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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라티 Jan 07. 2024

알파라의 개

우리에게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shop dog이라고, 항상 가게 문 앞에 늘어져서 낮잠을 자고 있으며, 때로 잡다한 동네 개들이 들어오려 하면 교통정리를 하는 우리 가게의 문지기이다. 이들의 이름은 마마와 새미.


마마는 밝은 황갈색 빛 털에 똘똘한 눈과 큰 귀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동네에서 떠돌아다니다가 가게 매니저의 눈에 띈 이후부터 그녀의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며 지낸다고 한다. 그녀가 낳은 자식들도 매니저 가족과 함께인지라, 그녀는 엄마 중의 엄마다. 굉장히 붙임성이 좋아 우리가 이곳 동네에 도착한 날부터 우리를 곧잘 따르고 반겨주곤 했다. 일을 시작한 지 3주 정도 지났을 때인가, 가게 매니저 커플은 5주라는 긴 휴가를 떠났다. 그리고 남겨진 마마는 우리와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그녀와 새미가 우리 집 문 앞에 앉아 있었고, 가게의 잠겨진 문들을 열면서 시작하는 우리 하루 일과를 함께 했다. 일이 끝나는 시간, 5시 이후에는 가게 문이 닫힐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함께 집으로 귀가한다.


새미는 윤기 나는 검정털과 안쪽에만 약간의 흰 얼룩이 섞여 있다. 그의 오른쪽 귀는 험난한 과거의 기억을 보여주듯, 살짝 잘려나가 있어 나는 가끔 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고흐의 이름이 그에게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당시 크게 볼록 튀어나온 배 때문에 그를 임신한 개로 오해했고, 나를 바라볼 때 경계심이 가득한 그의 눈은 마마와는 달라 조금 내성적인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얼굴 쪽을 쓰다듬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이곳 개들은 가끔 예측할 수 없는 야생의 습성을 가지고 있어, 함부로 쓰다듬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연배답게, 절친한 친구 마마에게도 가끔 심술부리곤 한다. 괜히 서열을 내세워 나이 많은 자신이 먼저라는 것을 내세우듯 가끔 우리가 밥을 주면 마마의 밥이 뭔지 확인하고 갈취하려는 못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동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최소 11살이고, 예상 나이로는 15살 정도라 하는데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다. 마마와 달리 매니저의 집에 들락날락하지 않아 밖에서 숙식하는 것 치고, 굉장히 건강한 편이기 때문이다.



이곳 마을에서 살아남기란 굉장히 힘들다. 어느 날, 기온이 42도가 넘어갔다. 낮에는 그늘에 있어도 무겁고 뜨거운 공기로 숨이 자동으로 막힌다. 나는 그래도 집에서 시원한 에어컨의 바람을 쐴 수 있는데, 밖에서 자고 먹는 야생의 동물들에게 이곳은 하루하루가 고될 것이다. 최근에 더욱 건조하고 더워지면서 가게 근처에 삐쩍 마른 동네 개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디서 온, 어디서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앙상히 드러난 뱃가죽을 보면 굶주린 지 꽤 오래된 것이 느껴진다. 조그만 동네이기에 어떤 이가 굶주렸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누구 개랄 것 없이, 굶주린 그들에게 팔지 못한 남은 음식을 몇 던져주면 냉큼 달려와 받아먹는다. 살기 힘든 곳이지만 이들도 살아남으려고 노력한다.


하루는 새미에게 저녁식사를 주고 있을 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처음 보는 개 한 마리가 으르렁 거리며 내 근처로 다가온다. 아니 이곳은 내가 살고 있는 집인데도 당당하게 들어오며 심지어 이를 살짝 드러내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그가 잔뜩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단숨에 그가 굉장히 굶주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나는 그에게 마침 가지고 있던 삶은 계란 하나를 던져주었다. 이후, 그의 친구가 함께 들어와 새미가 다 먹고 남긴 그릇을 기웃거린다. 부리나케 물을 잔뜩 먹고 난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새미가 그제야 그 둘을 내쫓았다. 나이가 지긋한 연륜에서 나오는 태도인가, 그들의 떠돌이 험난한 삶이 이해가 가는 것일까.


5주의 휴가 이후 가게 매니저 커플이 다시 돌아왔다. 5주간 보내는 새로운 친구들과의 동고동락이 즐거웠다. 역시 나의 예상대로 마마는 본가로 돌아갔고, 우리 둘 사이는 가끔 낮에 가게에서 얼굴을 보면 반기는 정도의 관계로 되돌아갔다. 예상은 했지만 5주 정도 먹이고 챙겨주며 정들었는데, 아쉬웠다. 그래도 그녀는 새미의 단짝친구이다. 가끔 새미를 보러 놀러 오고는 한다. 혼자보다는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도 중요하니까.


그때까지 우리는 누군가를 집안에 들이기를 조금 꺼려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밖이 더운 것도 알고 이해하지만, 밖에서 흙먼지를 잔뜩 끼얹고 다니는 이곳 동네 개들을 집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새미만은 우리와 계속 함께 하였다. 마마는 떠났지만, 그는 우리와 정이 잔뜩 들었나 보다. 그를 보면, 굉장히 예절이 바르다고 생각했다. 알면 알 수록, 시간을 들이며 신뢰를 쌓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해가 질 무렵에는 조금은 숨통이 트이기에 그와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우리는 그에게 집을 공유하게 되었다. 42도가 넘어가는 날, 잔뜩 거친 숨을 내쉬는 그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에어컨으로 시원한 바닥이 좋은지 문 앞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털썩 주저앉는다. 그때부터 그 영역은 새미의 자리가 되었다.


상상도 못 한 가족을 꾸린 기분이 든다. 살아남기 힘든 황량한 오지에서, 동지애가 가득한 친구이자 가족이 생겼다. 그에게 집에서 누군가와 함께 지낸 것이 마지막인지, 굉장히 낯설어 보인다. 그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그리도 오래 걸렸으니 말이다. 이상하게도 그의 나이는 아무도 모르지만, 새미가 지혜로운 개인 것은 확실하다. 이곳 동네에서 유일하게 음식을 만들어 파는 요리사와 함께 지내기로 했으니 말이다. 새해를 맞이해 알파라 레스토랑과 함께하는 새미의 시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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