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 지 둘째 주 즘 되었을 때인가, 가게 매니저가 커뮤니티 페이스북 페이지에 우리의 사진을 올렸다.
“새로 온 알파라의 두 요리사에게 따스한 환영을!”
근 한 달 동안 매주 5.5일을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니,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가 조금 익숙해진 것이 느껴진다.
당신의 문화
초기에는 우리의 인사를 받아주거나, 우리에게 굳이 인사를 따로 건네지도 않았다. 알파라에 오기 전에 어느 정도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이웃동네 클리닉에서 일하는 친구의 정보로 주민들의 대분분인 호주 원주민들에게서 평소 내가 알고 있는 영어권 나라에서의 소통방식을 기대하면 안 된다고.
어떤 부분은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랑도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아마 이성에 대한 예절이 그러하다. 처음 이곳에 와서 남성이 나에게 이야기할 때,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전통사회 예절처럼 남녀에 대한 예절과 문화차이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호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거나, 보호구역을 가게 되면 이곳은 여성만이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이라고 되어 있는 곳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요즈음 세상에 여성과 남성 차이가 무슨 상관이냐며 자기는 상관없다고 수영하러 물에 무작정 뛰어드는 이들도 봤다. 전통적으로 이들은 딸이 자라면서 엄마와 주위 성인 여성들에게 배우는 것들, 아들이 아버지와 어른 남성들에게서 배우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성별에 따라 모여 챙기는 의식, 세리머니가 있을 것이다. 아직은 이곳 주민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전통적으로 호주의 원주민 커뮤니티 사회 대부분이 그래왔다고 한다.
근 4년 동안 호주에서 이곳저곳 다니면서 나는 여성이 아니라, 한국인이라서 아니라, 누군가가 아니기 위하여 그 정체성을 벗어던지기 위한 나만의 긴 여정을 했다. 나뿐만이 아닌 타인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답인 것처럼 말이다.
여기 와서는 내가 여태껏 해왔던 행동들을 조심스레 해야 한다. 아무에게나 팔을 벌리고 포옹을 하지도 않고, 옷도 날씨가 덥다고 피부를 많이 드러내지도 않는다. 존중을 위해서다. 나와 장의 얼굴이 익숙해지다 보니, 그런 그들에게도 이제는 조금씩 인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부메랑처럼 말이다.
베이컨 버섯말이 꼬치
꼬치구이를 만들어보고 싶어 주문해 두었던 꼬치 스틱이 배송되었다. 이를 위해 팽이버섯도 야심 차게 준비해 보았다. 팽이버섯을 한국에서는 흔하게 살 수 있지만, 호주에서는 그렇지 않다. 베이컨을 유달리 좋아하는 우리 동네 주민들을 위해서 베이컨 팽이버섯말이 꼬치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길이가 긴 꼬치는 22cm 정도였고, 베이컨만 넣기에는 길이가 긴 느낌이 있어, 우리는 중간에 브로콜리를 사이에 넣기로 했다. 색깔 대비도 핑크색과 초록색이라 더 시선을 사로잡는 것 같고 말이다. 베이컨을 팽이버섯에 말은 것을 3개 정도 그리고 꼬치마다 조금씩은 다르게, 어떤 것은 버섯 그리고 브로콜리, 피망을 사이에 넣었다. 오븐에 190도 기준으로 넣고 15분~20분 정도 구웠다. 잘 구워진 것을 확인 후, 우리는 이에 데리야끼 소스를 뿌려주고 이쁘게 파마산 가루 베이스로 만든 마법의 믹스 가루를 솔솔 뿌렸다.
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로 단연 베이컨을 꼽을 것이다. 아침에 만드는 메뉴, 베이컨 에그 롤은 버거 빵 사이에 계란 프라이와 베이컨 한 장 그리고 약간의 바비큐, 케첩 소스가 들어간다. 이는 베스트셀러 메뉴이고, 무엇을 만들든 베이컨이 들어가면 좋아하는 편 같았다.
야심 차게 만든 베이컨 버섯말이 꼬치가 1시간이 지나도 팔리지 않는다. 이에 우리는 그들이 다음으로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함께 넣어 팔기로 결정했다. 감자튀김을 조금 넣어 진열대에 넣어봤는데도, 다른 음식들은 팔리는데 이것만이 남겨졌다.
마감시간이 다 되어서였을까, 막바지에 손님들이 조금 몰렸다. 남자아이와 부모로 추정되어 보이는 어른 둘이 음식 진열대로 다가왔다. 남아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확인한 아이는 갑자기 크게 울기 시작했다. 세상의 종말이 오듯 그는 울어댔고, 상황을 보니 감자튀김’만’을 원하는 것 같았다. 부모로 추정되어 보이는 이들은 나를 보며 민망하듯 미소를 살짝 지었고, 어쨌든 감자튀김이 있으니 이것을 구매하자는 이야기를 건너 들었다. 그럼에도 결국에 음식은 다시 돌아왔다. 최종적으로 음식을 사지 않기로 결정했나 보다.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음식이 계산대에서 진열대로 되돌려지기. 사실 이곳 주민들이 우리 음식에 여러 반응을 보이니, 열정적으로 만든 음식이 간택되지 않아도 실망하고 슬퍼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유가 궁금할 뿐.
