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라는 이름이 뭐라고, 남들이 부르는 이름이 무엇이라고.
나는 너와 함께 요리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행복해.”
하루는 꽁해 보이는 나의 얼굴을 보며 장이 따스한 말을 건넸다.
우리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때가 있다. 가끔 행복스럽지 않은 생각이 나를 집어삼키는 때가 있다.
장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있지만, 나의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새로 함께 배우기 시작한 것을 그는 아무렇지 않게 금방 쉽게 해내고, 이를 남들 앞에서마저도 여유롭게 잘 드러내는 그를 보면서 존경보다는 질투를 느낀 적이 있다.
왜 나는 그렇게 열심히 하려 하고, 그것을 잘 보여야 한다는 기대와 압박이 그리도 많았던지 말이다.
전 세계 히피와 여행자들이 모인 호주 레인보우 게더링에서 바이올린을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바이올린을 꽤나 배웠다. 그에게 예전에 바이올린을 배운 적이 있다고 말하니까, 바이올린을 켜고 싶으면 언제든 자신을 찾아오라고 한 적이 있어 하루는 그를 찾아갔다. 마침 그와 다른 친구 한 명뿐이었는지라, 나는 소심하게 바이올린의 소리를 내봤다. 실상은 드라마 영화와 달리 나의 바이올린은 그저 소리에 불과했다. 소심하게 다시 바이올린을 집어넣고는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되었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는 나의 마음을 꿰뚫듯이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잘하려고,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럴 때 본인 모습을 볼 때 행복하지도 않았고, 본인의 실력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쿨함이 없다고나 할까. 결국에는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다 보니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고군분투할 필요 없이, 괜히 아쉬워할 것 없다. 좋아하는 것을 천천히 시간 내어 즐기면 된다.
그래도 말이다. 가끔은 나의 이런 상처받은 생각들이 튀어나온다.
내가 무엇이지? 나는 이곳에서 무엇일까? 나의 지위와 위치에 대한 질문 말이다. 시간 낭비적인 생각이다. 내가 뭐라고, 무엇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위치에 집착할까.
첫 번째 주였을까. 매니저가 매주 화요일에 물품을 배달해 주는 트럭기사 친구를 나와 장에게 인사를 한 번씩 시켜주었다. 나를 소개할 때에는 그저 나의 이름과 새로웠다는 것을 이야기하더니, 장을 소개할 때에는 그를 이곳에 있는 ‘유일한 셰프’라고 칭했다. 그게 나에게 괜히 상처받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둘 다 여기서 함께 음식을 만드는 데 말이다.
나와 장의 급여는 다르다. 그가 해온 경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이다. 장은 그럼에도 푸드트럭으로 여행하며 우리의 음식을 만들어보자는 미래계획을 이야기하며, 나보다 높은 급여를 공동 저축 계좌에 그대로 넣을 거라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팀으로 일하고, 너와 하는 일과 내가 하는 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마치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다. 그래서 비교할 필요가 없다고.
때로는 고집이 세고, 모난 점들이 많은 나를 그는 둥글게 감싸준다. 굳이 그렇게 세상과 싸울 필요 없다고 말이다.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이다.
후라이드 부리또, 일명 치미창가 스타일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 내 음식을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몇 가지가 반응이 좋았다.
이곳에 와서 나의 wrap 말이 스킬이 굉장히 향상했다. 아침에 주로 만드는 메뉴는 breakfast wrap으로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특히나 좋아한다. 랩에 홀랜데이즈 소스를 한 번 둘러 준다. 베이컨 한 장, 장이 만들어주는 에그 스크램블, 해쉬 브라운, 샐러드 이파리들, 그리고 치즈로 잘 마무리해 주면서 부리또식으로 잘 만다. 그리고 이를 토스터에 살짝 구우면 치즈가 녹아 랩을 완성해 준다.
이를 시작으로 진짜 부리또를 만들고 싶어 밥을 짓고, 쌀과 닭고기 살을 넣어 부리또를 만들어보았다. 그런데 하루는 12인치 사이즈의 토르티아 랩으로 와야 할 제품이 9인치 정도밖에 안 되는 기존에 제품보다 작은 사이즈로 배송이 되었다. 여기는 아웃백이다. 일주일에 한 번 받는 배달이고, 이미 박스째로 4박스를 수령해, 절대 환불이라는 것은 없다. 있는 대로, 주는 대로 만족해한다.
