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많이 듣는 질문은 “How are you?”이다. 다양한 번외 편 들도 있다. 가령, “How’s going, mate.”, “ How are you doing?” 호주만의 억양으로 말이다. 그래도 결론은 영어권 나라에서 쓰이는 인사말로는 “How are you?” 가 정석이다. 영어를 꽤나 자연스레 구사한다고 생각했는데도, 호주에 5년 가까이 있으면서 이 문장이 내 입에서 직접 나오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단순한 인사말인데도 그 단순함에서 나오는 질문이 나에게는 참 복잡하게 다가왔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인데, 나는 이 단순한 질문에 몇 년 동안 나의 하루 구구절절을 설명하고는 했다.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이 있었다라던가. 그리고 내가 직접 상대방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는 것이 나에게는 어려웠다. 다른 말들은 그렇게 잘 알아듣고, 잘 사용하겠는데 어떻게 지내냐는 것에 적응하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처음에는 이 문장이 인사치레라고 생각해서 아마 문장의 의미에 대해 궁리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의미 있고, 고마운 마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인사치레, 예의를 넘어서 말이다. 과거의 나는 자신감이 없던 부분도 많았고, 나만의 삶과 나의 감정에 집중해 있었다. 그 하찮은 나의 자존심이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을 잊게 만들었고, 주위에 감사하는 순간도 그만큼 적었다.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우리 모두가 소중하다. 가끔 나의 감정에 매몰되어, 나 혼자만 상처 입은 존재처럼 군 적도 있다. 그러면 괜히 나의 시간만 아프다. 쳇바퀴처럼 돌아오는 고통의 굴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쉽게 나만 바라보고, 주위를 잊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누군가 곁에 다가와 오늘 하루 어떠냐, 오늘 좋은 시간 보냈냐고 물어본다. 가끔 나의 매몰되었던 감정의 순간들도, 분명히 상대방에게도 보였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구시렁거리고 있는 존재를 보고 있으면 나조차도 가까이 가기 싫은데, 그런 나의 과거에도 다가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도 나는 사람 많은 곳에 가면 힘들어보고, 사람 많은 곳에 살기 싫어하고, 사람들을 기피하는 것이 있다. 깊은 산 속이나 사람들 없는 척박한 호주의 오지에도 그리하여 살아남았다. 그래도 말이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주위의 사랑과 응원 없이는 나 혼자 잘 살 수 없다.
이 단순한 영어식 인사 표현에 철학적 의미가 들어 있다.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묻는다는 것이 소중한 만큼, 나 또한 그 고마움에 주위를 둘러보고 물어본다. 어느덧 자연스레 인사를 먼저 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의 비자가 3월 초에 만료될 시점, 매니저들과 우리의 비자를 연장해 보자는 이야기를 해봤다. 주말여행 이후, 우리는 이를 위한 통신사를 변경하는 등, 이것저것 필요한 일들을 보기로 했다. 매니저는 본인 일도 볼 겸하여, 왕복 4시간가량 운전해야 하는 마을 트립을 주최했다.
평소 입이 험한 매니저는 농담 식으로 영어식 욕을 아주 찰지게 구사하는 편이다. 그녀 덕에 나는 여태껏 들어보지도 못한 수위의 농담과 표현을 들어볼 수 있었다.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나는 아마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의 농담에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몰라 말이다.
평소,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면 조수석에 타기를 꺼려한다. 운전자의 이야기에 반응해야 하고, 계속 말을 해야 되는데 그런 대화를 이끌어갈 자신이 없었다. 가령, 상대방의 농담이 웃기지도 않는데 특정 사회적인 기대와 분위기로 인해 받아쳐야 되는데 적절하게 반응 못할까 봐. 그런 내가 그녀와 짧으면서도 긴 여정을 그녀 옆 조수석에서 해봤다. 그냥 그 분위기와 그 순간에서 나온 결정이라, 나의 안정적인 계획에서는 벗어났다.
무슨 일이든 나의 예상같이 된 적이 없다. 예상과 달리 그녀는 굉장히 차분히 본인의 이야기로 이끌어나갔다. 처음부터 그녀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예민하고 사적인 주제로 이루어졌다. 그녀의 과거 가정사, 그녀의 힘들면서 험난했던 전 남편의 이야기들. 그녀의 과거는 지금의 그녀를 봤을 때, 상상이 안 갈 정도로 어둡고 힘들었다.
신기하게도 나와 너무나도 달라 보이는 그녀를 보며, 마치 나의 과거를 보는 듯했다. 그녀의 과거가 아니라, 그런 그녀의 힘든 경험을 아무렇지 않게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게 오픈하는 모습을 보며 말이다. 나 또한 그런 순간과 시간이 있었다. 지금의 내가 과거에 연장선으로 이어져, 처음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 나의 과거를 이야기하며 나는 이런 힘든 일들이 있었다고.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르지만, 나에게 이런 이야기가 있었어. 힘든 일들을 나는 극복했어. 그리고 그녀는 이제 막 성인이 된 그녀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본인을 기가 막히게 닮았지만, 본인과는 다르게 수많은 힘든 여정 없이 자란 그녀가 순수해서 걱정이라 말했다. 너무 순수해서 사람들을 잘 믿고,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나는 본인 딸을 걱정하는 그녀를 보며, 그녀 또한 참 순수한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을 우리에게 서스름 없이 심지어 재미있는 경험담으로 이야기하는 그녀를 보며, 이 사람 참 순수한데 말이다. 그녀의 마음에 고마웠다. 같이 일하는 사람을 떠나 이렇게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말이다. 그녀야말로 사람을 참 좋게 보고, 믿는데 말이다.
