들의 북클럽 <19호실로 간 여자들> 책지기 볼리입니다. 11월에 코로나가 심해지는 바람에 12월로 5인 이하로 북클럽을 진행했어요. 지난달에 이어 밀레니얼 작가의 소설에서 만난 '일 하는 여자들'이란 테마의 두 번째 책인 <코리안 티처>로 북클럽이 진행되었습니다. 밀레니얼 작가란 1981년부터 1996년 출생한 여성 작가 중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책을 골랐답니다. 이번 달 북클럽장인 몰리의 선택으로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 4명이 대학교 내 한국어 교육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코리안 티처>로 올해 마지막 독서모임을 진행했습니다.
*12월 북클럽은 4인 이하로 마스크를 끼고 방역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 책을 고른 몰리는 우연히 검색하다 '고학력 비정규직'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와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해요. 어찌 보면 상충적인 단어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저희 밀레니얼 세대에서 각 대학에서는 외국인 학생을 유입하려고 한국어문화센터나 어학당이 생겨 엄청 붐을 일으키던 시기였고, 어학당의 한국어 교사들이 대학원까지 졸업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강사라는 이유로 임시 비정규직의 형태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라 오히려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것 같아요. 두 달만에 북클럽을 진행했던 터라 코로나 상황에도 반가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클럽장 : 몰리
방문자 : 미뇽, 볼리, 크런치
읽은 지 두 달 정도 지난 터라 제가 잠시 인물 소개와 함께 줄거리를 간단하게 설명해드릴게요.
이 책은 H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 강사 4명 선이, 미주, 가은, 한희라는 인물이 봄/여름/가을/겨울 학기에 겪은 성희롱 사건을 비롯한 고학력 계약직 여성에 대한 편견,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차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저는 계절별로 인물 이름이 매칭이 되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각 인물별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설명해드릴게요.
봄 학기 "선이" : 대학교 어학당 계약직 강사인 선이. 자신이 가르치는 베트남 노동자 학생 중 한 명이 SNS에 #코리안핫걸, #코리안프리티걸 등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사진을 몰래 업로드 한 사건이 발생함, 여기에 성적 불쾌감을 느낀 선이는 신고를 하려 했으나 계약직 신분을 잃을까 봐 주저하며 신고하지 못하게 됨.
여름 학기 "미주" : 능력 있고 똑 부러진 성격의 강사인 미주는 대학시절 남자 선배에게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음. 어느 날 미주의 반에 ‘니카’라는 학생의 보이시한 외모만 보고 남자라고 판단하여 의도치 않게 학생에게 성적 모욕감을 주게 되고 이런 행동을 한 자기 자신에게 충격을 받은 미주는 학교를 그만두게 됨.
가을 학기 "가은" : 예쁜 외모와 친절한 성격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강사인 가은. 가은을 좋아하던 일본인 학생이 있지만 좋지 않은 소문에 휩싸일 것을 염려하며 거리를 두던 가은에게 어느 날 둘 관계를 촬영한 동영상이 있다며 협박을 받게 됨. 결국 동영상의 존재는 없던 것이었으며 동료 강사의 소행임을 알고 충격을 받은 가은은 학교를 그만두게 됨.
겨울 학기 "한희" : 계약직 강사로서 연차가 꽤 쌓인 능력 있는 고학력 강사인 한희. 정규직 강사로의 전환의 고지가 눈앞에 보이지만 출산을 앞두고 학교 측에서 한희를 재계약을 꺼리는 모습을 보이자 한희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법정 소송을 감행함.
다들 이제 기억이 나시죠? 여러분은 어떤 인물의 서사에 가장 공감이 갔었나요? 그리고 이 책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말씀해주세요.
크런치
저는 선이라는 인물이 저와 성격이 비슷한 부분을 느꼈어요. 외국인 학생들에게 잘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되려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희롱을 당하는 장면에서 선이의 유연함으로 학생과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없었는지 의구심은 들었기에 마지막에 문제를 극단적으로 대처한 장면이 아쉬웠답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신분이 강사이지만 비정규직이기에 스스로 위축되어 있었을지 모르죠. 그런 선이에게서 유약한 모습이 느껴져 씁쓸한 기분도 들었어요. 한국 여성에게는 일종의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은데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착하다’의 기준이 선과 악이 아닌 자기주장 못하고 순응하는 여자로 치부해버린 다는 것에 있다는 거예요.