이를 어쩔까 싶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치미창가 chimichanga 레시피를 발견했다. 부리또를 튀김기에 튀겨보면 된다. 튀김기에 튀기니 사이즈가 배가 되었다. 튀김 음식인 만큼 또 먹음직스럽다.
후라이드 부리또 레시피
*소스 (겉에 토핑으로, 부리또 안에 들어가는 소스 모두 사용한다)
파슬리와 마요네즈를 믹서기 갈아 만든다.
나는 파슬리 한 다발에 마요네즈 2 컵 분량을 사용했다.
처음에 파슬리가 바로 잘 안 갈아지니까 물을 조금씩 넣어가면 잘 갈린다.
*고기
그때그때 있는 고기들을 주로 쓴다. 나는 닭고기와 소고기를 쓴다.
예를 들어, 우리 주 메뉴 중에 로스트 치킨이 있어 나는 닭고기 살코기를 발라서 사용한다.
최근에는 pulled beef 우리 식으로 말하면 장조림처럼 소고기를 토마토소스와 레몬, 오렌지, 각종 허브를 넣고 푹 졸여 큰 용량을 만들어 놨다.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 양념이 되어 있는 고기를 사용하는 것이 식감과 맛으로도 좋다.
*밥 믹스
밥은 케일과 양파 (또는 파를 송송 넣는다.) 쫀쫀한 텍스처를 위해 마요네즈를 살짝 넣고 잘 버무린다. 그리고 스모키 파프리카 파우더를 넣어준다. 색깔이 이쁘다.
*모짜렐라 치즈 가루
*살사
토마토, 적색양파, 셀러리를 작게 썰어 살사를 만든다. 그리고 약간의 올리브 오일.
이렇게 모든 재료들을 구비하면 부리또를 잘 말면 된다. 처음에 소스를 골고루 랩에 뺑 두른다는 느낌으로 펴 바른다. 모짜렐라 치즈가루를 골고루 뿌린다. 그리고 야채와 골고루 버무려진 밥 믹스를 중앙에 넣는다. 고기를 그 위에 적당량 얹힌다. 살짝 손에 뭉치면서 올리면 모양이 잘 잡힌다. 그리고 한 번 치즈 가루를 마지막으로 또 뿌려준다. 그리고 부리또를 말면 된다. 유튜브에 부리또 마는 법을 검색하면 쉽고 간단하게 만드는 법이 나온다.
살짝 토스터기에 구운 후, 튀김기에 넣고 튀긴다. (또는 만들어 놓은 부리또를 바로 냉동실에 넣어 보관하면 토스터기에 굽는 과정 없이 바로 튀김기에 튀길 수 있다.) 그 위에 살사와 소스를 살짝 뿌려주고, 라임 또는 레몬 큐브를 올려주면 완성이다. 기분에 따라 나는 약간의 고수 잎 또는 파 송송 올린다.
한 입 베어 먹었을 때, 밥과 골고루 씹히는 신선한 야채들, 그리고 양념이 잘 배어 있어 건조하지 않은 고기. 튀김기에 튀겨 밖은 바삭한 부리또. 그리고 상큼한 파슬리 마요 드레싱과 어울리는 토마토 살사 토핑으로 든든한 한 끼를 마련했다. 건조하고 더운 이 날씨일수록 사실 더 신선한 샐러드나 과일을 먹는 게 우리 몸에는 더 건강하겠지만, 이상하게 튀긴 기름기 있는 음식들이 당길 때가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해 겉은 튀겨져 있는 모양새지만 안에는 신선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알파라식 후라이드 부리또이다.
혼자 성이 나서 씩씩대고 있던 나에게 장이 따스한 말을 건네주며 안아주었다. 조용히 다시 주방으로 돌아오니, 우리의 최애 고객인 동네 경찰관 카일이 와서 부리또에 대한 칭찬을 들어놓았다. 왜 오늘은 부리또가 없냐며 부리또를 찾는 손님이 늘어났다. 세상이 그렇게 정신없이 고난의 연속인 것 같아도 말이다. 잘만 눈치 살피며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을 조심히 하면 된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된다. 아쉬워할 필요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그 자리에서 계속 하다 보면 그 행복이 누군가에게 뻗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