그런 그녀는 20년 전부터 당뇨가 있어 단 것을 많이 먹지 못하지만, 단 것을 참 좋아한다고 한다. 아쉬우면서도 다행인 것이 그녀의 파트너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다. 아쉬운 점은 취미생활이던 베이킹이 이제 만들어도 나누어 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 다행인 점은 유혹거리가 없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
근래에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다. 장은 단 음식, 디저트를 참 좋아한다. 어지간하면 가리는 것 없이 다 좋아하지만, 디저트를 보며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이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간다. 나는 단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젤리나, 사탕은 먹을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직접 구매하거나 만드는 정도까지의 애정은 없다. 주변 친구들이 케이크, 초콜릿 사진을 보며 좋아하더라도 나는 그들의 그런 욕구가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 나는 단 것과 짠 것 중에 선택하라 하면 망설임 없이 짠 음식이다. 감자튀김을 좋아하고, 짭짤한 과자를 찾는다.
음식은 우리의 당시 욕구, 그리고 감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나의 몸에서 원하는 느낌을 우리는 음식에서 보충한다. 내 인생에서 단 음식이 당기지 않았던 것은 어찌 보면 건조하고, 실용적인 삶을 원했던 걸까. 디저트를 보면 참 앙증맞고, 귀엽고, 아름답다. 많은 설탕과 버터를 함유하고 있어 당연히 우리의 건강에 이롭지도 않다. 그런데 그런 디저트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면, 순수함이 느껴진다. 그저 그 달콤함에 행복해하니.
내가 단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착한 딸이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어른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우리 딸은 군것질도 안 하고, 건강한 입맛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난다. 이 말이 나에 대해 엄청난 장점처럼 느껴졌고, 칭찬처럼 들려 따로 군것질에 대한 갈증이 일어난 적도 없었다.
장을 보면 좋아하고 싶은 것 좋다고 말하고, 아쉬운 것 없이 장난도 친다. 그런 그에게 달콤한 디저트란 즐거운 유희며, 유용하다고 볼 수는 없어도 삶의 활력이 된다. 그는 엄마와 어린 시절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면서 행복한 기억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살이 찔까 걱정되어 이런 그의 습관을 자제하려 했지만, 자제하려 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 달콤함을 찾았다고 한다.
이런 달콤한 입을 가진 귀여운 사람들을 위해 나는 단 것을 먹지도 않아 무슨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알파라에서 베이킹을 조금씩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이 맛을 보고 좋아하는 반응이 나에게도 마치 새로운 달콤한 기억으로 다가온다.
딸기 버터 케이크
사실 버터 케이크는 가게에서 판매하는 케이크믹스로, 유통기한이 거의 다가와 팔지 못한다 하여 우리 주방으로 들어왔다. 케이크 믹스는 기본적인 버터 케이크 믹스로, 기본 중의 기본인 맛이다. 이것으로 무엇을 할까 하다가 이번 주 주문량에 착오가 있어 2배로 들어온 딸기를 가지고 귀여운 케이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평소에 장이 수준 높은 케이크를 여러 가지 시도해 봐도, 이곳 주민들은 입맛이 보수적이어서 기존에 계속 사다 먹었던 공장에서 만들어진 조각 케이크만을 선호한다. 그래서 이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단순하고 기본적인 케이크에 우리만의 스타일을 더해 만들어봤다.
초콜릿 코팅 딸기
화이트 초콜릿 칩을 중탕해 녹였고, 딸기를 화이트 초콜릿에 살짝 담가 딸기의 반 정도 되게 코팅한다.
그리고 이 코팅된 초콜릿에 코코넛 가루와 초콜릿 스프링클 파우더를 골고루 묻히면 딸기에서 나오는 신선함과 달콤함이 완성된다.
케이크를 만들 동안 차갑게 냉장 보관한다.
이 초콜릿 딸기는 케이크의 토핑에 사용한다.
케이크 겉에 바를 딸기 아이싱 버터를 만든다.
아이싱 설탕과 버터를 같은 그램 수로 맞춘다.
나는 250g씩으로 맞추었더니 조각 케이크 12인분이 나왔다.
그리고 믹서기에 설탕과 버터를 넣고 돌린다. 딸기 맛을 위해 나는 딸기 시럽을 약간 넣었다. 맛은 본인의 취향에 맞추어 조절하면 된다. 색도 고운 아이싱 버터가 완성이다.
완성된 케이크는 완벽하게 식혀져 있고, 이에 나는 딸기 아이싱 버터를 골고루 바른다. 색깔이 약간 핑크빛이 돌아 앙증맞다. 초콜릿 코팅 딸기를 그냥 올리기 아쉬워, 예전에 만들어둔 초콜릿 아이싱 버터크림을 사용하기로 했다. 딸기 아이싱 버터와 같은 레시피이지만 코코아 파우더를 넣고 만든 크림이다. 초코 아이싱 크림에 딸기를 올리면 이제 완성이다.
최근에 이곳 사람들과 조금은 편해져서일까,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누군가 보이면 먹어보라고 한 번 권한다. 아마 우리의 음식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우리의 태도가 달라져서일까. 사람들이 고맙다고도 말을 하고, 가끔 그 건네진 음식이 좁은 동네에서 소문이 나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캐셔로 일하는 동료에게 나의 케이크를 건네주었고, 그녀가 먹는 모습을 봤던 동네 주민이 바로 케이크 슬라이스 두 개를 달라고 한다. 아이들은 케이크를 건네받고 신이 나 뛰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