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것이 무엇일까.
한국의 울타리를 나와 여행하면서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듣는 말이 한국인보다는 일본인이냐는 질문이었다. 4년 정도 여행을 다니면서 피부도 많이 타고, 메이크업도 안 하게 되고, 입는 옷의 색상과 스타일이 더 이상 어느 나라의 스타일이라고 말하기 모호해지니, 태국에서 몇 달 지내는 동안 태국 지역 주민들이 그들의 언어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또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다른 아시아 국적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다인종 다문화 국가인 호주지만, 아직까지도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영락없이 외국인이다. 외국인으로서 살게 되면서 듣게 되는 필수적인 질문은 “너는 어디서 왔니?”이다. 영어의 해석 그대로 “ where do you come from?” 질문에 대해 나는 4년 넘게 살다 보니, 가장 최근에 머물렀던 호주에 있는 지역이름으로 대답할 때도 있다. 이에 사람들은 나에게 다시 어느 나라 국적이냐고 물어본다.
한국인인 것을 알고 나서 대화의 방향은 그들의 한국음식에 대한 이야기에서 일본음식에 대한 인지도로 넘어갈 때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음식과 일본어로 붙여진 영어 단어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찾을 수 있는 큰 무를 호주에서 주문하려면 ‘daikon’. 감은 ‘kaki’. 만두도 'gyoza'. 나 또한 일본이 만드는 섬세한 문화를 좋아해서, 나에 대한 질문인 것처럼 이야기가 시작되어도 결국에는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고, 그 이야기는 곧 어디론가 흘러간다. 지금 막 새롭게 만난 사람에게 나는 굳이 애정을 받을 필요도 없고, 내가 자라고 태어난 나라에 관심 없다고 해서 서운할 필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요새는 한국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아짐을 느낀다. 한국은 어떤 나라냐고 묻는 사람을 종종 본다. 남한 사람이냐, 북한 사람이냐 등의 재미있지도 않은 농담 식 질문은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또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로 인해 이미 한국인의 깨끗하고 단정한 스타일의 외모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들도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에는 한국인 같이 보이는 것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그 특별함과 유니크함에서 오는 우월감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한국사람 아니지 않냐고, 한국에서 살지 않는 사람 같아 보인다는 말. 다른 나라 국적 어디든 상관없이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았다. 한국에서 독립해 나온 ‘나’로서 국적을 벗어던져버리고 싶었던 걸까.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친구들을 보면, 본인과 같은 국적끼리 뭉쳐서 여행 다니는 경우를 많이 봤다. 한국인뿐만이 아니라, 이것은 우리 모든 인간의 습성이지 싶다. 쉽고 편하지 않은가. 독립을 하고 싶어 나왔지만 외국에서 나의 같은 모국어를 쓰는 친구들과 지내면 장점이 참 많다.
나에게 있어서 이는 음식이다. 때로는 한국음식이 그립고, 한국 사람들만이 이해하는 그 음식의 정서가 있다. 비가 오는 날은 부침개를 먹고 싶다. 춥고 쌀쌀해지는 날은 국물요리를 먹고 싶다. 그냥 따뜻한 국물도 아닌 펄펄 끓는 음식 말이다. 아침에도 밥과 반찬으로 하루를 거하게 시작할 수 있다. 한국 집밥에서 나오는 정서와도 같다.
그런 정서가 이해되고 좋지만 호주에서 4년 내내 지내며 마치 한국인 그룹을 기피한 것 마냥, 여행 다니는 동안 희한하게도 한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날 기회가 없었다. 따로 노력을 한 것은 아니지만, 우연찮게 내가 가는 길이 그랬고, 그 덕에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이런 여정 속에서 만나게 된 소수의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너무 고맙고, 따스한 정을 다시 충전받고 떠난다. 떠나온 집에서 오는 정서적 교감, 비슷한 것을 그리워한다는 것의 동질감은 생각보다 컸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여행을 하며 만나는 친구들을 보면, 국적과 문화라는 것이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서로 전혀 닮은 공통점이 없는 것 같다가도 내가 우연찮게 선택한 음식점, 카페, 어떤 장소에 이 순간 함께 있다는 것이 이미 너무나 큰 공통점이다. 우연적인 이 순간을 함께하기까지, 각자 선택한 순간이 겹치기까지 우리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순간들이 스치고 지났던 것일까.
김밥, sushi
하루는 장이 매니저 아들인 라이언에게 만약 한 음식만을 먹을 수 있는 상황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거냐고 물었더니, 이에 라이언은 ‘스시’라고 대답했다. 아무거나 넣고, 말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무엇이든 넣고 말아도 맛있는 김밥을 나도 택할 것 같다. 이번 해 여름 한국을 오랜만에 방문하면서 나는 틈만 나면 김밥집을 찾았다. 호주에서는 다양한 감자튀김을 집집마다 먹고 다녔다면, 한국에서는 김밥이다. 동네마다 김밥집은 있었고, 무슨 김밥이든 맛있었다.