몰리
저도 선이에게서 가장 공감을 느꼈는데요. 크런치님의 의견에 덧붙여 마지막 장면에서 선이가 다시 학교로 돌아와 2주 간 중국 학생들의 문화체험을 담당하게 되고, 한강으로 놀러 간 학생들에게 사준 폭죽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어지게 되어 결국 선이는 화재의 범인으로 몰리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저는 선이가 화재가 결국 자신의 잘못임을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장면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본 적이 없는 선이라는 인물이 실패자로 이야기가 끝나버린 것 같아 허무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학교를 그만두고 난 선이가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무엇을 더 어떻게 노력해야 했을까’라 자책하며 결국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는 장면에선 요즘 젊은 세대들이 기회를 박탈당했을 때 느낄 감정이 공감되었어요.
미뇽
이 책은 소설이지만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실제와 같은 혼란을 느끼며 읽었어요. 특히 저는 한희라는 인물에 집중에서 읽었는데요. 한희가 쓴 논문 제목 ‘한국어에는 미래 시제가 없다’는 표현이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해주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건 마치 ‘고학력 비정규직 여자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볼리
저도 미뇽님처럼 출산을 경험한 유일한 주인공인 ‘한희’에게 공감이 갔어요. 특히 ‘결혼했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해?’라는 책 속의 질문을 저 또한 사회생활을 하며 들어본 적 있고, 스스로에게도 질문하기도 했거든요. 무의식 중에 이러한 성차별적인 말들이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음을 깨달았죠. 전반적으로 이 책의 주인공들의 모습은 과거에 없었던 것이 요즘 새로이 출현했다고 보기보단, 예전보다 불공정, 정의에 대한 민감도가 더 높아지고 젊은 층이 그것에 더 영민하게 반응하고 대처하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들이 사회에서 느낄 피로감과 상실감이 안타깝기도 해요.
오늘 모임에 참석하신 분들도 모두 대학을 졸업한 이후 석사를 고민하거나 이미 석/박사를 이수하신 분도 계신데요. 고학력 직장 여성이라는 과정을 왜 선택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편견이나 혜택을 경험했는지 이야기 나눠주세요.
볼리
막상 졸업을 해서인지, 지금은 석사는 '욕망의 허상'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질적으로 조직에서는 박사부터 제대로 된 경력으로 인정해주는 편이기에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해서 연봉이나 처우가 확연히 좋아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제 경우는 이학 학사에서 미디어 석사를 취득해서 하는 일의 분야를 확장하기 위해 선택했던 것이지만, 이 일을 위해 석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현장의 경험이 더 중요했죠.
저는 석사 과정 중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요. 소개팅을 할 때 상대방 분이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하니 공부를 더 할 것 이냐는 질문을 꼭 하시더라고요. 내가 이 분야에 대해 전문성을 얼마나 쌓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아쉬웠어요. 아무래도 본인이 학사인 경우 자신보다 공부를 많이 한 여성에게 부담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혹시 그 경제적 뒷받침을 결혼 후에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불안도 느껴졌던 것 같아요.
크런치
저는 석사에 이어 지금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요. 회사생활 5년 차에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상담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어요. 우선 이 분야의 공부가 저와 잘 맞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고요. 만약 공부를 안 했다면 그 시간과 돈을 다소 무의미하고 허무한 것에 소비했을 것 같아요. 특히 석/박사 공부를 하며 동기들과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무형의 자산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고, 나중엔 상담 자격증으로 제2의 커리어를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아이를 키우며 공부를 하고 있는터라 주변에서 직장생활과 육아, 그리고 공부까지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다행히 남편과 아이 모두 제 공부에 대해 이해와 협조를 해주고 있는 상황이고 아이가 잠든 후와 주말에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미뇽
저는 지방 대학을 졸업했기에 '인 서울' 대학원에 학력과 학벌을 높이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야 할지 고민해본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주변에 조언을 구했더니 그 분야에 대한 자발적인 학습 욕구가 아니라면 대학원에 들어가는 시간과 돈의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현업에서 실무 경험을 더 쌓기로 결정했고 실질적으로 제 커리어에 더 도움이 되었어요.