다음날,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직원이자 동네 주민 출신인 아마존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봤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혹시 브로콜리가 문제냐고.
아니나 다를까 그는 웃으며 꼬치에 채소가 너무 많다고 대꾸했다. 대대적으로 채소를 제거하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채소를 조심스럽게 권유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이 이곳 알파라 스타일이다. 다음에는 더 조심스럽게 그들의 건강을 위해 채소를 몰래 넣는 방법을 생각하기로.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이번 주에 작은 이벤트 파티가 열린다고 해, 오후에 가게 문을 일찍 닫기로 했다. 우리가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음식을 준비할 필요 없이 몸만 오라는 말에 약간은 떨리는 마음으로 이벤트가 열린다는 농구장으로 향했다. 도착한 농구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동네 주민들로 가득했고, 가끔 가게에서 보던 얼굴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 일하는 것으로 추정되어 보이는 직원들이 열심히 준비한 과일과 잘라진 케이크, 소시지와 빵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뭐랄까,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던 것은 평상시 그들에게 보였던 모습이 아니어서였을까. 평소 주방에 있을 때는 헤어밴드로 꽁꽁 감싸져 있던 나의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유니폼 티셔츠에 검은색 바지로 항상 같은 모습이던 나는 편한 원피스 차림으로 바뀌었다. 더우니까 나가기 전에 샤워를 한 상태여서 깨끗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뭔가 소개팅을 나가는 설레는 기분이었다.
동네 주민들은 편하게 다들 농구장 바닥에 모여 앉아 있었다. 대부분이 어머니, 할머니, 아이들이었고 남성 어른들은 주로 밖에서 구경하는듯해 보였다. 처음에는 쭈뼛 쭈뼛 아는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이 수많은 인파의 기류를 느끼고 있었다. 동료들도 농구장 밖 문 근처에 서있길래 그 시점에서 안에 있는 주민들을 관찰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나뿐이 아니었다. 주민 아이들은 서스름 없이 가던 길을 멈추고 뚫어져라 나를 쳐다본다. 그래서 사실 나도 그들의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안 들었지만, 그들과 가까이 있어도 될 것 같아 문 근처에 앉아 있는 가족들에게 눈인사 후, 그들 옆에 나도 털썩 앉아보았다.
산타가 도착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크리스마스면 산타 할아버지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와 경찰 아저씨는 산타로 둔갑해 있었다.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선물을 주는 광경을 보며, 평소에 크리스마스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던 나도 기분이 좋았다. 무작위적인 선물들인 것 같아 보이지만, 아이들은 행복해 보인다.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란 그들의 문화가 아닌 것은 분명한데, 이 이벤트가 확실히 모두의 기분을 들뜨는 분위기로 바꾼 것은 분명해 보였다.
무대 같아 보이는 곳에 어느새 기타와 드럼이 보였다. 메인이벤트가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듯해 보이지만 처음으로 동네 뮤지션들을 만나 우리는 그들을 좀 지켜보기로 했다. 아마 우리가 가끔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모습을 동네 주민 중에서 봤던 것일까. 드럼을 치던 아저씨가 우리에게 혹시 악기 연주하고 싶으면 함께해도 좋다고 권유하셨다. 쑥스러우면서도 사실 쑥스러울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이제야 무슨 상관인가. 키보드가 보이길래 키보드도 좀 치다가도, 노래할 수 있냐는 말에 마이크를 잡고 신나게 노래했다. 사실 20명 남짓한 동네 주민들만 남아있는 상태여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된다는 생각 없이 즐거운 즉흥연주였다. 이곳은 호응을 하고 박수를 치는 문화가 확실히 아니다. 음악이 끝난 후, 나와 장의 소리가 괜찮은지 궁금해서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니, 뒤에 있던 기타리스트가 관중들에게 어떠냐고 물어보는 듯해 보였다. 그들은 조용히 엄지를 들어 보였다. 소리 없는 호응도 그들의 문화인가 보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아이를 제외하고서는 모두가 성인 남성들 뿐이었다. 혹시 이것도 그들의 문화 차이인가 싶었지만,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음악으로 통하는 거니까.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보이니까 된 것이다. 처음으로 동네 주민들과 무언가를 함께 해냈다. 음악의 언어로.
다음날, 평소에 소심하게 그들에게 인사를 하던 나도 조금은 대범해지기로 했다. 평소보다 더 커진 목소리로 인사를 먼저 건넸더니, 인사와 함께 이제는 그들의 미소를 살짝 볼 수 있었다.
우리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