김밥의 근원을 따지고 보면 일본의 영향은 맞는 거 같은데, 한국의 김밥은 ‘sushi’라고 불리기에는 김밥적인 특색이 강하다. 호주는 번잡한 도시가 아니더라도 스시 테이크어웨이 집을 찾아보기 쉽다. 우리가 알고 있는 회전초밥집 스시집도 있지만 가장 흔하게 보는 것은 김밥처럼 말이를 반토막 정도의 크기로 파는 롤이다. 종류도 참 다양한 편이다. 해산물에서 치킨과 튀긴 음식들까지. 여행하다가 갑자기’ 밥’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 간편하게 스시집을 찾아 몇 가지 롤을 사 먹어, 밥에 대한 욕구를 해소한 적이 많다. 간단하면서 먹고 나서도 무겁지 않은 느낌이 든다.
친구들과 함께 김밥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마 한국을 떠나 여행을 다니고,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김밥을 스스로 말아보려 하지 않았을 거라고. 김밥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내가 좋아서 내가 먹고 싶어서 보다도, 친구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서였다. 사실 김밥이라는 게 혼자 먹고 싶어서 만들기에는 이것저것 준비해야 되는 재료들이 있어 손이 많이 간다. 막상 재료를 준비해두고 나면 김밥을 말고, 그릇에 담기까지는 금방인데 말이다. 셰어 하우스에서 많은 친구들과 지내면서, 또는 여행 다니는 친구들과 캠핑을 할 때에도 먹기 편하게 썰어진 김밥은 나누기 쉬운 음식이었다. 모양새와 색이 참 곱다. 알록달록한 재료들이 먹기 좋아 보인다. 이를 보며 때로는 친구들은 어떻게 이런 것을 준비했냐며, 고마워하는 마음에 나로서는 준비하는 과정이 어렵고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김밥은 마는 과정도 재미있다. 이번 해 장의 가족을 방문하는 차,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하루는 장의 사촌동생과 그녀 친구, 장의 삼촌과 음식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우연찮게 마트에서 사둔 스시용 김이 있어서 김밥을 만들기로 했다. 만드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던 어린 친구들을 보며, 혹시 김밥을 말아보고 싶냐고 물어봤다. 조심스럽게 만드는 과정을 배우던 사촌 동생은 어느덧 쉽게 김밥 몇 개를 말더니, 며칠 후 본인 집에서 어머니를 위해 만들었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그래서 김을 대량 주문했다. 대략 2주 넘게 걸려 도착한 것 같다. 김밥 말이 개시를 준비했다. 개인적으로 아삭하고 시원한 채소가 씹히는 김밥이 좋다.
참치마요 김밥 (원조 중의 원조) 레시피
직접 담근 백김치 (나는 단무지가 없어 맛 좋은 김치로 대체했다.)
김밥에 말기 편하게 길고 얇게 잘라둔다.
참치와 마요네즈
최대한 물기가 없게 마요네즈는 한 스푼 정도만 넣는다. 참치 캔 한 통 기준으로.
오이채
얇으면서도 씹을 때 아삭함을 주기 위해 채칼을 사용했다.
당근채
마찬가지로 채칼 사용
치즈마요네즈 소스
마요네즈 한통, 계란 노른자 1, 설탕 2~3 테이블 스푼, 파마산 파우더
(케언즈에서 일하는 친구가 알려준 소스 레시피로 도움 받았다.)
햄
스팸을 사용해도 좋다.
계란 지단
그린 빈 (풋강낭콩)
살짝 뜨거운 물에 데쳐둔 그린 빈을 넣었더니 씹는 식감도 좋고, 잘랐을 때 색이 이쁘다.
김밥을 말 때 나는 밥을 최대한 얇게 넓게 펴 바른다. 밥이 최소한으로 들어가고 안에 내용물이 꽉 찬 것이 우리 한국식 김밥이지 않을까. 잘 만 김밥에 참기름을 살짝 윤기 나게 펴 바른 후, 먹기 좋은 사이즈로 썰어준다. 그리고 나는 참깨를 솔솔 뿌렸다.
알파라의 첫 김밥 개시.
알파라 커뮤니티 페이스북 페이지에 우리는 새로운 메뉴라던가, 오늘의 음식을 소개하기 위해 포스트를 매일매일 업데이트하는 편이다. 장은 특히 사진에 감성을 담아 찍는 것을 좋아하고, 정성껏 포스팅하는 것까지 그에게 제격이다. 홍보대장인 그가 나에게 어떤 이름과 내용을 쓸지 카피 문구를 물어본다. 잠시 고민 후, 나는 스시 말고 김밥이라고 ‘Kimbap’이라고 부르자고 포장용기에도 펜으로 적었다. 알파라의 첫 김밥일 것이다. 사람들이 이름을 몰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시도해 먹어보면 맛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