몰리
저도 미뇽님 말에 공감하는데요. 저를 증명하기 위해 조직에서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해냈지만 아직까진 학벌과 학위가 그 사람의 전문성을 입증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 현실이었어요. 그래서 석사과정을 두 번째 밟고 있는데요. 제가 일하는 분야에서 하고 싶은 공부라서 제 전문성이 쌓인다고 믿으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서 스스로 해냈다고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다만 저도 결혼 후 대학원을 진학했던 터라 경제적인 부분이나 시댁의 남편보다 공부하는 아내라는 약간은 불편한 시선을 조금은 느껴요.
오늘 고학력 여성의 직장생활과 학업에 대한 욕망에 대해 이야기해봤는데요.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을 고르며 마무리해볼까요?
크런치
p.47_선이는 학생들이 그런 단어를 배울 때 '부당하다'보다 '정당하다'가, '모욕적이다'보다 '감격스럽다'가 더 한국 생활에 유용한 단어라고 느끼기를 바랐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남녀나 지위의 차별 없이 모두에게 정당한 기회가 주어지길, 그리고 모욕적이고 좌절감을 느끼는 것 대신 긍정의 감정을 느끼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골랐습니다.
미뇽
p.223_이제 한희에게는 미래 시제가 필요했다. 온전한 미래가 필요했다. 의지에도, 추측에도 기대지 않는 하나의 완전한 사실로 존재하는 미래가 필요해졌다.
아이가 태어날 미래를 기대하는 한희처럼 고학력 여성의 직장생활의 미래도 밝길 바라는 마음으로 골랐습니다.
몰리
p.159_"뽑힐 때는 이유가 분명했거든요. 그런데 잘릴 때는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나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던 것밖에 없는데요. 제가 더 뭘 할 수 있었던 거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소설 속 여성의 삶을 읽으며 마음 한 켠이 답답해졌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한희의 다짐을 보고 이 사회에 각계각층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볼리
p.206_"결혼했는데 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해?" 여자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돈을 잘 못 버는 못난 남편을 두었다는 증거라는 듯이. 남편이 돈을 잘 번다면 여자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나의 능력보다 배우자의 능력이 높게 평가되는 시선에서 스스로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가 얼마를 더 버느냐, 덜 버느냐보단 내가 무엇을 위해 일하고 그 노동력의 값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물어주면 좋겠습니다.
북클럽을 마무리하며...
코로나 팬더믹이라는 위기에서도 일 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커리어와 삶, 그리고 독서를 놓치지 않고 1년을 지내왔어요. 때로는 일정 연기를 하고 온라인 북클럽으로 대체하고 규모를 줄여 진행해오면서 계속하는 그 힘을 믿기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동료와의 관계가 고민일 때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 '커리어의 확장이 필요할 때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 '밀레니얼 작가의 소설 속 일하는 여성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란 주제로 여러 책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참여하신 분의 이야기가 더해져 더욱 풍성한 독서 경험이 확장될 수 있었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인만큼 블라인드 북 교환 이벤트도 하면서 올 한 해 잘 마무리할 수 있어 감사한 북클럽이었습니다. 한 해 동안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려요.
글.몰리
편집.볼리
<밀레니얼 작가의 소설에서 만난 '일 하는 여자들'>의 마지막 책의 시간이 남아 있어요. 이번 북클럽은 미뇽님이 클럽장으로 진행해주시기로 했어요. 미뇽님이 고르신 책은 1986년생 소설가 장류진이 자신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입니다. 이 소설집은 8편의 단편 소설로 이뤄져 있는데요. 직장생활과 삶에 대한 밀레니얼 세대의 씩씩한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자신을 짓누르는 외부의 압력 아래서도 어느 몫의 자유와 행복만큼은 결코 빼앗기지 않는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 봐요.
책에 대한 소개와 일정은 인스타그램으로 공지하고 있어요.(@i.am.bolie)
1월 북클럽에 참여하시고 싶은 분은 댓글이나 인스타그램 DM으로 문의하세요.
2019년 3월부터 일 하는 여자의 북클럽 <19호실의 여자들>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엔 이미 좋은 북클럽이 많지만, 지금 제게 필요한 북클럽은 일 하는 여자로서 느긋하고 단단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책과 사람이었거든요.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에서 주인공 수전이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위해 허름한 호텔 19호실에서 보내는 감정을 떠올리며, 매월 일하는 여자들이 모여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다음 일정 안내] 1/30(토)
*일정은 변경될 수 있으며 인스타그램으로 공지하고 있습니다. 2021년 북클럽은 추후 재정비를 한 후 3월에 다시 돌아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